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CULTURE

풀빵엄마, 당신의 사랑 지구촌을 울렸네요

휴먼다큐 ‘풀빵엄마’ 에미상 수상 … 한국인의 위대한 모성애와 삶의 가치 제고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풀빵엄마, 당신의 사랑 지구촌을 울렸네요

풀빵엄마, 당신의 사랑 지구촌을 울렸네요
카메라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역배우들은 주로 부모, 특히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상황을 떠올리며 슬픈 감정을 잡는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엄마의 부재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충격이자 아픔이다.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죽어야 하는 시한부 인생의 엄마는 그렇기에 자신의 운명에 절망하면서도 더욱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된다.

위암 말기 환자로 풀빵 장사를 하며 여덟 살,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고(故) 최정미 씨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MBC ‘휴먼다큐 사랑-풀빵엄마’(이하 ‘풀빵엄마’). 2009년 5월 8일 처음 방송된 이후 시청자들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냈다. 그해 7월 30일 최씨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후 뒷이야기까지 추가해 12월 25일 재방송됐을 때 이 프로그램은 본방(12.6%)보다 높은 시청률(15.1%)을 기록했고, 아이들을 위한 모금운동이 펼쳐지는 등 더욱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한국인 엄마의 위대한 모성은 세계인의 마음도 움직였다. ‘풀빵엄마’가 11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 에미상(The International Emmy Awards)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국제 에미상은 미국TV예술과학아카데미(NATAS)가 매해 부문별로 외국의 우수 TV 프로그램 중 한 작품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 1999년 MBC ‘건널 수 없는 바다’, 2008년 KBS ‘차마고도’가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노미네이트된 적은 있으나, 한국 작품이 수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은 영국 BBC 등 유럽 방송 출품작들이 독차지해왔다. 아시아권에선 1999년 일본 마이니치 방송 출품작이 유일하게 수상한 바 있다. 특히 에미상이 거대담론의 사회적 이슈를 선호해온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휴먼 다큐멘터리인 ‘풀빵엄마’의 수상은 MBC 내부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MBC 내부에서도 뜻밖의 수상



MBC ‘휴먼다큐 사랑’의 정성후 CP는 “올 초 에미상 출품작을 선정할 때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도 물망에 올랐으나, 절박한 상황에서 강인하고 아름다운 모성애를 다룬 ‘풀빵엄마’가 우리나라 사람들뿐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겠다는 역발상을 했다”며 “수상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가 나온 걸 보니, 인간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풀빵엄마’를 연출한 유해진 PD는 “최정미 씨의 위대한 모성애가 상을 받은 것이다. 난 그저 영상으로 옮겼을 뿐인데, 그분의 사랑을 10분의 1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며 겸손해했다. 유 PD는 2006년 간암 말기 여주인공과 남편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휴먼다큐 사랑-너는 내 운명’을 만들어 그해 아시아 TV어워즈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과 2007년 캐나다에서 열린 반프 월드TV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적이 있다. 또 그는 ‘엄지공주’ 윤선아 씨, 자폐아 수영선수 김진호 군 등의 사연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엔 사회적 이슈가 강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휴먼다큐-사랑’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사람이 주는 감동이 그 어떤 것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됐죠. ‘너는 내 운명’을 만들 때는 부부의 사랑이 정말 예뻤어요.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랑이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지 처음으로 목격했죠. ‘안녕 아빠’(시한부 인생이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위해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은 가장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를 하면서는 가장의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의 사랑이 한층 깊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처럼 사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지한 탐구, 따뜻한 감성을 담은 휴먼 다큐가 그 어떤 ‘강한’ 프로그램보다도 ‘강하다’는 걸 느꼈죠.”

그런데 ‘풀빵엄마’는 시한부 인생을 다루려고 제작한 것은 아니었다. 탤런트 최진실 씨의 자살을 추모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싱글맘’에 관심을 가지다가, 싱글맘인 최씨를 만나게 됐다.

“그동안 아픈 분을 많이 만나다 보니, 제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순전히 싱글맘으로 만난 최정미 씨도 위암 말기였던 거예요. 부담이 있었죠. 하지만 그분이 가진 매력과 사랑에 저도 폭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풀빵엄마’를 찍으면서 가슴 뭉클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최씨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일상을 공개하는 촬영에 선뜻 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용한 점쟁이’ 덕분이라고 했다. 최씨가 답답한 마음에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11월에 귀인을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신기하게도 11월 유 PD에게서 ‘풀빵엄마’의 출연 제의를 받자, 최씨는 그를 귀인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유 PD는 최씨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돌보던 사회복지사로부터 최씨가 “‘풀빵엄마’를 촬영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했다.

“2년 후 다 낫고 또 찍어요”

풀빵엄마, 당신의 사랑 지구촌을 울렸네요

‘풀빵엄마’를 연출한 유해진 PD.

“촬영을 끝내고 최씨 아이들과 놀이동산에 놀러 갔어요. 그때 ‘PD님, 2년 후에 또 찍으면 안 돼요? 다 나아서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라고 했죠. 시사 다큐멘터리 ‘W’를 맡은 후 출장 가기 전 인사를 하러 갔는데, 무척 밝은 모습이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죠. 아프리카에서 새벽 2시에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애통함과 함께 아이들이 걱정됐죠. 다행히 이후 아이들이 최씨의 친언니 부부에게 정을 붙이며 잘 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어요.”

그는 “‘휴먼다큐-사랑’ 시리즈는 6개월 이상 주인공들과 함께 지내면서 촬영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그들과 가족이 된다”며 “최씨 가족과 사랑하며 지낸 행복한 시간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 다큐멘터리는 ‘휴먼’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최근 아마존, 아프리카, 툰드라 등 자연을 담은 대작 다큐멘터리도 많이 나오지만, 이 프로그램들도 중심엔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사랑이 깔려 있다. 이는 프라이버시 존중이 강한 서양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찾기 힘든 점. 실제로 이번 ‘풀빵엄마’의 에미상 수상에서도, 이렇듯 한 인간을 진지하게 관찰해 깊이 있게 담아냈다는 사실이 관계자들을 무척 놀라게 했고, 그 노력을 인정받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유 PD는 “사회가 각박해지고 개인화될수록 사람들은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를 통해 그 어떤 사람의 삶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한국 휴먼 다큐멘터리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풀빵엄마’는 어떤 내용?

두 아이의 싱글맘 … 희망 굽다 위암으로 세상 떠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저는 최정미 씨.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5년간 동거했지만, 거듭된 불화로 헤어진 뒤 그는 자신의 성을 따른 두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싱글맘 최씨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고 살림을 했다. 5년 전부터 그는 매해 겨울 풀빵을 구워 팔았는데, 맛있다고 소문이 나 제법 매출이 좋았다.

그런데 2007년 7월 소화불량 때문에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위암 2기라는 것. 수술대에 올랐으나 4개월 후 전이됐고, 길어야 2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최씨는 ‘아이들이 스무 살 될 때까지 반드시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무리 아파도 그는 풀빵 장사를 놓을 수가 없다. 2009년 3월 첫째 딸 은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데다 세 가족이 함께 살 집도 마련해야 하기 때문. 그는 새벽부터 반죽을 준비하고, 늦은 밤까지 칼바람을 맞으며 장사한다.

두 살 어린 동생 홍현이를 엄마처럼 보살피는 은서는 어릴 때부터 아픔을 겪고 자라 나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 동생 세수도 시키고, 옷도 입히고, 밥도 차리고, 설거지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최씨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오늘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주간동아 2010.11.29 764호 (p64~65)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긴 터널 빠져나오자 우울의 고장”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