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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너마저…”

“미군기지 안 돼!” 콜롬비아 헌재 판결… 도전받는 南美정책 미국 당혹

  •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콜롬비아, 너마저…”

“콜롬비아, 너마저…”
1990년대 초 동서냉전의 막이 내리고 유일 패권국가로 떠오른 미국은 정치와 경제(금융-무역-투자), 이른바 ‘소프트 파워’라 부르는 할리우드의 문화권력으로 세계를 호령한다. 그래서 미국을 ‘21세기의 로마제국’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 물리적 힘은 당연히 군사력이다. 미 국방부(펜타곤)는 세계를 6개 권역으로 나눠 각 지역에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를 두고 있다. 유럽군사령부, 중부군사령부, 북부군사령부, 남부군사령부, 태평양군사령부, 아프리카군사령부 등 6개의 사령부는 초강대국 미국이 전 지구적으로 운용하는 군사적 구도다.

6개 사령부는 통합사령부의 조율 아래 각기 다른 군사적 임무를 맡아왔다. 이를테면 미 중부군사령부는 2001년 9·11테러 뒤 아프간 침공(2001년 10월)과 이라크 침공(2003년 3월)의 주역으로서 지금도 여전히 전쟁을 치르는 사령부다. 6개 사령부 중 가장 마지막에 창설된 아프리카군사령부(2008년 10월 출범)는 아프리카 북동부의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있는 지부티 기지를 중심으로, 세계 석유 생산량의 4분의 1이 통과하는 수송로인 인근 해역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을 외부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갈수록 설 자리 좁아진 남부군사령부

미주대륙의 중남미를 관할하는 미군조직이 남부군사령부(US Southcom)다. 파나마운하, 카리브해, 콜롬비아를 비롯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중남미 거점을 관할한다. 남부군사령부의 임무는 큰 틀에서 미국의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이지만,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흘러드는 마약과의 전쟁에도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미 워싱턴의 백악관과 펜타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남미의 정치적 분위기가 미국에 협조적이던 지난날과는 딴판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남미는 콜롬비아와 페루를 빼면 좌파정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이들 남미국가는 “더는 중남미를 미국의 뒤뜰이라 여기고 함부로 행동해선 곤란하다”며 대미 공동전선을 구축해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남미 곳곳에 자리 잡은 미군기지도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남미 최대 규모의 미 군사거점이었던 파나마 하워드 기지로부터의 철수가 대표적인 보기다. 한때 6만5000명까지 미군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좌익 게릴라나 마약 범죄 소탕 작전을 펼치며 중남미 전역을 작전지역으로 삼는 중심기지였던 파나마 하워드에서 미군은 1999년 12월 31일 철수했다.

2006년 취임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미군기지를 모두 돌려받고 “앞으로 볼리비아 땅에 외국군 기지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헌법까지 고쳤다. 2007년 취임한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2009년 9월 만기가 된 만타 미군기지 사용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파라과이에서는 2008년 ‘빈민들의 아버지’라 불렸던 전 가톨릭 주교 출신의 페르난도 루고가 대통령에 오른 뒤, 볼리비아 국경에서 아주 가까워 미군이 탐내온 마리스칼 에스티가리비아 공항을 미군기지로 사용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리고 가장 최근 펜타곤 지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사건이 바로 남미 북서부에 자리한 콜롬비아에서 터졌다.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중남미 마약을 주제로 한 화제작의 하나가 ‘긴급명령’(Clear And Present Danger, 1994년 작품)이다. 영화는 말 그대로 박진감이 넘쳐 140분 동안 관객의 눈길을 붙잡는다. 줄거리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콜롬비아에서 미군 특공대가 비밀리에 마약조직의 근거지로 잠입, 고성능 폭탄을 터뜨리며 마약조직을 괴롭힌다. 그러나 콜롬비아 마약조직의 역습에 밀려 괴멸당한다. 이때 할리우드의 간판스타 해리슨 포드가 CIA 차장이란 묵직한 명함을 들고 콜롬비아로 날아가, 마약조직에게 붙잡혀 있던 생존 병사들을 구해낸다는 것이다.

영화가 말해주듯 콜롬비아는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에서 중요한 전쟁터다.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 잎의 전 세계 유통량 중 70%가 콜롬비아에서 생산된다. 다른 한편으로 콜롬비아는 1964년 이래 50년 가까이 정부군과 좌익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해마다 약 2만5000명의 희생자를 낸 나라다.

전통적으로 친미 성향이 강한 콜롬비아 정부가 마약 마피아와 좌익 게릴라를 상대로 힘들게 벌이는 전쟁을 돕기 위해 미국이 나선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마약거래자와 좌익 게릴라’ 소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지닌 ‘콜롬비아 플랜(Plan Colombia)’을 세우고 대규모 원조를 퍼부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콜롬비아는 미국으로부터 50억 달러 이상 군사원조를 받았다. 미국의 적극 개입과 콜롬비아 정부의 대공세에 따라 콜롬비아 최대 반군조직인 ‘콜롬비아혁명군(FARC)’과 ‘국민해방군(ELN)’의 세력은 전보다 약해졌다. 한때 콜롬비아 국토의 40%가량을 지배했던 반군은 주요 근거지를 정부군에 빼앗기고 수세 국면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반군은 정부군을 위협하고 있다.

남미 좌파정권들은 환호성

현재 콜롬비아에는 800명가량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가족과 보조인력을 합하면 1400명). 2009년 10월 체결된 미-콜롬비아 군사협정에 따라 해·공군 기지 7곳을 확보한 상태다. 미 공군이 콜롬비아 중부의 팔란케로 공군기지를 비롯한 군사기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작전 반경이 크게 늘어난다. 재급유 없이 남미대륙 절반을 커버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런데 최근 미군 주둔의 법적인 문제가 생겼다. 콜롬비아 변호사 중 일부가 미국과 맺은 군사협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지난 3월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의회 차원의 논의 없이 알바로 우리베 당시 콜롬비아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협정 체결을 결정했으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8월 17일 콜롬비아 헌법재판소는 “미군기지 설치를 위한 두 나라 사이의 군사협정은 콜롬비아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문제가 되는 7개의 미군기지 설치를 규정한 양국 간 군사협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국제협약으로 다뤄져야 하며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다.

그런 소식을 전해들은 워싱턴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콜롬비아, 믿었던 너마저…”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콜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반미국가인 베네수엘라의 유고 차베스 대통령,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등 좌파정부 수장들은 박수를 쳤다.

남미 좌파정권들은 남미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사실을 불편해한다. 지난해 여름 콜롬비아가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기로 했을 때 차베스 대통령은 “콜롬비아 반군인 FARC 세력이 크게 약화됐는데, 그들을 소탕하려고 굳이 미군기지까지 둘 이유가 없다. 이는 남미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군사 음모”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아직 콜롬비아 주둔 미군기지 문제는 결론 난 것이 아니다. 8월 7일 콜롬비아 새 대통령에 오른 후안 마누엘 산토스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주간동아 2010.08.30 752호 (p58~59)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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