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2

2010.08.30

보슬보슬한 감자 너 어디 갔니?

감자의 배신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0-08-30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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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슬보슬한 감자 너 어디 갔니?

    찐득한 점질감자가 득세하면서 식감이 좋은 분질감자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감자 하면 우리는 바로 강원도를 떠올린다. 강원도에서 감자를 많이 심기도 하지만 강원도 감자가 맛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 감자가 요즘 우리의 입맛을 ‘배반’한다. 예전의 그 분 많은 감자를 만나기 어렵다. 솥에 찌면 겉이 쫙쫙 갈라지고, 입에 넣으면 보슬보슬 풀어지는 바로 그 감자! 왜 이 맛있는 감자가 요즘 귀한 것일까.

    감자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티티카카호 주변의 고원지대로 알려져 있다. 감자가 전 세계로 퍼진 것은 1500년대 스페인의 탐험가 피사로가 안데스에서 캐낸 감자를 유럽에 소개하면서부터다. 애초 유럽에서는 감자를 ‘악마의 식물’이라 하여 먹지 않았다. 하지만 밀보다 수확량이 월등한 감자를 마다할 수 없었다. 산업혁명 시기에 감자는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는 밀,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이 됐다.

    감자가 우리 땅에 전해진 것은 19세기 초의 일이다. 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순조 갑신과 을유 양년(1824~1825) 사이 명천(明川)의 김씨가 북쪽에서 종자를 가지고 왔다”고 기록했다. 감자가 우리 땅에 본격적으로 심어진 것은 1890년대 이후로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등 산간에서 주로 재배됐다. 품종은 아직 개량되지 않은 자주감자 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감자 재배면적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일제가 우리 땅에서 쌀을 공출하면서 대체 식량작물로 감자를 보급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일제는 ‘남작’이라는 품종을 우리 땅에 들여왔다. ‘남작’은 삶으면 분이 많은 분질감자로, 현재 많은 사람이 ‘강원도 토종감자’라고 생각하는 그 감자다. 남작은 1876년 미국에서 육성한 품종이다. 이 품종을 영국에서 가져온 일본인이 가와다 남작이어서 ‘남작’이라 부르게 됐다.

    감자는 우리 땅에서 식량작물로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식량작물을 키우기 어려웠던 강원 산간지역에서 매우 중요했다. 생산성이 높고, 수확 후 가공 없이 삶기만 하면 끼니가 될 수 있어 농민에게는 더없이 경제적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감자 가공산업이 발달하면서 감자 품종에 변화가 왔다. 남작보다 병충해에 강하고 지역 적응성이 뛰어나며 수확량도 많은 ‘수미’가 선택됐다. 수미는 1961년 미국에서 육성한 품종으로 1978년 우리 땅의 보급종으로 자리 잡았다.



    수미는 점질감자다. 삶으면 찐득한 느낌이 든다. 남작에 비해 단맛은 더 있지만 식감은 많이 떨어진다. 남작은 강원 산간에서 잘 자라고 봄에 심어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지만, 수미는 제주에서 강원까지 사철 재배가 가능하다. 지역 적응성과 수확량에서 월등한 수미가 득세하면서 현재 한반도 감자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수미의 장점을 취한 때문이지만 그 부슬부슬한 식감과 독특한 향의 남작을 이제 강원도에서 쉽게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많이 심는 것은 아니지만, 감자는 남작과 수미 외에도 여러 품종이 있다. 이 품종은 크게 분질과 점질로 나뉜다. 분질감자는 그냥 쪄서 먹거나 으깨어 샐러드에 넣고, 점질감자는 길쭉하게 썰어 볶음으로 먹거나 감자칩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소비자들은 감자의 품종을 잘 알지 못한다. 시장에서 이를 구별해 파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감자를 고른다는 것은 ‘1박2일’의 복불복 게임과 유사하다. 소비자가 미식생활을 하려고 해도 환경이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은 감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농산물을 팔 때 품종명과 그 품종의 특징 정도는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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