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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인생, 장난 좀 쳤지

연극 ‘대머리 여가수’

부조리한 인생, 장난 좀 쳤지

부조리한 인생, 장난 좀 쳤지
연극 ‘대머리 여가수’에는 대머리 여가수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 ‘비슷한’ 대사 하나만 있을 뿐. 소방대장은 묻는다. “그런데 대머리 여가수는?” 멍한 표정의 서씨 부인의 대답은 “늘 같은 머리 스타일이죠.”

한 에피소드만 예를 들어보자. 팔짱을 끼고 등장한 부부가 갑자기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서로 ‘혹시 나를 본 적 없느냐’며 삶의 궤적을 맞춰보고, 마침내 둘은 같은 집에 거주하는 부부라는 사실을 알고 포옹한다. 이런 식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생각하면 복잡해지고 촌스러워진다. 줄거리를 옮기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고 유치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대머리 여가수’는 연인이 손잡고 볼만한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안 친한’ 연인이라면 ‘있어 보이려고’ 작품의 의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일지도 모르고, 오래된 연인이라면 연극에 대해 ‘뒷담화’를 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은 서로 “왜 이런 연극을 선택해서 내 시간을 망쳤느냐”고 싸우는 것.

그럼에도 중요한 건 이런 연극이 대학로 어디엔가 꼭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굳이 ‘저변 확대’라는 고리타분한 단어를 쓰지 않아도 좋다. 대학로에는 제목만 봐도 이미 극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뻔할 뻔’자 작품이 범람한다. 그런데 소비와 ‘티켓 앵벌이’의 도시로 전락한 대학로에서 부조리극의 대부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표작을 볼 수 있다니! 그 자체가 연극 팬에겐 축복이다. 게다가 이 난해한 작품을 무대에 올린 주인공이 ‘클로저’ ‘풀포러브’ ‘트루웨스트’ 등을 흥행으로 이끈 ‘무대가 좋다’ 팀에 연출은 유명배우 안석환 씨, 즉 ‘대학로의 주류(主流)’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온몸으로 부조리를 표현한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부조리극인 이근삼의 ‘원고지’에는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맞아떨어지는 상징이 있었다. 남편의 몸을 감싼 사슬은 가장으로서의 의무, 원고지 무늬의 옷은 고정된 업무 및 일상의 상징이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대머리 여가수’는 그조차 없다. 그래서 더욱 난해하고 정신이 없다.



해석이나 의미 찾기는 필요 없다. 배우들은 “정신 차리고 살기 힘든 부조리한 인생에 이 정도 장난은 괜찮지 않느냐”며 말을 건다. 어려울 수도 어렵지 않을 수도, 지루할 수도 지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부조리의 향연이 펼쳐지는 2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관객은 넋을 놔야 한다. 웃기면 웃고 어려우면 갸우뚱하고, 그렇게 생각 없이 흔들리다 보면, 결국에는 웃을 수도 웃지 않을 수도 있다. 3월 31일까지. 대학로 SM 아트홀. 문의 02-764-8760.



주간동아 2011.01.31 773호 (p114~114)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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