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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내 삶이고 내 전부다”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임권택 감독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영화? 내 삶이고 내 전부다”

“영화? 내 삶이고 내 전부다”
‘임권택의 100, 그리고 첫 번째 영화.’ 3월 17일 개봉하는 임권택(75) 감독의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포스터에 적힌 문장이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해 50여 년 동안 101편의 영화를 찍은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 한 카페에서 임 감독을 만났다. 7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해사한 미소를 짓는 그는 “이번 영화는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한지(韓紙)를 소재로 한 영화로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조선왕조실록’ 중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 보관본을 전통 한지로 복본(複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박중훈이 한지 복원을 위해 애쓰는 전주시청 공무원 역을, 예지원이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내 역을, 강수연이 한지 복원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는 감독 역을 맡았다. 영화 속에는 ‘지천년 견오백(紙千年絹五百)’이라는 말이 나온다. 비단은 500년을 가고 한지는 1000년을 간다는 뜻. 임 감독은 영화에 대해 “천년 가는 종이를 복원하는 일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임 감독은 ‘서편제’에서 판소리를, ‘취화선’에서 한국화를 다루는 등 지금까지 우리 전통문화를 영화 소재로 써왔다. 우리의 전통 종이인 한지는 어떻게 영화 소재로 삼게 됐을까?

“2~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민병록 집행위원장을 만났다가 우연히 한지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지금까지 영화에 우리 전통문화를 담아왔고,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얻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한지 이야기를 들은 거죠. 중국은 선지를, 일본은 화지를 지금까지 활발하게 생산하고 있어요.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한지는 종이의 질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데도 그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어요. 누구도 한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마당에, 내가 한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도 느꼈습니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그동안 임 감독이 만든 작품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그는 지금까지 드라마틱하고 선이 굵은 이야기를 담은 극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느낌이 강하다. 강수연이 연기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찍은 영상도 ‘영화 속 영화’ 형식으로 나온다. 임 감독은 “101번째 작품이기 때문에 100편의 영화와 훌쩍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별것 아닌 듯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삶 자체를 아주 정밀하게 찍어내는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가 달라질 길이 없더군요.”

촬영 도구도 바꿨다. 필름카메라로 영화 촬영을 해온 그가 이번 영화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다. 그래서 수십 편을 함께 작업했던 정일성 촬영감독 대신 영화 ‘밤과 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촬영한 김훈광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디지털카메라는 필름카메라와 비교해 화질이 다소 단순하고 심도가 얕은 편. 거친 화질이 다큐멘터리 느낌을 잘 살려줄 거라는 판단 아래 내린 결정일까.

한지,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

“영화? 내 삶이고 내 전부다”
“그런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필름카메라로 만든 영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있어 디지털을 적극적으로 배워야겠다 생각했어요. 4~5년 안에 필름 현상실이 다 문을 닫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제가 몇 살까지 영화를 할지 모르지만, 영화를 계속 찍으려면 도전해봐야죠.”

디지털카메라의 긍정적인 면도 많이 발견했다. 이전보다 화질도 많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경제적이다. 필름값, 필름 현상료 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 반면 아쉬운 점도 있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을 때는 현장에서 스태프, 연기자 모두가 굉장히 긴장을 했어요. 필름은 곧 돈이기 때문에 되도록 NG를 안 내야 된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디지털카메라는 몇 번이고 다시 찍을 수 있으니, 팽팽했던 긴장감이 떨어지고 좀 해이해지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 같은 늙은이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웃음).”

영화를 보다 보면 ‘숨은 그림 찾기’ 하는 재미가 있다. 연기자 외에도 유명인(?), 일반인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 임 감독의 아내 채령 씨를 비롯해 두 아들 모두 영화에 출연했다. 현재 연기자로 활동하는 둘째 아들 권현상은 꽤 비중 있는 한지 장인의 아들 역을 맡았다. 그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송하진 전주시장, 장제국 동서대 총장 등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 밖에도 실제 전주에서 ‘조선왕조실록’ 복본 작업에 참여한 교수, 공무원 등이 카메라 앞에 섰다. 가끔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가 웃음을 자아내지만, 전반적으로 연기가 자연스러워 적잖이 놀랐다.

“아마 일반인 출연자가 30여 명 될 거예요. 연기자가 아니니 어색해하더라고요. 허구를 꾸며내서 연기하라고 하면 일반인은 어려워해요. 대부분 왕조실록 복본에 참여한 실무자니, 연기 대신 실제 일했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부딪힌 일을 다시 끌어낸 거죠.”

임 감독과 작업을 함께 한 사람들은 그를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독”이라고 입을 모았다. 5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들어온 임 감독은 “스태프나 연기자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찍은 영화는 망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일할 때, 스태프와 연기자가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창의성과 기량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곧 영화도 좋아지는 길이에요. 윽박지른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1973년작 ‘잡초’ 이전의 영화는 다 불태워버리고 싶다.”

임 감독이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한 말이다. 임 감독은 “1960년대에 만든 영화는 미국 영화를 흉내낸, 흥행만을 바라고 만든 영화였다”고 털어놓았다.

“우리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어쨌거나 우리의 일상이 담겨야 하는데 말이죠. 허구로부터 도망쳐 한국 사람이 아니면 못 만드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형편없는 영화를 부지기수 만들었는데도 지금까지 영화계에서 살아남았어요. 아마도 우리의 삶, 정서, 흥을 담아낸 영화를 뒤늦게 만든 덕분에 감독으로서 생명력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정서 담아 생명력 오래가

한국의 젊은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에 대한 임 감독의 평가도 궁금했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빠른 템포를 지녔다고 여기진 않을까.

“누군가 좋은 의미로 그러더군요. 소란스럽고 빠른 할리우드 영화와 비슷한 한국 영화 속에서 제 영화는 거꾸로 가는 영화라고. 그런데 저는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속도감 있는 것도, 잠시 느리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도 다 필요합니다. 서양 영화에 치우쳐 있는 관객이 한국 영화에도 관심을 돌리게끔 후배들이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

50여 년간 영화를 만들어온 임권택 감독. 그는 자신을 ‘진짜 운이 좋은 놈’이라고 표현했다. “6·25전쟁 때 부산에서 전전하다가 입에 풀칠하려고 영화계에 발을 들였어요. 순전히 먹고살려고 한 건데, 제가 좋아하는 직업을 만난 겁니다. 지금까지 영화만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영화는 제 삶입니다.”



주간동아 779호 (p73~75)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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