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5

2011.02.21

소문난 검사 집안 간 소송, 냉정한 판결

가족에 검사 셋 둔 피고인 1심서 징역 7년형 … ‘법조인 프리미엄’ 배제 엄격한 법 적용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11-02-21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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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난 검사 집안 간 소송, 냉정한 판결
    【결론】

    ‘이 사건 공소 사실은 전부 유죄로 인정하고, 피고인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선고형의 결정】

    ‘징역 7년. 사건 피해 금액이 372억 원에 달하는 점(피해 회사의 2007년 당기순이익의 7배가 넘는 액수), 그럼에도 피해 회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사건 범행 과정에서 자격을 모용(冒用)해 문서를 작성하고, 계약서를 위조하는 등 부정한 수단까지 사용했으며….’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배광국)는 2월 1일 ‘검사 집안 분쟁’으로 화제가 됐던 사기사건에 대해 1년여의 심리 끝에 이같이 선고를 내렸다. 1심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이 전과가 없다는 점을 빼고는 재판부가 양형 단계에서 정상을 참작한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돈 측 회사 수백억 피해 입힌 혐의

    피고인은 검찰이 지난해 2월 불구속 기소한 미국의 국제무역 중개업체 한국영업소 대표인 김모(64) 씨. 김씨의 혐의는 사돈인 하모 씨가 운영하는 국내 굴지의 알루미늄 섀시 합금 제조 및 판매업체 S금속에 원자재를 싸게 공급해주겠다고 속여 2004년부터 4년간 보증금과 선급금, 신용장 대금 등 수백억 원을 가로챘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법조계 내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 이유는 피고인 김씨의 아들과 사위, 그리고 처남이 모두 현직 검사이기 때문이다. 김씨의 이런 가족 배경이 검찰 수사나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던 것. 가족 중 현직 검사가 있다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모종의 배려를 받았을 법하다고 여기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선 수사 과정에서 김씨의 아들과 사위 검사는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사시 동기로 각기 다른 지방 지청에 근무하는 두 검사는 30대 초반의 나이로 검사 경력이 2~3년에 불과하다. 수사 담당 검사와는 학연 등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김씨의 처남인 A검사는 경력 24년의 베테랑 고검 검사지만, 김씨를 고소한 S금속 대표 하씨의 매제이기도 해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있는 처지가 못 됐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에 사건을 배당해 해외무역 거래 분야 실무에 능한 검사가 수사하도록 했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한 이승우 검사는 김씨의 혐의 입증을 위해 김씨와 사돈 측 회사 사이에서 오간 선물거래 정황 및 매매계약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 자료와 증언 등을 꼼꼼히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수사 단계에서 김씨를 구속하려 했다. 김씨 측 1심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로고스의 정명희 변호사는 “검찰은 처음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다시 영장을 청구(두 번째도 기각)할 정도로 세게 나왔다”며 “가족 중 검사가 있다고 해서 수사 과정에 편의를 보거나 혜택을 받은 것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역시 피고인 김씨의 사돈인 S금속 하모 이사(대표 하씨의 동생)는 “A검사는 중재에 나선 적도, 수사에 관여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도 법조인 가족을 둔 ‘프리미엄’은 없었다. 피고인 김씨가 전관 변호사들을 대거 선임했으나 사돈 측도 고소 단계에서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김씨의 논리를 공박했다. 김씨는 공판에서 “사돈 회사와의 거래에서 오간 계약증거금은 사돈의 계약 이행을 담보하고 알루미늄 증권 할인을 위한 보증금 성격으로 자유롭게 사용하다 반환하면 되는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항소심에선 어느 집안이 웃을까

    또한 김씨는 “사돈 회사의 계약증거금 편취 의사에 대한 검찰의 공소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모두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김씨가 알루미늄증권 대금을 선지급 받더라도, 정상적으로 공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알루미늄 증권을 정상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기망했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김씨가 알루미늄 거래가 이뤄지는 런던금속거래소 직원의 자격을 모용(허위로 부정하게 사용)하고, 계약 관련 확인서를 위조한 공소 사실도 받아들여졌다.

    1심 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판결 직후 항소한 상태다. 김씨 측 정 변호사는 “항소 서류를 제출한 뒤 1심 변호인은 항소심 재판부에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 다른 변호인이 재판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고인 김씨의 처벌을 강력히 원하는 사돈 측도 비록 1심에선 승소했으나 친지와의 소송 자체가 부담스러운 눈치. 피해 업체인 S금속 하 이사는 “갈 길이 멀고, 사돈 관계지만 속내를 알 수 없고 답답한 마음”이라며 “억울한 면도 있고, 얘기 못 한 것도 많지만 일단 회사 신인도 문제가 있고, 손해 본 부분도 있어 묵묵히 순리대로 재판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1심 판결 이후 김씨와 접촉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엔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A검사에게 손위 처남과 매형의 구체적인 갈등 상황과 중재 여부에 대해 듣고자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A검사는 검사실 직원을 통해 “할 얘기가 없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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