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3

2010.11.22

커져라, 세져라! 글로벌 외교 역량

G20 성공 개최 세계적 어젠다 주도 … 금융, 환경 등 이슈 중심 동적 체제로 전환 필요

  • 최원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wchoe06@mofat.go.kr

    입력2010-11-19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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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지난 1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서울 G20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G20 정상회의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우리가 치른 역대 최대의 국제적 외교행사였다. 일단 규모 면에서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 등 국가원수급 인사 33인을 포함해 수천 명의 정부 대표단과 4000여 명의 취재진이 한꺼번에 서울을 방문했다. 내용 면에서도 최근 격화되고 있는 환율갈등과 무역불균형뿐 아니라 국제금융기구 개혁, 글로벌 금융안전망, 개도국 개발격차 해소 방안 등 국제사회의 굵직굵직한 이슈를 의제로 다뤄 ‘G20 서울선언’이라는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G20 정상회의 개최로 확보한 경험과 성과를 어떻게 우리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와 선진국 진입의 자산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다. 특히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리가 ‘글로벌 거버넌스’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만큼, 앞으로 다양한 글로벌 어젠다에 대해 능동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선진국형 다자외교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글로벌 거버넌스는 세계적인 문제에 국가가 충분히 대응하지 않을 때, 국제사회가 그 해결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일컫는다.

    서울 G20 정상회의를 둘러싼 대외환경은 2년 전 워싱턴에서 1차 회의가 열릴 때와는 판이했다. 2008년 11월 G20 정상회의가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소집될 때는 리먼 브러더스라는 미국 굴지의 투자회사의 도산으로 세계 금융시장뿐 아니라 실물경제까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였다. 당장의 금융불안과 실물경제를 되살리는 것이 급선무였고, 위기극복을 위한 국제공조의 필요성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협력방안을 이끌어내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서울 G20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은 G20 국가들의 위기감과 협력의지가 현저하게 약화된 상황이었다. 세계경제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회복세로 돌아서자 강고했던 G20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겼고,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갈등이 표출됐다. 특히 지난 6월 캐나다 G20 정상회의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G20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었다. G20을 통한 국제공조의 성공이 역설적이게도 G20의 동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실질적 성과 내야 국제경제 협력체로 전환

    미국과 중국 간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갈등은 ‘환율전쟁’으로 치달았고, 미국은 위안화 환율문제를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제기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서울 G20 정상회의가 환율갈등으로 점철돼 아무런 성과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 이슈를 새로운 의제로 포함시켜 위기극복 이후의 세계경제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고자 했던 우리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불리한 대외환경에도 정부는 환율문제의 중재안을 마련해 주요국들을 설득하는 외교전으로 환율 가이드라인 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환율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평가하고 다음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이끌어낸 것이다. 또한 개도국에 악명 높았던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출제도를 개선하고, 선진국 위주로 돼 있던 IMF 지분을 신흥국으로 이전하는 지배구조 개혁도 이끌어냈다. 신흥개도국들의 주요 관심사항인 금융안전망과 개발 문제도 G20의 의제로 만들어 개도국의 리더로서 국제적 이미지도 확보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끌어낸 환율 가이드라인에 대한 합의는 앞으로 언제라도 뒤집어질 수 있는, 구속력이 없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경제위기 와중에서 급조된 G20이라는 비공식적 정상포럼의 태생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G20이 이런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국제경제 협력체로 제도화되려면 앞으로도 계속 실질적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G20은 우리가 참여하는 유일한 글로벌 정상포럼이다. 우리가 G20을 통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G20 무용론 같은 부정적 시각을 불식할 수 있게 G20의 성과 창출 능력을 강화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즉 G20이 형식적인 정상회의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신흥국들의 지분 참여를 확대하는 IMF 구조개혁이나, 내년 파리회의에서 이어가기로 한 G20 비즈니스 서밋 같은 손에 잡히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제는 주요국과의 양자 현안에만 몰두했던 과거의 개도국형 외교에서 벗어나, G20 같은 글로벌 현안에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선진국형 글로벌 다자외교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사실 환율갈등이나 IMF의 지배구조 개혁은 그동안 선진국과 중국 등 신흥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이슈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의장국으로 이들 이슈에 대해 강대국 간의 이견과 갈등을 중재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해냈다. 이러한 조정과 중재의 역할은 그동안 북핵문제와 한반도 이슈를 중심으로 주요국과의 양자 현안에만 몰두해왔던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 G20 정상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우리의 외교적 시야와 활동범위가 한반도와 동북아라는 좁은 범위를 넘어서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IMF 구조조정 대상국 한국이 IMF 개혁 주도

    G20 참여를 계기로 우리는 그동안 접근할 수 없었던 글로벌 현안에 대한 고급 정보를 접하고 국제금융경제 네트워크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1997~98년 외환위기 때 IMF의 고압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겪어야 했던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IMF의 개혁을 주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글로벌 거버넌스 참여가 얼마나 국익에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는 G20 정상회의 이후에 우리의 국제적 기여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글로벌 외교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외교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G20 정상회의가 일회성 행사가 아님을 고려할 때, 향후 글로벌 어젠다를 설정하고 주도할 수 있는 대내외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G20 정상회의 개최로 확보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강화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더욱 확대된 글로벌 외교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체계적인 인재양성체제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현재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가 추진하는 외교아카데미와 같은 전문외교인력 양성시스템을 확대하고 경제금융, 환경, 국제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인재를 키워 국제기구 등에 더 많이 진출시켜야 한다.

    또한 G20을 매개로 해서 우리의 외교적 외연을 기후변화, 녹색성장, 개발협력 등 주요 글로벌 어젠다를 중심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부 다자외교 담당부서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다자외교는 주요 국제기구를 상대로 한 정적인 대응으로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하는 글로벌 어젠다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이슈 중심의 동적인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 우리나라가 제기한 개발의제의 국가 브랜드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대외원조의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발전 경험에 기초한 개발협력 전략을 개발해 개도국에 전수하는 것이 우리의 독자적 기여 확대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특히 국제사회가 우리의 녹색성장 전략을 높이 평가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녹색성장 전략을 개발의제와 연계해 녹색개발협력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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