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3

2010.11.22

G20 사고 안 쳤으니 선물 보따리 내놓으라고?

북한 구애공세 불구 대북 강경파 큰 목소리…전향적 자세 없으면 긴장관계 당분간 지속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0-11-19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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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20 사고 안 쳤으니 선물 보따리 내놓으라고?
    “서울 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에는 남북관계가 좀 좋아집네까?”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북한을 방문한 한국인들에게 북한 당국자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북한 대남 파트 담당자들은 평소 “우리가 사고 안 치는 게 당신들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상응하는 대가를 내놔야 한다”라는 궤변을 철학으로 삼아왔고, 이번에도 내심 G20 기간에 아무 사고도 치지 않고 ‘참아준’ 것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듯하다. 실제로 남측의 일부 당국자와 전문가는 이명박 대통령이 G20 이후 정국 운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G20 정상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이 된 11월 20일 현재 상황은 북한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당국자들은 G20과 대북정책이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는 반응이다. 그리고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경제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대북정책의 원칙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속이 바짝바짝 마를 때까지 조여야 한다. 그래야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 분단 상황을 관리하려면 북한에 대해 전략적 관여(strategic engagement)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정부 내 일부 협상파(대화파)도 최근에는 기대를 접는 분위기다. 이젠 돌아서기에 너무 늦었다는 반응 일색이다.

    정부 “속이 바짝 마를 때까지 조여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이끌어온 정부 내 제재파(원칙파) 라인은 실제로 국가정보원 등에서 올라온 대북 정보를 토대로 원칙론 고수를 강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중심으로 한 북한 지배층이 통치자금으로 쓸 달러가 부족해 고민하고 있으며 남한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조금만 더 하면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북한이 스스로 손을 들고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천안함 폭침사건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한편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조치를 하고, 남측이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인도적 문제에 전향적인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런 정부 기조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의 대가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하며 이를 위해 당국 간 회담을 개성에서 열자는 북측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통일부는 17일 대북 통지문을 보내 “회담을 하려면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부동산과 시설에 대한 몰수 및 조치부터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고 이종주 부대변인이 밝혔다. 정부는 통지문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회담은 (북측의 몰수 및 동결조치 전인) 올해 2월 8일 실무회담의 연장선에서 개최돼야 하며, 북측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몰수 및 동결 조치가 당국 간 실무회담 진행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통지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인도적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연계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특히 북한이 통치자금이나 군비로 전용할 수 있는 달러가 유입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말해 당분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25일 개성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남북 사이에 의미 있는 합의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산가족 상봉을 전후해 잠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던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11월 말까지는 8월 이후 시작된 대남 유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통로를 통해 대화를 요구한다”며 “내부 사정이 어렵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소속 대남정책 총괄부서인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는 최근 다시 비선(秘線) 라인을 통해 남한 정치권 인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면서 쌀, 비료 등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을 독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16일 “한동안 활동을 멈췄던 통전부 비선 라인들이 최근 ‘지난해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현 대통령실장)이 싱가포르에서 한 합의(정상회담 개최와 대규모 식량 및 비료 지원)만이라도 지켜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北, 내년 상반기 다시 공세 추세

    그러나 이는 좋은 조짐이 아니다. 북한은 남한 당국(청와대,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과의 대화가 잘되지 않을 때 늘 민간(대통령 측근, 여야 정치인, 시민단체 인사 등)을 통한 비선 접촉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안함 사건 이후인 올해 6~9월 간헐적으로 가동된 남측 국가정보원 등과 북측 국가안전보위부 사이의 ‘당국 간 비공식 채널’은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양측의 인식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 어떻게 될 것인가. 남북한이 모두 기존 입장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전망은 비극적이다. 북한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미, 대남, 대내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남한을 때리고 어르는 양면전술, 이중전술을 펴왔다. 특히 김정은이 3대 세습의 후계자로 지명된 것으로 알려진 지난해 1월부터 그가 얼굴을 드러낸 최근까지의 북한 대남정책을 위협과 유화로 나눠 추이를 살펴보면 상반기에는 공세정책, 하반기에는 유화정책을 집중적으로 구사한 패턴이 뚜렷하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지난해 4월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5월의 2차 핵실험, 올해 3월의 천안함 사건 등은 북한판 ‘대남 춘투(春鬪)’의 정점이었다. 이 패턴이 계속된다면 2011년 상반기는 다시 공세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실험용 경수로를 짓는 것은 바로 그 준비 작업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무엇이든 추가 대남 도발과 국제사회에 대한 무력 위협은 북한의 고립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고, 그 결과 북한 체제의 내구력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제2의 천안함 사건 같은 북한의 추가 대남 도발은 남한의 희생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신세대 김정은이 자신의 후계체제 확립을 위해 대외정책 노선을 바꾸기로 하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원로 엘리트들을 설득하는 경우가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북한은 미국과는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 마주앉고, 남한과는 인도적 문제 해결에 전향적인 조치를 취한 뒤 정중하게 경제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한 의지를 밝히고 천안함 사건 등의 해결에 나선다면 남한 정부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보다 많이 퍼주겠다’는 공언을 한 상태다.

    그러나 최근 북한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아버지나 아들이나 똑같다’는 것이고, 김정은이 주도하는 대외정책 변화는 아직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불과한 상황이다.

    G20 사고 안 쳤으니 선물 보따리 내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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