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4

2010.09.13

재즈로 부르는 ‘헤일 수 없는 밤~’

말로의 앨범 ‘동백 아가씨’

  • 현현 대중문화평론가 hyeon.epi@gmail.com

    입력2010-09-13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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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로 부르는 ‘헤일 수 없는 밤~’

    여성 대표 재즈 뮤지션 ‘말로’가 부르는 ‘동백 아가씨’는 어떤 느낌일까.

    한국의 전통 대중음악을 재즈나 크로스오버로 담아내려는 시도는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출발점은 전통 대중음악 소비층을 타깃으로 한 것이었고, 재즈 또는 크로스오버에서 출발해 진지하게 전통 대중음악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트로트’라는 잘못된 용어로 대표되는 한국의 전통 대중음악은 오래전에 재즈처럼 ‘표준화’됐어야 한다. 오랜 경력의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Malo)는 ‘동백 아가씨’ ‘목포의 눈물’ ‘빨간 구두 아가씨’ 등 전설적인 한국 전통 대중음악을 표준 삼아 재즈 앨범을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흔한 시도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결과물이다.

    일찍이 신중현은 “트로트는 가창자의 보컬 해석 능력에 따라 결판나는, 음악적으로 변용 가능성이 좁은 장르로 재즈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같은 악보를 어떤 보컬이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음악의 질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한국 전통 대중음악과 재즈는 맞닿아 있는 지점이 많다. 말로는 바로 그 지점을 포착했다.

    앨범의 타이틀 트랙 ‘동백 아가씨’는 그런 표준의 새로운 해석이 정점을 이룬다. 이미자의 구성진 목소리라는 강력한 독창성 때문에 이후 장사익을 비롯해 수많은 후배가 ‘리메이크’했지만 크게 성공할 수 없었던 곡을 말로는 그야말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잔잔히 들려오는 피아노 아르페지오 사이로 싹이 돋듯 ‘점점 강하게’ 등장하는 말로의 목소리는 ‘동백 아가씨’라는 전통 대중음악의 상징 중 하나를 새로운 세대, 재즈 장르의 ‘헤비 리스너’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특히 중반부에 가냘프지만 구성지고 슬프면서 흥분도 높은 허밍 스캣은 압권이다. ‘서울야곡’에서는 보사노바와 한국 전통 대중음악의 거룩한 만남을 목격하게 된다. 트로트 전문 보컬리스트들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의 꾸밈음을 말로가 짚어낼 때, 아주 작은 차이점이 크게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로의 이번 시도가 더욱 소중한 이유는 ‘재즈가 우월한 음악이고 한국 전통 대중음악을 그것으로 치장한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악곡 자체를 과도하게 변형시키지 않았고 한국 전통 대중음악의 이디엄을 종종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트로트’ 장르로 한정하지 않았다. 김정호의 ‘하얀 나비’를 리메이크한 넘버에서는 그렇게 독창적이었던 원곡의 포크적 향취가 전제덕의 하모니카 소리와 함께 21세기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된다. 또한 ‘떠날 때는 말없이’의 아방가르드적 불협화음은 오랫동안 한국 대중음악이 잊고 있었던 ‘과감한 작법’을 부활시켰다.

    각종 리메이크 앨범이 함량 미달의 ‘히트송 다시 부르기’였던 것에 비해 말로의 ‘동백 아가씨’는 한국 대중음악을 통시적으로 일신시키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필청’이라는 상투적인 추천 키워드를 넘어서 ‘명반’의 차원으로 취급해야 할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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