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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용不敗’ 행복한 고민

日서 성공신화 임창용 ML에서도 ‘눈독’ … 심리적 안정감 바탕으로 쾌속투 뿌려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창용不敗’ 행복한 고민

‘창용不敗’ 행복한 고민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2011년이면 일본 진출 4년째를 맞는 임창용(34·야쿠르트)의 몸값이 ‘자고 일어나면 올라간다’고 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얼마 전 일본 언론은 처음에 3년간 9억 엔을 제시했던 소속팀 야쿠르트가 며칠 사이 3억 엔을 얹어 12억 엔(약 164억 원)을 제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야쿠르트뿐 아니라 마땅한 마무리 투수가 없는 한신이 일찌감치 임창용 쟁탈전에 뛰어들 것을 선언한 데다, 이승엽과 크룬 등 고액 연봉 외국인 선수들과 결별한 일본 프로야구계의 ‘큰손’ 요미우리도 그의 영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엔 지바 롯데도 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임창용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임창용은 아시아권 선수 중 영입 1순위로 꼽힌다. 최소 연봉 600만 달러(약 68억 원)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일본 진출 첫해인 2008년. 임창용은 1승5패 33세이브 방어율 3.00으로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낸 데 이어, 이듬해 방어율을 2.05로 낮추며 5승4패 28세이브를 마크해 ‘2년차 징크스’까지 보기 좋게 떨쳐냈다. 3년째인 올 시즌 활약은 더욱 돋보였다. 53경기에 출장해 55.2이닝을 던져 1승2패 35세이브. 일본 진출 후 한 시즌 자신의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방어율이 1.46에 불과하다. 35세이브는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통틀어 주니치 이와세(42세이브)에 이은 일본 프로야구 세이브 2위.

비록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내용 면에선 이와세를 압도했다. 이와세의 방어율(2.25)보다 좋은 건 물론이고, 양 리그 통틀어서 유일하게 한 번도 ‘블론 세이브(세이브 기회에서 동점이나 역점을 허용하는 것)’를 하지 않았다. 전문 마무리 투수 중 방어율 1위, 피안타율 1위(0.168)라는 빼어난 성적도 거뒀다. 더구나 마무리 투수로 출전경기 수보다 이닝 수가 많다는 사실은 그의 기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인받은 ‘최정상급 마무리’

한때 한국 프로야구에서 1998년 34세이브, 1999년 38세이브, 2004년 36세이브를 거두며 세 번이나 세이브 왕을 했던 임창용이지만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3년 동안(2005~2007년) 전 소속팀 삼성에서 거둔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2007년 5승7패 방어율 4.90, 2006년 1승 방어율 4.50, 2005년 5승8패 방어율 6.50을 기록하며 마무리 보직에서도 쫓겨났다. 승보다 패가 훨씬 많은 그저 그런 선수였던 것.



그런 그가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일본 진출을 선언하자 주변에서는 격려보다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 소속팀 사령탑이었던 삼성 선동렬 감독조차 비관적이었다. 임창용이 그해 막판 전성기 시절의 구속(球速)을 회복할 가능성을 비치긴 했지만, 일본 진출 후 이렇게 화려하게 부활하리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07년 말 임창용이 야쿠르트와 ‘2+1 계약’을 했을 당시, 그가 3년간 받을 수 있는 최대금액은 500만 달러였다. 그러나 말이 500만 달러지, 임창용이 2008년과 2009년 받은 ‘확정 연봉’은 고작 30만 달러와 50만 달러였다. 30만 달러(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약 3억 원)는 일본에 몸담은 용병의 최저연봉 수준이었다. 임창용이 한국에서 뛰었다면 쉽게 벌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임창용은 1군 등록일수, 출장경기 수, 세이브 수 등에 다양한 옵션을 걸며 과감히 일본 진출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2009년까지 2년 연속 1군 붙박이 멤버로 활약하며 옵션 대부분을 챙겼고, 2010년 구단이 ‘플러스 1년’ 계약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면서 임창용은 올해 연봉 160만 달러를 받았다.

현재 그가 몸값이 치솟는 가운데 여러 카드를 돌려보며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과정에서 나온 열매다. 그가 ‘30만 달러 확정 연봉’으로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일본에 도전한 것은 성공에 대한 자신감 덕분이었다. 2008년 일본에서 맞은 첫 시즌, 시속 150km가 넘는 빠른 볼을 뿌렸던 임창용은 2009시즌 160km에 가까운 광속구를 던져 화제가 됐다. 올 시즌에도 그는 꾸준히 직구 최고 구속이 150km 중후반을 기록했다.

임창용은 2005년 10월 흔히 ‘토미존 서저리(Tommy John Surgery)’라 부르는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2006년 단 한 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바닥까지 추락했던 구속이 일본 진출 직전 해인 2007년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임창용이 일본 진출을 결심하게 된 자신감의 근거 중 하나였다.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투수들은 일반적으로 재활을 잘 마쳤을 경우, 수술 전보다 구속이 빨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임창용은 “토미존 서저리 덕분에 구속이 늘어난 건 아닐 것”이라면서 “재활 프로그램이 팔꿈치에만 집중한 게 아니었다. 어깨까지 모든 근육을 강화할 수 있었고, 전체적으로 몸이 좋아진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팔꿈치 통증을 떨쳐낸 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아 투구 메커니즘상 최상의 각도에서 볼을 던질 수 있게 됐다고 보는 편이 더 맞다는 게 그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 타자를 압도하는 150km 중반의 ‘뱀직구’에는 이 같은 사연이 담겨 있다.

150km 중반의 ‘뱀직구’ 위용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시절, 그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노력을 하지 않는 선수’였다. 2002년 말과 2003년 시즌 중반에는 사생활 문제로 추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야쿠르트와 첫 계약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도 주변에서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에이전트 박유현 씨의 철저한 관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그라졌다.

박씨는 임창용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을 때부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대부분의 용병 선수는 구단이 제공하는 자가용을 끌고 다닌다. 하지만 박씨는 야쿠르트 홈구장 바로 앞에 전셋집을 얻게 해 ‘걸어다니도록’ 했다. 의도적으로 ‘발을 묶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임창용과 박씨는 단순히 ‘선수-에이전트’가 아니라, 끈끈한 정으로 연결돼 있으면서도 때론 냉정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는 이상적인 구조다. 임창용은 주변 사람들에게 “평생 유현이 형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할 만큼 그의 성공에 박씨가 큰 힘이 됐음을 숨기지 않는다.

한때 선수 생명이 끝났다는 혹평까지 받았던 임창용은 뒤늦게 일본 무대에 도전해 야구 인생의 꽃을 피우고 있다. 자신의 재능에 노력을 더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까지 받는 행운도 얻었다. 그의 앞날이 더 궁금해지는 것도 그래서다.



주간동아 2010.11.22 763호 (p68~69)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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