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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구제역은 못 죽이고 너희들만 끌어 묻었다 미안하다…돼지야…”

35년 양돈업 아버지 돼지 600마리 살처분 후 상심의 나날…그날 돼지들 비명소리 아직도 귓전에 생생

  • 이혜민 여성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구제역은 못 죽이고 너희들만 끌어 묻었다 미안하다…돼지야…”

“구제역은 못 죽이고 너희들만 끌어 묻었다 미안하다…돼지야…”

“참혹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돼지 무덤 앞에서 영혼을 위로하는 고사를 지내는 이혜민 기자의 아버지.

구제역이 진정국면에 들어가던 1월 말쯤 내가 태어난 농장을 찾았다. 경기도에서 35년째 돼지를 키우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일터인 그곳은 상경한 나머지 가족의 쉼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농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검역관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돼지를 몰고 있다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보니 꽥꽥 소리를 내며 띄엄띄엄 줄지어 가는 돼지와 그 돼지를 손과 발로 미는 군인 30여 명이 눈에 띄었다.

농장 길 건너편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오리 사러 모란시장에 갔을 때 사드린 검정바지가 보였다. 아버지였다. 땅에 묻기 위해 돼지를 몰면서도 애써 웃으며 “뭐 하러 왔느냐”는 아버지를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경북 안동에서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발한 지 두 달째. 열심히 소독하고 외출을 삼갔지만 우리 농장도 구제역을 피해갈 수 없었다. 며칠 새 새끼 돼지 200마리가 죽어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더니 양성 판정이 나온 것이다. 이후 어미돼지 9마리가 입과 젖꼭지 부위가 헐고 피가 나는 구제역 증상을 보였다. 검역관은 나머지 돼지를 위해 이 돼지들을 아버지가 직접 살처분할 것을 권했다.

그사이 감염된 돼지가 늘어났고, 결국 이런 증상을 보이는 돼지 100여 마리를 처분하기로 했다. 출하 시기를 넘긴 돼지 500여 마리도 처분 대상이기는 마찬가지. 이미 백신을 맞았지만 구제역 바이러스에 노출돼 감염이 우려되는 데다, 감염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돼지의 판로가 없었던 것이다. 정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언제까지 사료만 축내며 키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시가 100%를 받고서 돼지를 묻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독했는데 구제역 괴물 닥쳐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다 말다를 반복하다 끝내 구덩이에 빠진 돼지 울음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옆 동네에서는 돼지를 살처분할 때 그간 돼지를 길러온 농장 관리인이 입게 될 정신적 피해를 고려해 그 현장을 보지 못하게 한다지만, 이 지역은 그런 정책이 없어 아버지를 포함한 농장 관리인이 키우던 돼지를 직접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아침 7시부터 구덩이를 판 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돼지몰이는 해가 저물도록 끝나지 않았다.



허기진 나는 이 와중에도 “공무원과 밥을 먹고 있으니 넌 나가서 뭐 좀 먹고 오라”는 아버지 말씀에 염치없이 콩나물해장국을 먹으러 나갔다 왔다. 좀전에 서 있던 곳으로 다시 갔더니 강한 라이트가 켜진 농장에서는 포클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동물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농장의 하릴없는 똥개에까지 매일같이 우유를 데워주며 챙기는 아버지가 느꼈을 고통, 나는 짐작하지 못한다.

자정이 다 된 시각. 방역관, 군인, 공무원이 차례로 농장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흙과 똥으로 범벅된 아버지를 만났다. 점심때 단체로 시킨 도시락을 나중에 먹으려고 챙겨뒀다는 아버지. 구제역 바이러스가 묻어서 군인들이 버리고 간 컵라면을 층층이 쌓아 든 아버지가 해맑게 웃으며 “늦었으니 어서 가라”며 말하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고 보면 난 세 딸 가운데 그런 아버지를 가장 많이 이해하던 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매일 아침 농장장 아저씨에게 ‘오늘은 돼지 값이 1200원’ ‘오늘은 1300원’이라고 말하는 통에 공책 한 권 마음대로 사지 못했던 나였다. 돼지 한 마리 값이 공책 값과 똑같다니…. 그러다 보니 심지어 어머니보다 내가 더 알뜰하다며 장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 숫자들이 돼지 한 근 값인 걸 알았지만 이후에도 아버지를 보면 돼지 키우느라 딱딱해진 손이 먼저 보인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다. 봄이면 앵두를 따다 주었고 여름이면 자두를 따다 주었으며, 가을이면 운동회에 와주었고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에 데려가주었다. 딸들의 결정을 언제나 존중해주는 아버지는 딸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그간 수없이 많은 돼지를 팔았을 것이다.

“마구잡이로 도살, 말도 안 되는 짓”

아버지는 초기 구제역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우리 농장도 피해를 입을까 전전긍긍했다. 불안감에 나에게 손을 내밀며 “힘드니 손을 잡아달라”고 하신 적도 있다. 하지만 구제역은 기어코 우리 농장까지 들이닥쳤고, 아버지는 당신의 손으로 돼지를 묻어야 했다. 돼지를 묻은 아버지는 예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조금씩 날카로워진 아버지는 더러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했다.

“초기에 언론은 구제역의 심각성을 알리지 않았어.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라 방역을 제대로 안 했고. 우리 농장 일대만 해도 차량 소독기가 구제역이 발발한 지 한참 뒤에 생겼지. 살처분한 뒤에도 당국의 태도는 안이하기 짝이 없었어. 돼지를 처분했으면 농장을 소독해줘야지, 자기네들 장비만 소독하더라고. 결국 돼지만 죽이고 구제역 바이러스는 그대로 두는 거잖아!

빈 돼지우리를 우리보고 소독하라는데, 실의에 빠진 사람이 소독을 얼마나 철저히 하겠어. 예전처럼 구제역 발생지가 적었다면 살처분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이번처럼 대부분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는데도 청정지위를 빨리 회복하겠다며 마구잡이로 돼지를 죽이는 건 말도 안 돼. 백신을 놓았다면 살릴 건 살리고 죽일 건 죽이면서, 차근차근 청정지위를 회복하면 되는 거 아니니?”

돼지를 묻은 지 일주일. 아버지는 급기야 시루떡과 장국을 사다놓고 고사를 지냈다. 고사 때마다 으레 돼지머리를 두고 절을 하지만 이번에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곳곳에 돼지 피가 솟아오른 흔적이 있는 돼지 무덤을 돌면서 아버지가 천천히 외쳤다.

“태어나고 자라서 팔리는… 너희만의 운명이 있는데… 참혹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아기돼지들은 보살핌을 받고 자라야 하고… 어미돼지는… 함께 살아가는 농장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 돼지야….”

아버지는 오늘도 그 무덤을 지나며 돼지를 땅에 묻던 날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 또한 정든 고향만 생각하면 돼지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죽어간 돼지들만큼은 그날의 아픈 기억을 잊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 생애에는 누구보다 고귀한 존재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하늘이 그렇게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하늘은 하늘이 아닐 것이다.



주간동아 2011.02.21 775호 (p52~53)

이혜민 여성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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