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5

2011.02.21

소녀, 도깨비 늪 건너 세상 속으로

연극 ‘해님지고 달님안고’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1-02-21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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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도깨비 늪 건너 세상 속으로
    연극 ‘해님지고 달님안고’(극본 동이향, 연출 성기웅)는 기괴한 동화 같다. 시공간적 배경이 모호하고 도깨비와 같은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할 뿐 아니라 주인공 여자아이가 무의식의 여로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 상징적인 언어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가 ‘세상 밖’의 숲에서 아버지와 고립된 채 살아간다. 아버지는 아이가 아내처럼 자신을 버리고 떠나갈까 두려워 아이를 묶어서 기른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인 동시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벗어나야 하는 존재다. 아이는 아버지 곁에 있고 싶어 하면서도 가보지 못한 ‘세상 안’을 동경한다. 그런데 세상에 가려면 몇 개의 재를 넘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위험한 ‘도깨비 늪’을 건너야 한다.

    아버지는 아이가 숲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다. “내 곁을 떠나 숲을 돌아다니면 도깨비들이 길을 엇갈리게 하고, 그 길을 헤매면 눈이 멀게 된다”고 겁도 준다. 아이는 결국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호기심에 이끌려 숲으로 나왔다가 갑자기 눈이 먼다. 아버지는 “내가 네 눈알을 삼켰다”고 말하는데,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자신의 눈을 내놓으라며 아버지 목을 조른다.

    월식이 일어나고 붉은 달이 뜬 어느 날, 아이는 아버지와 이별하고 ‘도깨비 늪’에서 죽음 같은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그 후 아이는 갑자기 밝은 햇살 아래서 눈을 뜨고, 소용돌이치고 혼란스럽게만 느껴지던 모든 상황이 명확하게 정리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이는 첫 생리를 시작한다. 아이는 도깨비 늪을 건너 ‘세상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상징적인 언어들이 알려주는 것은 대부분 여자아이의 성적 자기 정체성의 성장과 관련된 모티프다. 아이의 눈이 먼다는 것, 아버지가 아이더러 눈을 돌려줄 테니 가슴의 두 몽우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 아이가 아버지의 목을 조를 때 목이 점점 굵어지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아이가 성적 정체성을 찾으며 사회화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즉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운 성장기를 극복하고 질서정연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극은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다. 논리성도 찾기 힘들다. 함축적이며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는 드라마의 내용과 형식의 콘셉트가 일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이 고운 문체가 작품의 정서적인 깊이를 더해주고, 날것 그대로를 내비치는 언어들이 잔혹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텍스트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극을 통해 관람해야 하기에 난해하고 모호한 감이 있다.

    일단 드라마의 함축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조금 정돈할 필요가 있다. 무늬가 많은 작화 막과 천장에 걸어놓은 망사 조각들, 색깔이 많은 조명이 무대를 다소 복잡하게 만들어 주요 인물과 장면들이 크게 부각되는 것을 막는 요소로 작용한다. 음악과 음향을 다양하게 활용했는데, 일관된 톤으로 정리해도 좋을 것 같다. 도깨비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아크로바틱(acrobatic)했는데, 그도 좋지만 상대적으로 묻혀 있는 주요 캐릭터들을 좀 더 부각하면 극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아이 역을 맡은 박성연의 집중력 있는 연기가 돋보였다. 충무로 대표 ‘신스틸러(scene stealer·명품 조연)’ 오달수가 아버지로 출연한다. ▶▶ 2월 27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 02-762-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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