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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나는 방망이 ‘대호 본색’

롯데 이대호 9경기 연속 홈런포 大기록 … 장점 살리고 약점 보완 최고의 타자로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新나는 방망이 ‘대호 본색’

올해로 29년째를 맞은 한국 프로야구는 8월 14일, 세계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기록이 탄생했다. 8월 4일 잠실구장에서 시작된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28)의 홈런 퍼레이드가 14일 광주 KIA전에서 2회 상대투수 김희걸을 상대로 3점 아치를 뿜으며 9연속경기 홈런이라는 신기원을 연 것. 이는 1936년 시작된 일본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130년이 넘는 세월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나온 적 없는, 세계 프로야구 역사를 바꾸는 의미 있는 기록이다.

9연속경기 홈런은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타자 이승엽, 일본이 자랑하는 오 사다하루, 메이저리그 홈런왕 배리 본즈도 만들어내지 못하 대기록이다. 이대호가 이제 세계적인 홈런 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음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그가 유소년 시절 불우했던 환경과 프로 입단 초기 역경을 이겨내고 만든 기록이란 점에서 더욱 뜻깊다.

추신수 손에 이끌려 야구에 입문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외야수 추신수. 이대호와 1982년생 동갑내기인 그는 이대호가 야구를 시작하게 한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팀을 찾아 부산 수영초교로 전학을 간 추신수는 같은 반 친구 중 또래보다 월등히 크고 몸이 좋은 한 친구를 발견한 뒤 “함께 야구하자”며 손을 이끌고 감독에게 데려갔다. 그 친구가 바로 이대호였다.

추신수는 훗날 “첫눈에 보니까 몸이 워낙 커 같이 야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초등학교 때 신수가 3번, 내가 4번을 쳤는데 신수는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야구를 잘했다. 가까운 친구지만 중학교 이후 그라운드에선 별로 친하고 싶지 않았다”고 자신의 야구인생을 열어준 친구를 칭찬했다. 둘은 초등학교 이후 중학교부터(이대호-대동중·경남고, 추신수-부산중·부산고) 진로가 엇갈렸지만 청소년 대표로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일궜고,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에 나란히 힘을 보태기도 했다.



우연히 야구를 시작한 뒤 타고난 재능 덕분에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이대호. 그에게 경남고 2학년 시절은 가장 어려웠던 시기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할머니 슬하에서 컸다. 부산 수영시장에서 된장 장사를 하며 어려운 환경에서 형 차호 씨와 그를 뒷바라지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 1999년, 경남고 2학년 때였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처럼 여기고 의지했던 할머니의 별세는 큰 충격이었다. 한동안 방황하던 그는 할머니 산소에서 “최고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굵은 눈물을 쏟았다.

이대호는 2006년 트리플크라운을 차지하면서 돈과 명예를 얻은 뒤 이런 얘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힘들었다. 할머니에게 받은 많은 사랑을 이젠 보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이미 세상에 안 계신다.”

그가 매년 오프 시즌이면 거르지 않고 독거노인들을 위한 연탄배달, 목욕봉사를 하는 것도 할머니에게 못다 한 효도를 하기 위해서다.

지난 8월 4일, 형 차호 씨와 형수 김미선 씨가 첫아이를 얻었다. 세상에 피붙이라곤 형뿐인 이대호에게 첫 조카는 크나큰 기쁨이었다. 마침 그날 잠실경기에서 이대호는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30홈런 고지를 밟았다. 연속경기 홈런 세계신기록이 시작된 그 홈런이다. 이대호는 이튿날 경기를 앞두고 “30홈런은 조카가 내게 준 선물”이라며 즐거워하며 “형수님 이름까지 신문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수년간 이대호를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그가 기사에 대해 부탁한 건 그것이 처음이었다. 이처럼 피붙이에 대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도 어렸을 때 외로운 환경에서 컸던 때문이다.

新나는 방망이  ‘대호 본색’

이대호의 아내 신혜정 씨. 이대호 선수는 부상에 시름할 때 곁에 있어준 신씨와 2009년 12월 결혼을 했다.

이대호의 또 다른 동기생이자 고교 시절부터 라이벌이던 지바 롯데 김태균. 둘은 태평양을 건넌 추신수와 달리 2001년 나란히 한국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었다. 김태균이 신인왕을 받으며 첫해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반면, 이대호의 시작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을 포함한 3경기에 나서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칠 정도로 그는 고교 시절 빼어난 투수였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고 처음 참가한 동계훈련 도중 어깨 부상을 당했다. 재활훈련 과정에서 그의 타격 재능을 눈여겨본 우용득 감독 제안에 따라 뜻하지 않게 타자로 전향하게 됐다. 그러나 첫해 6경기에서 8타수 4안타를 때려 재능을 알리는 데 성공했을 뿐, 곧바로 더 큰 시련을 맞았다.

2002시즌 도중 부임한 백인천 감독과의 만남은 불행이었다. 백 감독은 경기 출전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체중이 지나치게 많이 나가 움직임이 둔하다며 살빼기부터 주문했다. 한여름에도 점퍼에 땀복까지 입혀 쪼그려 뛰기를 하며 사직구장 스탠드 계단을 오르내리게 했다. “야구선수도 아니다”란 혹평과 함께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과정에서 부상까지 찾아왔다. 혹독한 훈련으로 왼쪽 무릎에 탈이 났고, 결국 그해 10월 무릎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복귀 후 2003시즌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태균이 매년 성장하며 가파른 연봉 상승곡선을 그릴 때 이대호는 부상에 시름했고 배고픔에 울었다. 이때 그를 지켜준 이가 지난해 12월 결혼한 아내 신혜정 씨다. 2001년 임수혁 돕기 일일찻집에서 처음 만난 신씨는 이대호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온갖 정성으로 뒷바라지를 했다. 이대호는 요즘 “아내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롯데 우승 뒤 해외로 간다

김태균을 보며 부러움을 삭이던 그가 야구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04시즌부터. 당시 새로 팀을 맡은 양상문 감독(현 롯데 1군 투수코치)은 이대호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4번 타자를 맡기며 롯데 자이언츠를 이끌 대형 타자로 성장시켰다. 양 감독은 이대호에게 꾸준히 기회를 주었고 그 믿음이 희망이 됐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대호는 첫 4번 타자를 맡아 20홈런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2년 뒤인 2006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두 번째로 공격부문 트리플크라운(타격·홈런·타점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러나 시즌 MVP는 신인이자 투수 부문 트리플크라운(방어율·다승·탈삼진)을 차지한 류현진(한화)에게 돌아갔다. 이때 그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MVP를 놓쳐서가 아니라, 30홈런·100타점에도 이르지 못한 ‘무늬만 트리플크라운(타율0.336·26홈런·88타점)’이란 저평가 때문이었다.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30홈런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트리플크라운이란 큰 의미가 퇴색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고백했다. 지난 8월 4일 개인 첫 30홈런 고지에 오른 뒤 ‘4년 전 아쉬움을 털어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대호는 올 시즌 홈런은 물론 타율, 타점 등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부문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런 페이스라면 도루를 제외한 전 부문에서 1위도 노릴 수 있을 정도다. 팀 동료이자 가장 큰 경쟁자였던 홍성흔이 손등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하면서 그 가능성은 더 커졌다. 만약 도루를 제외한 공격 7부문(타격·홈런·타점·득점·최다안타·출루율·장타율)을 싹쓸이한다면 이는 한국은 물론 일본 프로야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세계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또 다른 역사가 된다.

지난해 타율 3할(0.293)을 넘지 못하고 28홈런·100타점에 그쳤던 이대호가 올 시즌 한층 업그레이드된 실력으로 이처럼 놀라운 성적을 거두는 것은 신혜정 씨의 내조에 힘입은 심적인 안정감과 함께 타자로서 정점에 오른 타격 기술 덕분이다. 롯데 김무관 타격코치는 ‘대호는 역대 어떤 타자보다 빼어난 콘택트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新나는 방망이  ‘대호 본색’
이런 연유로 ‘홈런왕은 매년 못할지 몰라도, 마음만 먹으면 타격왕은 한동안 놓치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더욱이 약점으로 지적됐던 몸쪽 공 공략에서 상체가 열리지 않고 닫힌 상태에서 받아치는 방법을 터득하며 ‘단점을 찾을 수 없는 타자’로 성장했다.

김태균이 공백 없이 프로 9년을 소화하며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 입성에 성공한 것과 달리, 데뷔 초반 출장 기회가 적었던 이대호는 2011시즌이 끝나야 완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다. 이대호는 “FA가 되기 전 롯데 유니폼을 입고 꼭 한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년 시즌 뒤 진로에 대해선 ‘우승이란 꿈을 이룬다는 가정하에’라는 단서를 달고 “미국이든 일본이든 도전해보겠다”고 밝혔다.

키 194cm에 130kg을 넘나드는 육중한 몸매에도 핫코너인 3루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유연성을 갖춘 이대호는 당장 일본으로 건너가도 올 시즌 지바 롯데 4번 타자로 자리매김한 김태균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빼어난 선구안과 정확성에 파워까지 갖춰 제구력이 뛰어난 일본 프로야구 투수들에 대해서도 강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주된 근거다.

롯데 로이스터 감독 역시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이대호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메이저리그 감독이 직접 전화해 이대호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이대호는 주루에 약점이 있고 타격에도 분명 구멍이 있다. 그러나 그 빈틈이 매우 좁다. 지난 3년간 지켜본 결과 어느 리그에 가더라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고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대호와 이승엽, 닮으면서 다른 꼴

똑같이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 … 만능형 타자 vs 특화형 타자


한국 프로야구 홈런타자 계보는 이만수(1983 ~85년 3년 연속 홈런왕·1985년은 김성한과 공동 수상), 김성한(1985년·1988~89년), 장종훈(1990~92년), 이승엽(1997년·1999년·2001~03년)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 중 단연 발군의 기록을 보인 건 이승엽이다. 그는 일본 진출 직전 해인 2003년, 56홈런을 쏘아 올려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이란 새 역사를 썼다. 이대호는 이제 이승엽을 이어 홈런왕 계보에 이름을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승엽이 1999년 세웠던 기존의 한국 프로야구 연속경기 홈런 기록(6경기)를 넘어 9연속경기 홈런이란 세계신기록을 세웠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이승엽과 이대호는 프로 첫 출발이 비슷했다. 두 사람 모두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 롯데가 투수로 입단한 이대호의 타자 전향을 과감히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엽의 성공사례에서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경북고 2학년이던 1993년, 청룡기대회에서 우수투수상을 받는 등 촉망받는 투수 유망주였던 이승엽은 1995년 삼성 입단 후 곧바로 타자로 전향했다. 첫해 홈런 13개를 포함 타율 0.285를 기록했고, 결국 2003년 세계최연소 개인통산 300홈런을 달성하는 등 한국 프로야구사에 빼어난 족적을 남겼다.

투수 출신이란 공통점은 있지만 타자로선 여러 차이점도 있다. 이대호가 2006년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트리플크라운을 눈앞에 둘 정도로 힘과 정확성을 겸비한 ‘만능형 타자’라면, 이승엽은 홈런으로 말하는 그야말로 ‘특화형 타자’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는 “난 홈런 타자가 아니라 콘택트 히터”라는 이대호의 말처럼, ‘안타를 치려다 보니 홈런을 때리게 된’ 이대호이기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승엽은 한국 무대에서 50홈런 이상을 두 번(1999년 54개·2003년)이나 기록했지만 시즌 최고 타율은 0.329(1997년)에 불과(?)했다. 56홈런을 때린 2003년 타율은 0.301이었다. 이대호의 2006년 타율이 0.336이고, 올 시즌 타율이 0.37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비교된다. 이승엽이 방망이 헤드를 강하게 돌리며 흔히 말하는 ‘자기 코스’에 들어오는 볼을 놓치지 않는 전형적인 홈런타자라면, 이대호는 부드럽게 바깥쪽 공도 밀어 쳐 펜스를 넘기는 ‘교타자 스타일’로 새로운 홈런타자의 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대호는 “(이)승엽이 형의 56홈런 기록을 깨지 못한다면, 30홈런 아니라 40홈런 이상을 때린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홈런 지존’은 이승엽임을 인정하면서 새 기록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주간동아 2010.08.23 751호 (p66~68)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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