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4

2010.09.13

“세종시 아파트 1만2000채 못 짓겠다”

건설업체들 ‘땅값 인하, 연체이자 탕감’요구…이주대책 빨간불, 전체 일정 차질 우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0-09-13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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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 아파트 1만2000채 못 짓겠다”

    LH공사가 짓고 있는 세종시의 공영아파트 ‘첫마을’ 공사현장. 세종시 이주 공무원들은 “분양가가 비싸다’고 불만이다.

    지역 간, 정파 간 이해충돌로 수년 동안 갈등을 빚었던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 건설에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정부부처와 기관의 이전이 시작되는 2012년 말까지 아파트 1만2000여 가구의 공급을 담당한 민간 건설업체들이 택지 용지대금을 기한만료일 1년이 넘도록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용지공급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가 용지대금 할인과 연체이자 감면 등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중도금 납입을 계속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세종시 건설 전체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지난 6월 말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최종 폐기되고 원안 추진이 확정되면서 당초 일정대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정부기관의 이전을 단계별로 추진키로 했다. 이전 대상은 12부 4처 2청 등 49개 기관에서 9부 2처 2청 등 35개 기관으로 줄었다(방위사업청, 특임장관실 제외). 2008년 2월 정부조직 개편으로 중앙부처가 18부 4처 18청에서 15부 2처 18청으로 축소된 데다 일부 기관은 명칭이 변경됐기 때문. 이에 따라 그간 순연됐던 정부청사 건립 공사도 입찰·계약 등 행정절차와 공사기간을 최대한 줄여 당초 이전 시기에 맞춰 완공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부처 공무원들도 고분양가 성토

    이들 부처와 기관의 이전에 발맞춰 LH공사는 공영아파트인 ‘첫마을’ 7000가구(아파트 6520가구, 49만4333㎡)를 2011년 말까지 우선 공급키로 하는 한편, 12개 민간 건설업체는 민영아파트 1만2154가구(88만1000㎡)를 2012년 4월까지 건설할 예정이었다. 정부 이전이 시작되는 2012년 말까지 모두 1만9154가구가 지어지는 것. LH공사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옮겨갈 부처 공무원(1만452명)과 국책연구기관 연구원(7400명, 촉탁연구원 포함)이 모두 1만8000여 명 수준이므로 이들 공영·민영 아파트만 차질 없이 들어서면 이주 계획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이런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이주 대상 부처 공무원들이었다. 9월 2일 LH공사가 직접 짓고 분양하는 ‘첫마을’ 1단계 1582가구(10월 중 분양 예정) 분양설명회에 참가한 500여 명의 공무원은 인근 지역보다 높은 분양가(600만 원 후반 예상)를 집중적으로 나무랐다. 곳곳에서 “사업성이 전혀 없는 분양가로 공무원들을 상대로 봉 잡으려는 게 아니냐”는 성토가 잇따랐다.



    “세종시 인근의 대전 노은, 둔산 지구보다 싼 3.3㎡당 700만 원 이하로 분양가를 책정하겠다고 하는데, 대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과 비교하면서 저렴하다고 할 수 있느냐.”

    “연기군청 앞 국내 유수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는 (3.3㎡당) 650만 원에도 분양이 안 돼 500만 원으로 낮췄다.”

    결론적으로, 부동산시장 침체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마당에 LH공사가 내놓은 분양가로는 집을 사고 싶지 않다는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이주 대책에 가장 큰 걸림돌은 오히려 민영아파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12년 말까지 1만2154가구를 공급키로 한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12개 민간 건설업체가 지난해 5월까지 완납해야 할 용지대금을 일부만 내고 나머지는 납입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LH공사로부터 이들 건설업체가 분양받은 아파트 택지는 88만1000㎡로 용지대금은 총 7397억 원이었다. 8월 30일 현재 이들이 미납한 금액은 4727억 원, 연체이자만 703억 원에 이른다.

    이들 건설업체는 지난해 5월까지 총 4~6차에 걸쳐 중도금을 냈어야 했지만 1차에서 그만둔 곳도 있고, 2차 중도금을 내고 더 납입하지 않은 곳도 있다. 12개 건설업체 중 2개 업체는 지난해 9월 LH공사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계약 해지라도 당했으면 좋겠다”는 게 건설업체들의 속내다. A건설업체 관계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한다’ ‘안 한다’ ‘수정한다’며 흔들리는데 무얼 믿고 돈을 낼 수 있겠나. 올해 7월 들어 갑자기 수정안이 폐기되고 원안이 확정됐다고 없는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부동산시장의 장기침체가 우려되고 미분양 폭주로 건설업체마다 부도 막기 바쁜 상황이다. 또한 턱없이 낮은 분양가가 책정된 공영아파트도 공무원들이 분양가 높다고 난리를 치는데 민영아파트는 미분양이 터질 게 분명하다.”

    이들 건설업체가 용지대금을 내지 않고 ‘뻗치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세종시 민영아파트의 사업성이다. LH공사는 원가로 기반조성 작업을 한 데다 해당 토지에 이윤을 더하지 않은 땅값으로 아파트를 분양했기에 분양가가 3.3㎡당 600만 원 선 후반까지 내려갈 수 있었지만, 민간 건설업체들은 그보다 훨씬 비싼 값에 택지를 분양받았고 지금껏 붙은 연체이자 등도 내야 하기 때문에 분양가가 1000만 원 선이 돼도 수지 타산이 맞을까 말까 하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B건설업체 관계자는 “처음 분양을 받을 때는, 정치권의 눈치도 봤지만, 솔직히 사업성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전국적으로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자금 사정, 사업성 등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당장 해지를 요구하고 싶지만, 계약 상대방인 LH공사에 계약상의 귀책사유가 없어 그럴 수도 없다. 다른 건설업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LH공사에서 땅값을 할인해주고 연체이자를 대폭 줄여주지 않는 이상 남은 용지대금을 내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LH공사는 “땅값 할인이나 연체이자 감면은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LH공사 세종시 건설사업단 판매팀 관계자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사안을 두고 갑자기 용지대금을 못 내겠으니 깎아달라고 하는 것은 책임 있는 기업의 자세가 아니다. 앞으로 주택협회와 건설업체 등이 모여 해결책을 찾겠다”고 이해를 구했다.

    세종시 ‘주택대란’ 파국 올 듯

    그렇다면 올해 말까지라도 이들 건설업체가 용지대금을 완납하면 2012년 말까지 1만2000가구의 아파트 공급이 가능할까. LH공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아파트 건설은 15층을 기준으로 기반조성 작업이 완성된 후 30개월이 걸린다. 이들 아파트가 이미 설계도가 완성된 점을 감안하면, 초스피드로 짓는다는 가정 아래 올해 연말까지만 아파트 착공에 나서면 2012년 입주가 가능하다. 업체들이 전향적인 자세로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현재 부동산시장의 침체 국면과 세종시에 지어질 공영아파트와 민영아파트의 심한 분양가 차이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특단의 대책이 나온다 해도 2013년 세종시의 ‘주택대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시 아파트 1만2000채 못 짓겠다”

    세종시 택지 기반조성 공사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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