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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시한폭탄 대학 실험실 ‘조마조마’

위험물질 둥둥 안전불감증 여전 … 체념한 학생들 위험에 지속 노출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시한폭탄 대학 실험실 ‘조마조마’

시한폭탄 대학 실험실 ‘조마조마’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2시 30분쯤 충남 아산시 호서대 건물 1층 방폭(폭파 방지) 시험실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오모(55) 교수가 사망했고 30대 연구원 1명은 얼굴에 화상을 입고 실명했다. 학부생 4명은 폭발음 때문에 고막이 찢어졌다.

압축천연가스(CNG)버스 폭발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던 오 교수는 철제 가스통에 천연가스보다 폭발력이 좋은 액화석유가스(LPG)를 넣은 상태에서 산소를 주입했다. 오 교수가 철제 가스통을 감싸는 알루미늄 박스를 연 채 산소를 더 넣자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통이 폭발했다. 한 동료 교수는 “당시 오 교수 등이 연구실안전법을 준수해 밀폐형 고글을 쓰는 등 안전장치를 철저히 갖췄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대학 실험실 사고는 매년 끊이지 않는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 6월까지 전국 대학 및 연구기관 연구실에서 발생한 사고는 모두 394건. 2005년 ‘연구실 안전 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연구실 사고는 2006년 14건, 2007년 39건, 2008년 116건, 2009년 163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더 문제인 것은 이 중 대부분이 안전수칙만 지켰으면 예방할 수 있는 안전사고였다는 점이다.

발암물질 날려도 ‘뭐, 죽기야 하겠어’

“우리 연구실에서 다루는 물품 중 독극물을 나타내는 해골바가지가 안 그려진 게 없어요. 위험하지 않은 약품 찾는 게 오히려 쉬울 정도죠.”



경기 모 대학 화학공학과 A씨가 하루 10시간 넘게 생활하는 실험실에는 검은 먼지가 둥둥 떠다닌다. 바로 탄소동소체의 한 종류인 카본 나노튜브(carbon nanotube)다. 카본 나노튜브는 워낙 입자가 작아 바람에 잘 날린다. 공기 중에 있다가 사람이 호흡할 때 그대로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이 약품을 사용할 때는 마스크와 장갑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A씨는 마스크를 쓰기는커녕 연구실 천장에 달린 배기 후드도 돌리지 않는다. 그는 “선배들도 이런 공간에서 계속 생활했는데 막내인 내가 ‘마스크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가 부담스럽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도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며 “지금은 ‘뭐,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이라고 털어놓았다.

서울 모 대학 이공계 한 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B씨도 실험 중 유기용매, 붕산 등 독성물질을 다루면서 보호장구를 잘 갖추지 않는다. 그는 “이전에 유해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눈에 튀어 응급실에서 세척하는 등 ‘식겁’한 적이 있지만 이후에도 번거롭다는 이유로 고글을 잘 쓰지 않는다”며 “한번 든 버릇은 정말 고치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모 대학 화학공학과 C씨의 실험실 바닥과 책장에는 위험약품이 죽 늘어서 있었다. ‘화학약품은 밀폐형 찬장에 종류별로 보관하라’는 한국엔지니어링협회의 권고를 듣지 않는 것. 이에 대해 C씨는 “워낙 연구실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했다. 약품 중에는 이름, 위험 여부 등이 표시되지 않은 것도 있었고, 한 낡은 찬장은 올려둔 약품이 너무 많아서 가운데가 휘어졌다. 만약 찬장이 무너지면서 약품이 섞이면 아찔한 사고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연구실 내 팽배한 안전불감증의 1차 책임은 학생들에게 있다. 하지만 안전을 생각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이 모든 책임을 학생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기자가 취재한 서울·경기 지역 10개 학교 이공계 실험실 중 방독면, 마스크, 위생장갑, 실험복 등을 연구실을 이용하는 학생 수대로 갖춘 곳은 3개 학교에 그쳤다. 한 학교에서만 개인보호구를 넣을 수 있는 함을 따로 만들어 고글, 마스크, 장갑 등을 제공할 뿐 대부분 학교에서는 ‘그림의 떡’과 같은 이야기였다.

C씨는 “학교에 보호구를 달라고 하면 마련해주기야 하겠지만 요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실습비 때문에 등록금도 문과생보다 많이 내는데 학교 측에서 알아서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공간 역시 문제다. 대부분 대학의 이공계 실험실은 논문을 쓰는 연구실과 분리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실험을 마친 뒤에도 지속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A씨는 “실험을 할 때 보호구를 아무리 잘 갖췄다 해도 실험 내용을 정리하려면 장비를 벗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공기 중에 남아 있는 위험물질을 마시게 된다”고 말했다. B씨는 “대부분의 대학이 가장 낡은 건물을 이공계 실험동으로 사용한다. 현실을 뻔히 알면서 ‘학생 연구실을 분리해달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건강과 생명 담보로 연구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늘 건강을 걱정한다. 서울 모 대학 화학공학과 D씨는 “석사과정 진학으로 이곳에 온 이후로 자주 피곤하다”고 말했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서울대 화학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E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금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지만, 더 어렸을 때는 걱정이 정말 많았어요. 말도 더뎠고 걷는 것도 또래보다 늦었거든요. 시댁에서 ‘아이 발달이 왜 느리냐’고 하실 때마다 제가 임신 전후로 유독물질을 실험한 것이 문제가 된 게 아닌가 조마조마했어요. 아이에게 죄책감까지 들어 울기도 했죠.”

고려대 이공계 출신 한 학생은 “이공계에서는 공공연하게 ‘불산을 쓰면 정자 꼬리가 잘린다’ ‘붕산을 쓰면 아들을 못 낳는다’ ‘화학공학과 실험을 자주 하면 머리가 빠진다. 그래서 그 과 교수 중에는 대머리가 많다’는 속설이 전해진다”며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지만 섬뜩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2005년 제정된 시행령에 따라 대학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는 학생들은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 건강검진을 받은 학생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B씨는 “X레이, 혈압, 피검사 등을 했지만 일반 건강검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벤젠, 에테르 등을 검출할 수 있는 특수검사는 신청자만 받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F씨는 “검사 후에도 실제 내 몸에 어떤 물질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등은 알 수 없어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정기적인 안전교육도 필수지만,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학교 측에서도 공부에 바쁜 학생들을 매달 한 차례 강당에 몰아넣고 안전 강의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한다. 자연히 강제성은 약해진다. F씨는 무덤덤하게 “대부분 학생은 연구실 안전 온라인 교육 강의를 틀어놓고 딴짓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억지로 잡아놔도 들을까 말까 한 안전 강의다. 성적에도 안 들어가는 강의를 자유롭게 인터넷으로 들으라니,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E씨는 “이렇게 현실이 열악한 줄 알았다면 화학공학과 진학을 망설였을 것”이라며 “내 자식은 웬만하면 이공계에 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상민 의원은 “최근 3년간 3만6000명의 사립대 이공계 학생이 떠날 정도로 ‘이공계 엑소더스’ 현상이 심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열악한 이공계 환경”이라며 “과학 꿈나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연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는 “대학실험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대학별로 더욱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2011.02.21 775호 (p48~49)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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