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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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현장, 썩는 냄새 삶의 흔적에 짠하죠

‘바이오해저드 특수청소’ 김석훈 씨 “유일한 시신 냄새 청소자 … 고독사 방지는 관심의 문제”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3-21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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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혹한 현장, 썩는 냄새 삶의 흔적에 짠하죠
    2011년 1월 초 서울 양천구 한 원룸에서 심하게 부패한 20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됐다. 남자가 죽은 원룸은 그의 전 여자친구 집이었다. 그는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하고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여자의 집에 찾아와 번개탄을 피워놓고 목숨을 끊었다. 신정 연휴 동안 집을 빌려달라는 남자의 말만 믿고 열쇠를 주고 떠났던 여자가 집에 돌아와 목격한 장면은 참혹했다. 남자는 죽기 직전 피를 토했고 머리카락은 피범벅이 됐다. 보일러를 틀어놓은 밀폐된 방에서 빠르게 부패한 시체의 냄새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지독했다. 장례 지도사가 찾아와 남자의 시체를 수습했지만 집 안 곳곳에는 자살 흔적이 남았다. 이 흔적을 지우는 일이 ‘바이오해저드 특수청소’업체의 김석훈(36) 씨 몫이다.

    김씨가 건넨 명함에는‘유품 정리 및 사고현장 청소’라고 적혀 있다. 유품 정리 업체는 흔하다. 중고 매입 업체 등을 중심으로 돈 되는 유품을 챙겨 재활용하거나 판매하는 업체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거나 피범벅이 된 곳, 시체를 파먹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곳은 피한다. 김씨는 “우리는 이런 업체가 엄두를 못 내는 곳도 청소한다. 잔인한 영화에서 피가 튀거나 사지가 잘려나간 시체를 볼 수 있지만 진짜 지독한 것은 냄새다.‘송장 썩은 냄새’란 표현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10월부터 60여 건의 현장을 청소했다.

    은밀하게 흔적 지우는 일

    장례 사업이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한 김씨는 10여 년 전 장례식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부 대학에 장례지도학과가 생기는 등 시장이 팽창하던 때였다. 처음에는 시신을 보고 도망가기도 했고 유족이 울 때면 따라 울기도 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자 곧 담담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유족들이 다른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부패한 시체 냄새 때문에 집이 못 쓰게 됐다”는 얘기였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장례식장 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특수청소부로 나섰다. 현재 이런 일을 하는 이는 그가 유일하다.

    김씨의 작업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다. 숨진 뒤 오래 방치된 시체는 대부분 주변과 연락을 끊고 살던 저소득층이라 유명을 달리해도 주변에선 잘 알아채지 못한다. 특히 이들 중엔 월세를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이 세상을 등지고 나면 제일 곤란해지는 게 집주인들이다. 어쨌든 방을 다시 세놓아야 하는 집주인으로선 소리 소문 없이 일을 해주기 원하게 마련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출근하고 퇴근하기 전 또는 모두가 잠든 밤에 일을 한다. 김씨에겐 “제대로 치워라” “조용히 일해라”라고 하는 그들의 잔소리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작업의 시작은 냄새의 근원인 시체 주변을 치우는 일. 그 뒤 큰 짐부터 시작해 모든 물건을 꺼낸다. 큰 장롱이 있을 경우 이를 분리해 트럭 짐칸에 둘러 세워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다. 처리가 가장 곤란한 물건은 침대다. 시체가 침대 위에서 부패하면 그 썩은 물이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 그는 고인의 일기장이나 통장, 귀금속만 유가족에게 돌려주고 나머지 물건은 모두 폐기한다. 값비싼 전자제품도 전원을 다시 넣으면 열 때문에 배어 있던 시체 썩은 냄새가 나오기에 버려야 한다. 문고리부터 형광등 하나하나까지 모두 닦은 뒤에야 작업은 끝난다. 시체가 심하게 부패됐던 집은 벽지를 모두 벗겨내고 새로 도배를 해야만 흔적을 지울 수 있다. 이제 이 일이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청소한 집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와 불이 켜진 것을 볼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김씨가 장례업계에서 일한 지 어언 10여 년, 이젠 그도 ‘달인’이 다 됐다. 문을 열고 들어가 냄새만 맡아도 시체가 방치된 지 얼마가 됐는지 안다. 때로는 시체를 두고 경찰과 다른 의견을 낼 때도 있다. 한 야산에서 노인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 같이 출동한 경찰은 시체의 뒤통수에 있는 상처를 보고 살인 사건으로 추정했지만 그는 단순 실족사로 봤다. 감식 결과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경찰이 현장을 보고 살인이다, 자연사다 미리 판단한 뒤 수사를 진행할 때가 있다”며 아쉬워했다. 현장 보존도 문제다.

    “경찰이 먼저 현장을 수습해야 하는데 많이 부패해 악취가 심하면 문만 열어주고 장례지도사 등을 먼저 들여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소 전화 한 통이면 험한 모습 예방

    참혹한 현장, 썩는 냄새 삶의 흔적에 짠하죠

    다른 유품 정리 업체가 냄새가 고약해 돌아간 한 고시원도 김석훈 씨의 손길이 닿자 깔끔하게 변했다.

    김씨는 주로 고독사(孤獨死)로 숨진 현장을 수습한다. 참혹한 현장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는 그지만 이런 현장과 마주할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홀몸노인은 자식과 주변 사람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다 죽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의 방에 남겨진 무수히 많은 약병과 소주병을 보면 눈물이 핑 돈다.

    “고독사로 숨진 집에는 고인이 가족을 그리워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가족사진을 여러 장 걸어두고 노트나 쪽지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 섭섭함 등을 적어둡니다. 유가족은 이를 받아 들고 후회하거나, 반대로 ‘봐서 무엇하겠느냐’며 외면하기도 합니다. 고인과 사이가 안 좋은 가족 중에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 이도 있어요. 가족관계마저 단절되는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도 많다. 뜨거운 전기장판에서 숨져 부패가 유독 심했던 한 노인은 딸이 조금만 신경 썼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경우다. 해외출장을 가기 위해 출국 전날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를 했던 딸은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 걱정은 됐지만 ‘잘 계시겠지’ 하며 다음 날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선물을 들고 일주일 만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부검 결과 밝혀진 사망 시각은 딸이 전날 전화를 건 얼마 후였다. 김씨의 동료인 이성환(28) 씨는 “어른들께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전화를 해야 하고 전화를 안 받으면 들러서 확인해야 한다. 방치된 홀몸노인의 경우 시체가 2~3주 만에 발견되면 빠른 편이다. 결국 관심의 문제다”며 안타까워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홀몸노인이 100만 명을 돌파하자,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안부 확인전화를 걸고 직접 방문하게 하는 등 고독사 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김씨도 앞으로 한 복지재단과 함께 무의탁, 무연고 노인이 고독사로 숨질 때 사후처리를 도와줄 예정이다. 그는 “돈 벌려고 특수 청소일을 시작했지만, 유족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에 유품을 정리해주니 고맙다고 인사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금껏 많은 철학자가 죽음을 말했지만 그것은 책상에서 만들어진 인공물이었다. 김씨는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죽음을 마주한다. 그가 생각하는 죽음이 궁금했다.

    “현장에서 일할 때마다 유럽의 한 공동묘지에 적혀 있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란 문구를 되새깁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재확인하지요. 고인이 남긴 물건을 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보입니다. 폐지를 모으며 성실하게 산 사람부터 각종 음란물, 성행위 기구를 모으며 성도착증 증세를 보인 사람까지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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