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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味食生活

바리에 세속의 욕망 담아서야…

사찰음식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바리에 세속의 욕망 담아서야…

바리에 세속의 욕망 담아서야…

들척지근한 전분 소스를 끼얹은 사찰음식점의 요리.



1990년대에 사찰음식을 취재하러 다닌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불자도 아니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어떤 신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음식의 원형이 그 안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음식은 일본 식민지배와 6·25전쟁, 급격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조선의 것과 확연하게 달라졌다. 민간(속세)과 다소 떨어져 있는 사찰에는 조선의 흔적이 그래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취재를 접어야 했다. 몇몇 사찰을 빼고는 대부분 사찰음식의 전통을 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방은 현대식으로 바뀌었고 공양을 맡아 하는 분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보살’이기 일쑤였다. 민가 음식에서 육류와 오신채가 빠진다는 것 빼고는 특별해 보이는 뭔가를 찾기 어려웠다.

당시에도 사찰음식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스님들이 있었는데, 뒤집어보면 사찰음식의 전통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취재를 하면 되겠다는 미련이 없진 않았으나 몇 분의 스님을 더 만나고 나서 깨달았다. ‘민간인’의 눈으로 수행자의 밥그릇을 들여다보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스님은 원래 탁발로 먹고살았다. 바리를 들고 민가에 내려가 음식을 얻어서 먹는 것이 탁발이다. 스님은 도를 닦아 중생을 구제해야 하는 의무가 지워져 있으니, 음식을 구하는 노동은 중생이 맡아서 하고 그 결실물을 스님에게도 나누자는 전통이다. 이 탁발이 현물을 넘어 돈 공양으로 바뀌면서 가짜 승려가 나돌았고, 그래서 현재 불교의 종단들은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어느 사찰의 공양간에서 한 스님이 내게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중들은 말이야, 바리에 든 것은 다 먹어야 하잖아. 그 음식들은 중생이 힘들여 마련한 것이니 밥알 한 톨 버리면 안 되겠지. 어느 때에 한 중(오래돼 이름을 잊었다)이 문둥이 환자 집으로 탁발을 간 거야. 문둥이가 나와 스님이 내미는 바리에 밥을 담는데 그만 손가락이 뚝 떨어져 그 속에 담기고 말았어. 그 중이 바리에 담긴 문둥이의 손가락을 빤히 보았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자네가 중이면 어쩌겠어? 그 중은 그 손가락을 먹었어.”

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로 그 법맥을 잇는다. 그러니 누구한테 배웠느냐는 것이 중요한데, 이름난 큰스님에게는 제자가 많다. 그 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에는 자신의 법맥을 제대로 이었다고 인정하는 제자를 불러 바리와 가사를 건네준다. 그렇게 해 간혹 큰스님들이 긴 역사를 지닌 바리를 가지고 있다. ‘바리를 깬다’ ‘바리를 버린다’는 말이 곧 환속을 뜻할 만큼 스님들에게 바리는 특별난 의미가 있다. 불교계에서 신망이 꽤 높은 분을 뵌 적이 있는데 이런저런 말을 나누다 바리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바리를 받았지. 그 바리는 내 스승이 그 위 스승한테 받은 것이어서 역사가 길지. 그런데 지금은 그 바리가 없어. 불교학교를 해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선반에 올려놓은 내 바리를 누가 가져간 거야. 한 3년 됐나? 지금은 뭐 쓰냐고? 플라스틱 바리야. 밥만 담기면 되지 뭐. 그래도 아깝지 않느냐고? 누군가 잘 쓰고 있을 것이니, 그러면 됐지 뭐.”

최근에 사찰음식을 두고 웰빙 음식이라며 파는 식당이 늘고 있다. 고기와 몇 가지 향신료가 빠졌다고 웰빙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이런 풍토가 답답했는지, 정산 스님(동산불교대 사찰요리문화학과장)은 어느 신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승려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진리 탐구와 중생 구제의 길을 찾아 입산을 결심한다. 산에서 내 몸에 좋은 음식을 탐하고, 내 몸에 이로운 음식을 먹는다면 이율배반이다. 사찰음식은 수행식이자 고행의 음식이며, 따라서 쓰고 거칠며 간이 덜 된 음식이다.”

어느 날 방송에서 사찰음식이라며 콩고기를 보여줬다. 서양의 채식주의자들이 고기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콩 단백질을 변형해 만든 게 이른바 콩고기다. 그런데 이 근대의 산물이 수천 년 전통을 지닌 한국불교의 음식이라고 버젓이 소개되고 있다. 사찰음식점의 바리에 담긴 게 세속의 욕망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주간동아 2011.01.24 772호 (p74~74)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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