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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몸으로 法으로 性폭력 피해자 두 번 운다

항거 불능 좁은 해석 엄중처벌 불가 … 사법기관서 합의 종용 또 다른 고통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몸으로 法으로 性폭력 피해자 두 번 운다

몸으로 法으로 性폭력 피해자 두 번 운다
고등학생 16명이 지적장애 여자중학생을 한 달여 동안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대전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10월 13일 이들 16명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을 뿐이다.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면 이러한 결과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 대전지역 고등학생 A(17)군 등 3명은 5월 중순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 건물 남자화장실에서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B양을 성폭행했다. B양이 지적장애인이라 신고가 어렵다고 판단한 이들은 B양의 전화번호를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돌아가며 성폭행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가해자가 미성년자이고,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아 폭력이 없었던 점을 들어 불구속 입건했다.

장애인 사건 구속수사 절반 이하

이에 대해 대전지역 장애인부모연대와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대전지방검찰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집단적으로 수차례에 걸쳐 오랜 기간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단순히 치기 어린 청소년의 우발적인 행동”으로 볼 수 없다며 주동한 학생들의 구속 수사를 요구했다. 소설가 공지영 씨도 트위터에 “이 나라에서 딸을 키울 수 있나요?”란 글을 올려 경찰의 솜방망이 처벌을 성토했다. 대전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가해 학생들의 부모 중 고위직이 있어 불구속한 것 아니냐”며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엄중처벌은 어렵다. 사건 담당 경찰은 대전경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피해자가 반항을 하지 않아 불구속 처리된 것이 아니라 피해 여중생 보호자가 가해자와 합의한 뒤 고소취하서를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대전지검 관계자도 “수사를 다시 하고 있지만, (엄중처벌 여부는) 가해 학생과 피해 여중생 간 합의가 변수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솜방망이 처벌은 이 사건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장애인 성폭력 피해건수는 2006년 816건에서 2009년 2379건으로 3배 이상 늘었고, 이 중 강간 사건이 절반에 달했다. 하지만 준강간 등 성폭력특례법 위반건수 중 기소건수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불기소로 끝나는 이유는 피해자 대부분이 지적장애 여성이기 때문이다. 지적장애 여성은 성폭력을 인지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져 쉽게 위험에 노출되지만, 정작 사건 발생 뒤에는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항거 불능의 좁은 해석’ 이다. 성폭력특례법 제6조에 따르면,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 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가해자를 처벌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죽기 살기로 반항하다 제압을 당해 성폭행을 당한 것이 아닌 이상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2005년 부산고등법원은 50대 중년 남자가 동거녀의 지적장애 딸(당시 14세)을 4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음에도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피해자가 초등학교 3, 4학년의 지능이 있어 글을 읽고 쓸 줄 알기에 자기방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변이다.

장애여성 지원단체들은 꾸준히 “항거 불능을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거나 저항의 의사표시도 못할 정도로 위협당한 상태에 있는 것만으로 좁혀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또래집단에 소속되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는 지적장애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적 접근을 친밀감으로 오해하곤 한다. 특히 인터넷 채팅이나 전화 통화가 가능한 지적장애 여성일수록 성폭력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장애 여성을 위한 인권단체인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는 “가해자로서는 지적발달 장애여성이 유인하기 쉽다. 폭력, 폭행이 없어도 ‘예쁘다’는 말 한마디 해주고, 좋아하는 음식, 갖고 싶은 물건을 제공해 성관계를 맺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에서도 지적 3급 17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3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한 점,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점을 판결에 참작하고, 전자발찌를 채워야 한다는 검찰의 청구도 기각했다. 이에 대해 청주지방검찰청 관계자는 “가해자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여성을 꼬드겨 성관계를 요구했다. 꼭 때려야만 성폭행이 아니라 채팅으로 지적장애 여성을 유인하는 것도 성폭행으로 볼 수 있으며, 재범 우려가 큰 만큼 전자발찌가 필요했다”고 반박했다.

이러니 강간 사건이 서로 원해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둔갑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지적장애 여성은 사건을 진술할 때 육하원칙에 따른 일관되고 논리적인 진술을 하기 어렵다. 이 경우 강간 혐의를 딱 잡아떼는 가해자의 진술이 더 신빙성을 얻는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황지성 소장은 “사법기관은 지적장애 여성이 성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가해자가 성폭행을 마음먹으면 피해자는 항거 불능의 상태가 되기 싶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명예와 인격 침해

비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친고죄로 인한 ‘합의 종용’은 또 다른 고통을 준다. 현행법상 대부분 성폭력 범죄는 친고죄가 인정된다. 명백한 강간 사건이 발생해도 피해자와 고소권자가 가해자와 합의한 뒤 고소를 하지 않으면 사법기관이 수사를 할 수 없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성폭력 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한 이유는 피해자의 명예와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서나 현실은 거꾸로 돌아간다. 성폭력 사건의 고소율이 7.1%에 그치는 이유도 들여다보면 친고죄 때문이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합의에 목숨을 건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으로부터 가해지는 공포”를 호소한다.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이 합의를 요구하며 피해자의 집으로, 직장으로, 학교로 찾아오는 것이다. 피해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소리 지르고 문을 두드린다. 합의 문제로 피해자를 만나야 한다며 직장으로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와서 “네가 몸을 판 것 아니냐”며 소리를 질러대고, 청소년 피해자의 학교로 찾아가 합의서에 서명을 받아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피해자의 명예와 인격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 쪽에서 피해자를 ‘돈을 노린 꽃뱀’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피해여성 C씨는 상담기관에 “법원에서는 가해자가 죄를 반성하며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데, 내가 터무니없는 액수를 요구한다고 힐난한다. 평소 내가 안면이 있는 가해자에게 빚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애초부터 돈이 목적이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며 호소했다.

가해자가 합의금을 지불했다고 끝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강간 사건이 성관계를 하고 돈을 지불한 성매매 사건으로 변질된다. 심지어 돈을 지불하겠다며 합의를 한 뒤 돈을 떼먹는 파렴치한 가해자도 있다.

오히려 끝까지 고소를 고집한 성폭력 피해자가 ‘독한 여자, 못된 여자’라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피해여성 D씨는 “가해자의 아들이 2명이나 있고, 가해자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있으며, 가해자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암이 악화돼 곧 죽게 생겼다”면서 사정을 봐달라는 가해자 어머니의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았다. D씨는 처음엔 “당신들 문제다”라며 절대 합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내가 너무 독한가” 하고 자신을 탓했다. 합의 시도가 가해자의 방어권이기도 하지만, 현실은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등 떠밀려 합의하기 일쑤

법원이 나서서 합의를 종용하기도 한다. 8월 서울 서부지방법원 소속 한 판사는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피해자와 연락이 안 돼 합의를 할 수 없다고 호소하자 재판 기록이 있는 형사과에 가보라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피고인은 형사과에서 연락처를 얻어 피해자에게 합의해달라고 요구했다. 10월 19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미래희망연대 노철래 의원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은 경찰, 검찰의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고 법원은 기록을 보여줄 의무가 있지만, 성폭력 범죄처럼 피해자가 신상정보 제공을 원치 않는 경우 법원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법원이 가해자에게 합의할 시간을 주기 위해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재판을 연기해 고통을 주기도 한다.

수사기관인 경찰, 검찰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증거가 뚜렷하지 않아 성폭행 사건으로 구성하기 어려우면 그냥 합의하고 끝내자고 가해자, 피해자 양쪽에 권유한다. 검찰에 보강수사를 요청하기가 번거로운 것도 한 이유다. 검찰은 승소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기소하지 않고 합의를 권한다. 피해자는 경찰, 검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결국 내키지 않는 합의를 한다.

성폭력 관련 단체들은 항거 불능을 어떻게 정의할지, 친고죄의 대안으로 비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를 택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서 전제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시선’에 대한 반성이다. 황 소장은 “아동은 우리의 미래로 인식해 아동성폭력에 엄격히 대처하지만, 지적장애인은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더 문제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두나 기획조직국장도 “판사의 시각에서 사건을 볼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시선에서 보아야 한다. 이를 토대로 성폭력 관련 법규 등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0.10.25 759호 (p46~48)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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