주간동아 784

2011.04.25

자동차 경영 노하우 후배에게 나눠주는 성취감 ‘짜릿’

시간강사로 제2의 인생 前 GM대우 전무 이성상 씨

  • 최호열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1-04-25 09: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0대처럼 심장이 펄떡인다. 눈 뜨는 순간 설레고, 하루를 마감하며 내일을 기대하는 황혼. 은퇴 후에 이런 인생이 펼쳐질 줄 몰랐다. 한 발 앞서 준비하고 진지하게 꿈을 탐색한 끝에 멋진 인생 2모작을 일군 ‘골든라이프’를 소개한다.

    자동차 경영 노하우 후배에게 나눠주는 성취감 ‘짜릿’
    경기 부천시 가톨릭대 성심교정. 이곳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의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케팅학’을 가르치는 이성상(61) 씨는 자동차업계에서는 손꼽히는 기획통이었다. 32년간 대우자동차와 GM대우자동차에서 재무·전략기획·경영기획 등을 담당하면서 한국 최초로 자동차 세계경영에 대한 기본 틀을 만들었다. 그 공로로 2009년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2월 GM대우 전무이사로 정년퇴임한 후 3학기째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는 전임교수나 명예교수가 아닌 시간강사다. 그 정도 커리어라면 자동차 관련 기업체의 최고경영자(CEO) 등 더 번듯한 직함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왜 돈도 안 되고 고생만 하는 시간강사를 선택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라 정년퇴직을 했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제2의 삶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은퇴하면 뭘 할까’ 고민했죠. 돈을 벌려고 했으면 자동차 부품업체 CEO를 했겠죠. 실제 몇 곳에서 제안이 들어왔고, 외국인 투자기업의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더군요.”

    그는 오랫동안 기획파트 일을 한 덕분에 대학이나 자동차 관련 단체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정년퇴임하기 직전까지 5년 동안 한국자동차학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세미나나 특강을 할 기회가 많았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 세계 유수 자동차회사들의 경영 노하우를 후배에게 나눠준다는 성취감과 보람이 컸어요. 은퇴하면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마침 정년퇴임을 앞두고 대학에서 제안을 해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대학도 있었지만 이씨는 가톨릭대를 선택했다. 학부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경영학 석사 과정, 그것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한 강좌였기 때문이다. 그는 “개발도상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학생을 가르치는 게 더 큰 사회 기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의는 비록 일주일에 2~3시간이지만 수업 준비를 위해 일주일에 3~4일씩 학교로 출근한다. 영어로 하는 수업이라 준비할 내용이 많은 데다 수업 준비를 게을리하면 금방 표가 나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전공이 자동차지만 현대자동차나 대우자동차 사례만 가지고 가르칠 수는 없어요. 학생이 식상해하고 관심이 떨어지거든요. 다양한 업종의 글로벌 기업 사례를 두루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원서를 찾아 공부하고, 자료도 직접 만들어야 해요. 저한테도 좋은 공부가 되고 있어요.”

    그는 또한 현장교육이 최고라는 생각에 교실 내 강의 못지않게 자동차공장이나 부품공장 견학도 중요시한다. 이외에도 서울모터쇼 등 각종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을 데리고 둘러본다.

    그는 학교 강의 외에도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책을 공동 집필 중이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역사뿐 아니라 미래도 제시하는 책으로 올해 안에 출간하는 게 목표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도 번역해 출간할 계획도 있다.

    이씨는 노후자금에 대한 걱정은 없어 보였다. 노년을 기댈 수 있는 집이 있고, 개인연금과 국민연금을 합해 월 400만 원 가까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 달에 2~3번 골프장에 갈 정도는 됩니다. 또한 방학 때면 꼭 아내와 해외여행을 합니다. 저는 직장 다닐 때 해외 출장을 자주 갔지만 전업주부인 아내는 외국에 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은퇴하면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단순히 관광을 가는 건 아닙니다. 마케팅과 관련한 국제적인 행사가 있는 곳이나 강의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가죠. 그래야 강의 내용이 더 풍성해지니까요.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엔 아내와 등산을 가거나 영화, 연극을 관람하고, 미술관에 갑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다닐 때보다 대화가 더 많아졌어요. 아내는 은퇴생활이 더 좋다고 하네요(웃음).”

    그가 이렇듯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젊어서부터 노후를 위해 꾸준히 저축한 덕이다. 그는 “많은 직장인이 언제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 몰라 장기적으로 저축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그래도 열심히 저축하는 게 가장 현명한 노후대책”이라고 충고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지금이 더 스트레스도 없고 활기차다고 말하지만,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그 역시 대기업 임원으로 누리던 혜택이 갑자기 사라지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고 한다.

    “예약이나 문서작성, 팩스전송처럼 전에는 비서나 부하 직원이 대신해주던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니 은근히 어렵고 귀찮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 누리던 것에 미련을 두면 안 됩니다. 현실에 빨리 적응해야죠. 그리고 노후자금에 여유가 있다고 집에서 빈둥거리지 말고, 밖으로 돌아다녀야 합니다. 저는 수업이 없어도 학교에 가서 책을 보거나 친구, 회사 동료들을 만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일부러 동창회 회장직도 여러 개 맡았죠. 그래야 활력을 잃지 않거든요.”

    그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기업들의 자문에 응하는 자원봉사를 할까 생각 중이다. 중소기업인에게 도움을 주면 좋고, 그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은퇴 후에도 어떤 것이든 일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명함을 주면서 느끼는 소속감은 곧 자신감이 됩니다. 그리고 일을 하면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니 정신건강에도 좋고, 머리를 많이 쓰게 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모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이라며 “돈은 쓸 때 비로소 자기 돈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유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한다. 나이가 더 들면 퇴직금 등 여윳돈으로 방문객들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작은 수목원을 꾸릴 계획이란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에 재투자하는 게 진정한 의미의 사회 환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