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7

2010.10.11

성공시대 추신수 “AG 금메달 노터치”

ML 2년 연속 뛰어난 활약, 최고 타자로 우뚝 … 내년 시즌 연봉 대박 눈앞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0-10-11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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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율 0.300에 22홈런, 22도루, 90타점과 출루율 0.401.

    2010시즌이 동양인 투수 통산 최다승(124승) 신기록을 세운 ‘코리안 특급’ 박찬호(37·피츠버그)에게 자신의 17년 빅리거 인생의 완결판에 가깝다면, 클리블랜드 외야수 ‘추추 트레인’ 추신수(28)에게는 ‘반짝 스타 추신수’가 아닌 ‘왜 추신수인가’를 증명한 시즌이었다. 사실상 풀타임 2년 차인 그에게 돈과 명예가 눈앞에 와 있다. ‘추신수 성공시대’는 화려한 서막을 올렸을 뿐이다.

    10년 인고 세월 끝에 만개한 기량

    흔히 ‘20-20클럽’이라 부르는 ‘20홈런, 20도루’는 호타준족의 상징이다. 여기에 모든 타자의 바람이라는 타율 3할을 기록했다. 그것도 2년 연속 해냈다. 빅리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진기록이다. 현대야구 집계가 시작된 1901년 이후 클리블랜드 구단 역사상 2년 연속 타율 3할에 20홈런, 20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추신수가 처음이다. 팀 성적이 바닥이라 주목을 받지 못해 그렇지, 그의 기록은 빅리그에서도 빼어난 것이다.

    전반기 막판, 수비를 하다 오른손 엄지 부상을 당해 한 달 가까이 출장하지 못했음에도 홈런과 도루는 지난해보다 각각 2개와 1개가 늘었고, 타점도 4개가 더 많았다. 지난해(156경기)보다 12경기 적은 144경기에 출장했지만 안타는 10개 적은 165개를 때렸다. 반면 볼넷은 도리어 5개 늘어난 83개를 얻어냈다. 삼진은 151개에서 118개로 크게 줄었다. 4월에 홈런 4개를 때리고 타점 15개를 수확한 추신수는 6월 초까지 약간 주춤했지만 이내 페이스를 되찾아 6월 중순과 말 홈런 6개에 18타점을 생산하며 재차 상승곡선을 그렸다.



    7월 3일 오클랜드전에서 오른손 엄지를 다쳐 적잖은 공백기를 보낸 뒤 8월 7차례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를 때려내며 부활했고, 9~10월 홈런 7개에 27타점을 올리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9월 20일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는 시즌 20번째 홈런과 20번째 도루를 동시에 달성, 메이저리그에서 시즌 6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했다. 이어 타율 3할에 겨우 2리 모자랐지만 막판 2게임에서 7타수 3안타를 때려내며 기어코 2년 연속 타율 3할 고지를 밟았다. 지난해 성적이 ‘반짝 활약’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주목할 건 4할(0.401) 출루율이다. 4할 출루율은 2000년 매니 라미레스(시카고 화이트삭스) 이후 클리블랜드 외야수로는 처음이다. 특히 그래디 사이즈모어, 트래비스 해프너 등의 부상 이탈로 인한 상대 투수의 집중 견제 속에서 나온 기록이라 더욱 남다르다. 매니 악타 감독은 “나는 출루율에 큰 가치를 둔다. 특히 추신수의 경우는 라인업에 있는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 그렇다. 그는 예전보다 많은 견제를 받았지만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져나가는 공을 더욱 신중하게 골라냈다”고 평가했다.

    추신수는 부산고 3학년이던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MVP와 ‘왼손 투수상’을 받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함께 감격을 누린 동기생이 일본 지바 롯데에서 활약하는 김태균(천안북일)과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에서 전대미문의 공격 7관왕을 달성한 롯데 이대호(경남고).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승리 투수가 된 추신수는 시애틀 입단에 성공한 뒤 곧바로 타자로 전향했다. 시애틀은 투수가 아닌 ‘타자 추신수’에 주목하고 있었고, 이에 결정적 목소리를 낸 사람이 로저 영얼드 당시 시애틀 스카우트 부사장이었다.

    입단 후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은 추신수는 2005년 4월, 한국인 타자로는 최희섭에 이어 두 번째로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우익수 자리에 이치로 스즈키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는 시애틀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의 야구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것은 2006년 7월 27일 클리블랜드로의 트레이드였다. 클리블랜드 데뷔전에서 ‘친정팀’ 시애틀을 상대로 결승 홈런을 때려낸 그는 8월 3일 보스턴전에서 조시 베켓으로부터 결승 만루 홈런을 빼앗아 강인한 인상을 심었다.

    좌절과 실망을 이겨낸 가족의 힘

    성공시대 추신수 “AG 금메달 노터치”

    추신수는 홈런, 도루는 물론 타점(90개)에서도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빅리그 최정상급 외야수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을 앞두고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시즌 도중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해 9월에는 ‘토미 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수술)’를 받으며 고난의 길을 걸었다. 기나긴 마이너리그 생활에, 빅리그 진입 초반 찾아온 부상의 덫.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일어섰다. 외롭고 어려웠던 마이너 리거 시절 아내 하원미 씨는 그를 지켜준 버팀목이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며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꼭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다.”

    추신수는 2003년 겨울, 부산 시내에서 우연치 않게 참석한 자리에서 운명처럼 하씨를 만났다. 하씨는 추신수가 미국에 있다고 하자 유학생이려니 짐작했다. 야구를 한다기에 ‘아, 동아리 활동을 하나 보다’고 생각했을 뿐. 이틀 뒤 추신수가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들어간 카드에 사인을 해와 ‘사귀자’고 할 때까지 하씨는 그의 직업이 야구선수인 줄 몰랐다.

    사랑이 깊어지고 하씨가 미국으로 간 2004년 6월은 추신수가 더블 A에서 뛰던 당시. 샌안토니오에 도착한 하씨는 깜짝 놀랐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추신수가 ‘영웅 대접’을 받고 있어서였다. 그해 12월 미국에서 약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2005년 3월 13일 첫아들 무빈이를 얻었고, 지난해 8월 둘째 건우를 낳았다. 그에게 가족은 존재 이유이자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다.

    추신수는 올 11월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던 그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멤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다. WBC 준우승의 추억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 추신수는 ‘국가의 부름’에 응해 금메달을 따겠다는 포부를 이루고 자신의 병역 문제도 해결하게 되길 간절히 원한다.

    이미 2년 연속 빼어난 활약을 펼친 추신수는 내년 시즌 연봉 대박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 시즌 46만1100달러라는 최저수준 연봉을 받은 그는 이번 겨울에 처음으로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얻는다. 일단 500만 달러 안팎에서 1년 계약을 한 뒤 재차 장기계약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다면 2002년 텍사스와 계약하며 5년간 6500만 달러를 벌었던 박찬호 못지않은 잭팟을 터뜨릴 수도 있다. 추신수의 앞날이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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