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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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치 않은 삶에도 한 방은 있어!

조엘 홉킨스 감독의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11-01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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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변치 않은 삶에도 한 방은 있어!
    로맨스는 누구에게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질 수 있는 장르다. 예를 들어 이혼한 부부가 있다고 하자. 전남편은 일에 빠져서 늘 전화기에 매달려 산다. 딸아이의 결혼식 전날 파티에서도 전화기를 놓지 못한다. 축사를 하랬더니 100원짜리 카드에 인쇄돼 있을 법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한다. 함께한 시간이 없으니 할 말도 없는 거다. 아내의 시선에서 보면 이 남자는 정말 구제 불능이다. 아내의 냉랭함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만일 이 남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이 남자의 처지에서 전처, 딸, 전처의 새 남편-딸의 새아버지-을 보면 말이다.

    영화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바로 이 구제 불능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남자는 직장에선 어떨까. 그는 광고음악 제작업계에서만큼은 자신이 아직 최고라고 믿지만, 사실 젊은 감각의 신세대에게 밀려 자리가 위태롭다. 보스도 이런 형편을 잘 알고 있다. 영국에서 있을 딸의 결혼식이나 즐기라고 보스는 거듭 말하는데, 그 말이 격려가 아니라 위협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남자, ‘가족’에게로 가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새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신의 전처와 생물학적 딸의 가족으로 자리매김해 끼어들 곳이 없다. 이 남자도 분명 가족이긴 한데 어색하게 겉돌 뿐이다. 게다가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회사일에 전전긍긍하니 가족들이 곱게 볼 리 없다.

    다른 여자, 케이트의 삶 또한 변변치 못하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의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유독 인상에 남는 에피소드는 바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오빠를 둔 여자였다. 여자는 오빠를 챙기느라 그토록 짝사랑하던 남자와의 로맨스를 반납한다. 케이트도 비슷하다. 만성적 신경증에 시달리는 엄마 때문에 그녀의 전화는 잠시도 조용할 때가 없다. 심지어 친구는 엄마의 전화를 자동피임약이라고 놀릴 정도다. 아무 때나 침범하는 전화 때문에 제대로 된 데이트조차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난다. 가족에게 버림받았음을 확인하고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비행기까지 놓친 남자 하비가, 혼자인 시간이 이젠 정말 편해진 여자 케이트를 만나는 것이다. 하비와 케이트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남녀 주인공처럼 다음 비행기가 오기 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함께한다고 해서 아주 로맨틱한 것도 아니고, 그저 케이트의 일상에 하비가 잠시 무임승차해보는 정도다.



    그런데 이 사소하고 편안한 만남이 두 사람의 인생에 다른 길을 열어준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의 원제는 ‘하비의 마지막 기회(Harvey’s last chance)’다. 나이를 먹고 점점 늙어가다 보면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기회가 자꾸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무궁무진하게 가진 줄 알았던 인생의 패가 하나 둘 사라져 결국 손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젊음은 너무 많은 기회 때문에 불안하지만 황혼녘은 지나치게 작아진 가능성 때문에 우울하다.

    하비와 케이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아니,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이미 가족 앞에서 초라해지는 아버지 모습을 연기한 더스틴 호프먼이 다시 한 번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참을성 많고 배려심 깊어 보이는 에마 톰슨 역시 소박한 작품을 볼만한 수작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몇몇 주옥같은 로맨스 영화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로맨스 영화의 가장 큰 사회적 기능이라면 바로 소박한 위안을 준다는 것이다. 더는 인생의 전환점이 없을 것이라 믿는 ‘그들’ 또는 우리에게 이 영화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따뜻한 위안이 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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