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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0억원 준비? 아닙니다 은퇴 지식부터 쌓아야죠”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우재룡 소장 “종합적인 생활설계 한국적 모델 만들 터”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10억원 준비? 아닙니다 은퇴 지식부터 쌓아야죠”

“10억원 준비? 아닙니다 은퇴 지식부터 쌓아야죠”
‘10억 원을 모으지 못하면 당신의 노후생활은 찌질해진다.’

지금껏 보험회사가 제시한 은퇴설계는 이렇듯 공포 마케팅에서 출발했다. ‘얼마의 돈을 미리 모아놓지 않으면 노후에 돈이 없어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 돈을 모아서 투자를 해야 한다. 거기에 적격인 상품이 우리 보험회사 것’이라는 식이다. 보험회사의 판에 박힌 행태 탓에 ‘은퇴설계’란 말만 꺼내도 보험회사의 상술로 치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 이런 상황에서 상품 판매가 아닌 바람직한 은퇴문화를 만들자며 100여 명의 매머드급 연구조직을 갖춘 은퇴연구소가 출범해 눈길을 끈다.

자녀가 은퇴설계의 적

2월 10일 삼성생명은 지난해 8월 FP(Financial Planner)센터 산하에 설립했던 은퇴연구소를 퇴직연구소와 합쳐 CEO 직속 연구소로 확대·개편했다. 한국 최초의 펀드평가사인 한국펀드평가를 설립해 대표이사를 지냈고 적립식 펀드를 국내 최초로 소개해 ‘펀드 전도사’로까지 불렸던 삼성생명 우재룡(50) 상무가 초대 소장을 맡았다. 펀드를 연구하면서 펀드자금의 60% 이상이 노후자금인 것을 알게 된 우 소장은 자연스럽게 은퇴설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국제재무설계사(CFP) 은퇴설계 교재를 저술하는 등 은퇴 전문가로 변신했다. 2월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 24층에서 우 소장을 만나 은퇴설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올해 보험업계의 화두 중 하나가 ‘은퇴’지만 외국에 비해선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은퇴란 경제적인 소득이 더는 생기는 않는 시기를 말한다. 직장을 수시로 그만두는 퇴직과는 다른 의미다. 우 소장은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휴대전화를 꺼내들더니 사진 한 컷을 보였다. 건물이 촘촘히 박혀 만들어진 동그라미가 기묘한 모습을 자아낸다.

“1960년대 미국 애리조나 주에 조성된 선시티입니다. 노인 촌락인 선시티는 넓은 대지에 4만 명의 노인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지가 원형으로 형성돼 있습니다. 원형 가운데에는 숙식시설과 종합병원 등이 있고 주변을 골프장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우리보다 40년이나 앞서 노후 문제를 풀려고 고민했습니다.”

반면 그는 한국인의 3분의 2가량이 은퇴설계가 전혀 돼 있지 않다고 경고했다. “은퇴설계를 해야지” 말만 할 뿐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으니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나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3분의 1도 국민연금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우 소장은 은퇴설계의 적(敵)으로 자녀를 지목한다. 자녀의 교육비에 결혼자금 준비까지 부모들이 도맡다 보니 정작 자신들의 은퇴설계는 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10억원 준비? 아닙니다 은퇴 지식부터 쌓아야죠”
“정확한 은퇴설계는 자식들과의 단절에서 시작됩니다. 지금의 40, 50대는 낀 세대입니다. 20, 30대 젊은 층은 냉철한 경제적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40, 50대는 자신들의 부모를 예전처럼 모시지만 자신들은 자식들에게서 동일한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우 소장은 은퇴 이후 행복한 삶을 살려면 5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후생활비, 의료비, 취미생활, 건강, 제2의 직업이 그것이다. 제2의 직업이 꼭 직장을 구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의미다.

“저는 ‘Third Age’란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인생의 첫 번째 시기가 배움의 시기였고, 두 번째가 일을 해 사회에 공헌한 시기였다면 은퇴 이후 세 번째 시기는 자신만의 삶을 위한 시기가 돼야 합니다.”

3월 안으로 은퇴 포털 만들어 정보 제공

이를 위해선 노후준비에 얼마가 필요하니 지금 어디에 어느 정도 투자해야 한다는 기존의 자산관리 개념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생활설계(Life Planning)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은퇴설계는 재무적인 요소에 치중된 잘못된 모델이었다고 비판했다. 노후생활비는 의료비와 같은 재무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취미, 사회봉사, 가족관계 등 비재무적 요소가 결합해 양쪽이 조화를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

“무엇보다 은퇴에 대한 문화와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은퇴라고 하면 지루하고, 외롭고, 냄새나는 식의 부정적인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런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단순히 재무적 준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는 바람직한 은퇴설계를 위한 몇 가지 조언을 건넸다. 먼저 은퇴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 은퇴 이후 삶은 ‘활동기-회고기-간병기-아내 홀로 생존기’의 4막으로 나뉜다. 각 시기의 특징과 준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면 그만큼 시행착오가 커진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은퇴설계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노후에 10억 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내를 위한 은퇴설계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남편 사망 후 아내는 홀로 10년을 더 생존합니다. 아내 역시 질병에 시달리거나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상당한 의료비, 간병 비용을 지출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훌륭했다 하더라도 남편 사망 후 아내가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일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한국적 은퇴모델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은 2050년이면 국내 인구의 41%가 노인일 만큼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반면에 자산 중 유동화가 어려운 부동산의 비중이 높고, 외국과 달리 노인을 위한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선진 외국의 사례가 참고는 될 수 있지만, 그대로 대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노인이 즐기며 일하고, 스스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합니다. 한국인에게 맞는 은퇴설계 모형을 구축하고, 고객의 니즈(needs)를 고려한 유형별 콘텐츠를 개발할 것입니다.”

우 소장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은퇴연구소는 은퇴설계를 알리기 위해 3월부터 전국 80여 개 삼성생명 지원단을 통해 일반인에게 은퇴스쿨 및 클리닉을 제공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삼성생명 FP센터 소속 100여 명의 재무설계 전문가가 강의에 나서게 된다. 삼성생명 보험 가입과 상관없이 은퇴준비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누구나 은퇴스쿨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은퇴클리닉에선 은퇴준비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단받고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10억원 준비? 아닙니다 은퇴 지식부터 쌓아야죠”
“이르면 3월 안으로 국내 최대 은퇴 포털을 만들 계획입니다. 은퇴 포털은 은퇴스쿨, 은퇴클리닉과 함께 온·오프라인으로 각종 은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은퇴연구 싱크탱크로 거듭날 것입니다.”

우 소장의 거침없는 행보에 의구심 어린 눈길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 됐든 이윤을 추구하는 생명보험사가 결국 상품 판매를 강권하지 않겠냐는 것. 이에 우 소장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은퇴문화 조성이 먼저”라고 반박했다.

“바람직한 은퇴문화가 형성돼 제대로 된 은퇴설계가 이뤄진다면 생명보험사들에게도 이익입니다. 지금처럼 은퇴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의료비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려 합니다.”



주간동아 2011.02.21 775호 (p44~45)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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