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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광활한 초원 달려 ‘칭기즈칸’ 만났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어얼뚜오스 칭기즈칸 무덤서 세상 호령 흔적 발견

  • 네이멍구=글·사진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광활한 초원 달려 ‘칭기즈칸’ 만났네

광활한 초원 달려 ‘칭기즈칸’ 만났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어얼뚜오스에 건립된 칭기즈칸의 묘. 시신은 발견하지 못해 칭기즈칸의 유물을 모아 건립했다.

중국의 북부 변경을 따라 길게 가로질러 있는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는 한때 몽골족이 세계를 호령하던 곳이다. ‘말 등에서 태어나 말 등에서 자라는’ 유목민족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오는 이곳 네이멍구 어얼뚜오스(鄂多斯)에 칭기즈칸의 무덤과 능원이 있어 매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오늘날 몽골족은 몽골인민공화국(외몽골)과 중국 영토인 네이멍구자치구(내몽골)에 주로 산다. 네이멍구자치구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원지대로, 수도는 후허하오터(呼和浩特)다. 후허하오터는 ‘청색의 도시’ ‘초원의 중심’이라는 뜻인데, 16세기 중반 시가지를 둘러싼 성벽을 개축할 때 청색 벽돌을 많이 사용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황량한 황무지였으나 지금은 석탄·철광석이 다량으로 채굴되는 자원의 보고로, 이 덕분에 초원의 신흥공업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멍구자치구는 북쪽으로 몽골인민공화국, 러시아와 접해 국경선의 길이가 무려 4221km나 된다. 인구는 2344만8800명에 이르며 한족, 몽골족, 회족, 만족 등 49개 민족이 어울려 산다. 이처럼 다양한 소수민족의 생활과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외국인에게는 더욱 흥미로운 여행지다.

얼마 전 인천에서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늦은 밤 후허하오터에 도착했다. 시내는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고층건물이 드문드문 보이는 전형적인 중국의 지방도시다. 이튿날 옛 몽골 군대의 훈련장인 거건타라(格根塔拉)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려도 보고 전통주인 마유주를 마시기도 했다. 밤에는 호텔 대신 몽골인의 전통가옥인 원주형 천막 형태의 파오(몽골인들은 겔, 중국인들은 파오라고 부른다)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어얼뚜오스에 있다는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았다.

서하 정벌길에 병사 비밀리 매장



1227년 여름 칭기즈칸은 서하(西夏) 정벌을 하다 병을 얻어 죽었다. 칭기즈칸의 죽음은 엄중히 비밀에 부쳐졌으며 그의 시신은 비밀리에 운구됐는데 운구행렬을 본 사람들은 가차 없이 살해됐다. 원나라 관리로 일했던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회고록에서 “칭기즈칸이 죽은 뒤, 영구가 운송되는 도중에 사람을 만나면 다 죽였다. 죽이기 전 그들에게 ‘현세를 떠나 내세로 가서 너희의 돌아가신 주인을 섬겨라’라고 말했다. 이렇게 죽인 사람이 2000명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당시 몽골에는 황족이 죽으면 밀장(密葬)하는 풍속이 있었다. 밀장을 할 때는 시신을 큰 나무를 잘라 속을 파낸 독목관(獨木棺)에 넣고 땅을 파서 관을 묻은 다음 흙으로 덮고 말들을 동원해 땅을 다져서 평평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풀과 나무를 심어서 이후 아무도 그 장소를 찾지 못하게 했다.

‘몽골 비사’에 따르면 칭기즈칸의 시신은 ‘기련곡’에 안장됐다. 몽골은 물론 중국,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기련곡의 정확한 위치를 찾으려 했으나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 일본인은 12억 엔을 들여 컨터산(肯特山) 부근에서 300여 개의 오래된 묘를 발굴했지만 찾지 못했다. 학자와 전문가들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다음 4곳을 꼽는다.

첫째 네이멍구자치구 어얼뚜오스의 첸리산(千里山), 둘째 닝하의 류판산(六盤山), 셋째 몽골의 항아이산(杭愛山), 넷째 몽골 국경지대의 컨터산 남쪽이다. 일부에선 기련곡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는 자리를 속이고자 일부러 부하들이 발설한 곳이라고 한다. 몽골족은 사람이 죽은 뒤 시체가 썩으면 영혼이 천당에 갈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보통 죽은 지 3일 안에 시신을 묻었다. 칭기즈칸이 죽었을 때가 무더운 여름이라 먼 거리 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정황을 들어 그가 병사한 류판산에 묻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226년 늦가을, 칭기즈칸은 몽골 병사들을 이끌고 서하 정벌에 나섰다. 그가 어얼뚜오스의 간더리(甘德利) 초원을 지날 때 아름다운 초원을 보며 말 위에서 막 떠오른 시를 읊조렸다.

광활한 초원 달려 ‘칭기즈칸’ 만났네

1 칭기즈칸 초상화. 2 칭기즈칸 묘에 있는 그가 사용했던 활과 화살. 3 몽골 전통가옥인 파오.

몽골인들 ‘민족의 성지’로 경건한 발길

“매화 피고 어린 사슴 뛰노는 곳, 후투티가 둥지 튼 보금자리, 무너진 왕조 부흥하는 땅, 나 백발노인 편히 쉴 곳이로다(梅花幼鹿栖息之所 戴勝鳥孵化之鄕 衰亡之朝復興之地 白髮吾翁安息之邦).”

그 순간 칭기즈칸은 들고 있던 말채찍을 땅에 떨어뜨렸다. 당시 몽골 사람들은 말채찍을 떨어뜨린 곳이 그가 죽으면 묻힐 곳이라고 생각했다. 칭기즈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수행하던 병사에게 말채찍을 그대로 잘 보존하라 명하고 아오바오(敖包)를 만들어 따로 표시하게 했다. 그런데 다음 해 칭기즈칸이 죽어 그의 영구차가 이곳을 통과할 때 진흙탕길에서 바퀴가 구르지 않아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련(起輦·가마여 떠나자)”이라고 소리쳤더니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바로 그 자리에 칭기즈칸을 묻고, 그곳을 ‘기련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믿는 많은 몽골인은 칭기즈칸이 어얼뚜오스의 간더리 초원에 묻혀 있다고 주장한다.

광활한 초원 달려 ‘칭기즈칸’ 만났네
네이멍구자치구 후허하오터 서쪽 포두(包頭)에서 남쪽으로 180km 지점에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간더리 초원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 심증은 가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오늘날 칭기즈칸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곳은 1954년 4월 1일 몽골 각지에 있던 칭기즈칸의 유물을 모아 건립한 의관총(衣冠塚)이다. 몽골인들은 이곳을 민족의 성지로 여겨 매년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제사를 지낸다.

입구에는 칭기즈칸의 묘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정전(正殿)은 높이 26m의 팔각형 형태다. 무덤은 정전과 침궁(寢宮), 동전(東殿), 서전(西殿), 동랑(東廊), 서랑(西廊) 6개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내부 중앙에는 5m 높이의 칭기즈칸 좌상이 있으며 금빛 기둥과 4대 칸국의 큰 벽화지도가 눈길을 끈다. 좌상 뒤로는 침궁이 자리했다. 이곳은 가장 경건한 곳으로 내부에 4개의 황금 비단으로 만든 파오가 있는데, 칭기즈칸과 3명의 부인이 잠든 관이 놓여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시신이 없는 일종의 가묘다. 이곳에서 칭기즈칸이 생전에 사용했다는 말안장 등 유물도 볼 수 있다. 침궁 앞 제단에는 향과 함께 800여 년 동안 칭기즈칸 묘를 지켜온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칭기즈칸의 후예인 ‘다얼후터’들이 하루 3교대로 침궁을 지킨다.

동쪽 파오에는 칭기즈칸의 아들과 며느리의 관이 안치돼 있다. 몽골족은 막내아들이 대를 잇는 관습이 있어 이 무덤은 막내인 넷째아들의 것으로 본다. 서쪽 파오에는 칭기즈칸이 생전에 사용하던 활, 무기류, 마유주통 등이 놓여 있다. 이외에도 뛰어난 몽골 장군들의 깃발과 창 등이 보존돼 있다.

이 모든 것이 몽골인에게는 중요한 문화재다. 이들은 특히 칭기즈칸의 묘를 신성시해서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다. 안내인은 카메라 불빛이 성군의 영혼을 해친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어렵게 허락을 얻어 사진 몇 장을 찍을 수 있었다.

칭기즈칸 무덤 건너편에는 엄청난 규모의 능원이 조성돼 있다. 하늘로 올라갈 듯한 2마리의 백마상이 양쪽으로 우뚝 서 있는 입구에서 초원을 내려다보면 세계 정벌에 나선 칭기즈칸의 군대가 진을 친 모습이 그대로 재현됐다. 지금 당장이라도 칭기즈칸이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설 것만 같다.



주간동아 2010.11.22 763호 (p72~73)

네이멍구=글·사진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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