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3

2010.11.22

절망과 욕망의 이중주 그린벨트 안녕하신가?

도입 40년, 해제 10년 기로에 선 ‘한반도 허파’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11-19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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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과 욕망의 이중주 그린벨트 안녕하신가?
    조선시대의 수도 한양에는 ‘금산(禁山)’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14세기 말부터 시행된 금산제도에 따르면 백성은 금산으로 지정된 도성 안팎 일정한 구역 안에서는 농사, 나무하기, 돌캐기, 흙퍼가기, 집짓기 등을 할 수 없었다. 조선왕조 내내 엄격하게 산림을 보호한 금산제도 덕분에 그 시기 한양의 녹지는 비교적 잘 보존됐다. 그로부터 600여 년 뒤인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토환경 보전을 위해 공유지는 물론 사유지까지 대상으로 놓고 현대판 금산제도인 ‘개발제한구역’(이하 그린벨트)을 파격적으로 설정했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지정된 그린벨트는 5397.11㎢로 전체 국토의 5.4%에 이른다. 절대 권력자의 의지로 만든 그린벨트는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40년간 국토의 허파 기능을 해왔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은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라도 녹지를 보유하고 환경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린벨트의 공이 컸다는 평가다.

    ‘친환경 개발’ 내세우며 그린벨트 해제 잇따라

    그러나 공유지는 물론 사유지까지 강제로 그린벨트로 묶은 탓에 해당구역 주민들의 불만이 거셌다. 이들은 지나친 재산권 행사 제한과 생활 불편을 거론하며 줄기차게 그린벨트 해제 또는 완화를 주장했다. 농사 외에는 마땅히 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각종 불법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축사, 버섯재배시설 등 농업용 시설로 허가받아서 공장이나 물류창고로 불법 용도 변경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초기에는 경기도 하남시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일이었지만 이제는 남양주시, 시흥시 등으로까지 확산됐다. 전국적으로 매년 적발되는 그린벨트 내 불법행위 건수는 2000여 건에 이르며 그 유형도 창고 건설, 형질 변경, 주택 개발, 음식점 점포, 공장 작업장 등으로 다양하다.

    30년간 꿈쩍하지 않던 정부도 산업용지와 택지 마련이 한계에 달하자 ‘친환경 개발’을 내세우며 2000년부터 보전 가치가 낮은 환경평가 4, 5등급지를 중심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에서 2009년 말까지 전체 그린벨트의 27%(1471.86㎢) 이상이 해제됐다.

    한번 풀리자 그린벨트 해제는 가속도가 붙었다. 특히 중소도시 주변 그린벨트는 2001년부터 2003년 사이 전면 해제됐다. 강원권(춘천시·홍천군), 제주권(제주시·북제주군), 청주권(충북 청주시·청원군 일부), 여수권(전남 여수시), 전주권(전북 전주시·김제시·완주군), 통영권(경남 통영시) 등 7개 권역 1130.9㎢가 해제됐다. 수도권 과밀화로 침체에 빠진 지방의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를 반영한 조치였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권에서도 신도시 개발과 산업용지 공급을 위해 4294.02㎢ 중 368.77㎢가 풀렸다. 수도권의 경우 2004년부터 서울시와 경기도 21개 시·군에서 112.94㎢가 해제됐고, 부산권인 부산시와 양산시 등에서도 162.22㎢가 해제됐다. 그 밖에 대구권 18.73㎢, 울산권 12.53㎢, 대전권 12.23㎢, 광주권 35.78㎢, 마창진권 14.32㎢가 풀렸다(그림 참조).

    그나마 현재 남아 있는 대도시권의 그린벨트도 2020년까지 해제될 전망이다. 국토해양부의 ‘2020 권역별 광역도시계획’에 따르면 수도권 135.30㎢, 부산권 38.90㎢, 대구권 22.10㎢, 울산권 25.50㎢, 대전권 27.60㎢, 광주권 23.70㎢, 마창진권 22.00㎢ 등 총 295.52㎢의 그린벨트가 2020년까지 풀린다.

    물류창고, 공장 등 무차별 개발 사태

    그린벨트가 보존대상 녹지에서 개발 가능지로 바뀌면서 무차별한 개발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02년 1월 19일 충북 청주시 외곽지역인 청주권 그린벨트 1억8010만㎡가 전면 해제됐다. 그린벨트 해제로 개발 용지가 확보됐지만 무계획적으로 물류창고, 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난개발이 이뤄졌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녹색성장을 화두로 삼으며 그린벨트를 해제해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구호에 그친다”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녹색연합 윤상현 정책실장은 “도시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기 위한 완충장치로 그린벨트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서 “그럼에도 정부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할까에만 신경 쓴다. 정작 그린벨트 해제 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보니 그린벨트를 해제해 아파트 공급만 늘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윤 정책실장의 지적처럼 이미 해제됐거나 해제될 그린벨트의 상당 부분이 보금자리주택과 같은 임대주택단지 건설에 치중되면서 ‘친환경 개발’이란 그린벨트 해제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2009년 5월 수도권에 추가로 배정된 그린벨트 해제 물량 79.80k㎡ 중 절반에 이르는 38.11k㎡가 보금자리주택지구 등으로 해제됐다. 이처럼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2012년까지 32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보금자리주택 같은 국책사업은 그린벨트 해제가 신속히 이뤄지는 반면, 지역 현안 사업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이뤄지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간의 대립도 심화되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 도시지역계획연구부 이외희 선임연구위원은 “지역 현안사업의 그린벨트 해제는 국책사업과 달리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받고, 그 후 개별법에 따라 개발계획을 지방도시계획위원회에서 심의받아야 하므로 사업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지역 현안 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 가능 물량에 대한 해제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주택공급 위주의 그린벨트 해제가 의도하지 않게 원주민을 내쫓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외동 은평뉴타운은 그린벨트 해제와 함께 개발에 들어가 1만5000가구가 넘는 신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이곳의 원주민 입주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원주민이 우선분양권을 받더라도 아파트를 분양받을 돈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더 싼 집을 찾아 오랜 터전을 떠나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린벨트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그린벨트가 ‘개발제한구역’이 아닌 ‘개발을 위한 유보구역’이란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풍산지구, 미사지구, 감일지구 등 보금자리주택이 가득 들어서는 하남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남시 춘궁동에 사는 한 주민은 “그린벨트가 해제돼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되면 강제수용 당하는 수밖에 없다”며 “강제수용으로 보상받는 금액은 실제 보금자리주택이 지어지고 거래되는 매매가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원주민들은 쥐꼬리만 한 보상을 받고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보금자리주택 예정지로 지정돼 개발을 앞두고 있는 수도권 곳곳에서 ‘농업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그린벨트 해제에 앞서 제대로 된 보상부터 하라’는 플래카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절망과 욕망의 이중주 그린벨트 안녕하신가?

    1 성종의 능인 선릉과 중종의 능인 정릉(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은 도심 속 쾌적한 녹지를 제공한다. 조선의 `그린벨트` 정책이 준 선물이다. 2 경기도 시흥 은계지구 원주민들은 서민을 위한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보금자리 뺏기게 생겼다. 플래카드 뒷편은 그린벨트로 묶인 땅, 오른편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땅이다.

    기본 취지 고려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2009년 말 전국 주택보급률은 101.2%로 양적으로는 100%를 넘어섰다. 지금보다는 1970년대에 주택 부족이 심각했다. 1971년 서울에서 쫓겨난 도시 빈민들의 집단거주지였던 경기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에선 대규모 소요사태가 벌어지면서 주거 문제가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달았다. 1972년 10월 유신 직후 열린 비상국무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이 향후 10년 동안 주택 250만 호를 짓겠다며 주택공급 정책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를 의식해서였다.

    40년 전 이처럼 주택 공급이 시급한 때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었다. 바로 ‘그린벨트는 절대 손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도시의 대명사로 꼽히는 분당도 1974년 5월 헬기를 타고 이 일대를 날던 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 긴요하게 쓸 땅이니 개발하지 마라”고 지시한 이후, 15년 동안 그린벨트에 준하는 남단녹지로 묶여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시각차가 있지만, 미래를 고려한 그린벨트 설정은 이념을 불문하고 양쪽으로부터 치적으로 평가받는다.

    환경단체는 물론 많은 도시계획 전문가가 “그린벨트 관련 정책 수립에 앞서 그린벨트의 취지부터 고려해 장기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원제무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수도권 및 지방이 주택공급 과잉 상태를 보이고 있음에도 정부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짓기에 골몰하고 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린벨트에 정치적 논리로 접근한다. 정부는 포퓰리즘이 아닌 장기 비전을 가지고 그린벨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현대적 의미의 그린벨트를 처음 시작한 영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오히려 그린벨트를 늘리고 있다. 영국은 ‘그레이터 런던 플랜(Greater London Plan)’에 따라 그린벨트 정책을 펴는데 그린벨트를 공공의 자산으로 인식해 이 지역 내 토지 이용이 매우 엄격하다. 여기에 국민이 개발을 강력히 반대하고 녹지에 대한 선호 현상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당초 전 국토의 7%였던 그린벨트가 현재는 13%까지 늘어났다.

    설사 그린벨트 해제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 해도 공해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도시 녹지공간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개발이익을 ‘개발제한구역 보전부담금’이란 형태로 환수해 해제지역 주변의 훼손지를 녹지공원 등으로 복구할 수 있게 재원 확보를 위한 수단을 마련하고, 기존 그린벨트 존치지역의 불법훼손 행위에 대해선 이행강제금 규정을 신설해 강력한 보존 의지를 드러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법으로 정한 이런 부분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느냐다.

    그린벨트에 ‘존치냐 해제냐’의 이분법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환경과 개발을 조화시킬 수 있을지 발전적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별도로 그린벨트란 제도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도시 주변 토지 개발단계에서부터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히 개발하는 미국의 토지 정책은 ‘그린벨트 도입 40돌, 해제 10돌’을 맞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환경과 개발’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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