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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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피자에 임실치즈가 없다?

모차렐라 치즈 생산 하루 4~5t에 그쳐 … 그 많은 업체에 공급 사실상 불가능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0-08-23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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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치즈피자에 임실치즈가 없다?

    임실의 목장형 유가공 업체가 생산한 자연치즈.

    “피자 조각을 들어 올릴 때 치즈가 끊어질 듯 늘어나는 묘미를 놓칠 수 없어요. 씹을수록 고소하고 질감도 쫄깃쫄깃하고요.”

    피자 마니아를 자처하는 이보라(27) 씨는 자연치즈로 만든 피자를 선호한다. 자연치즈는 우유를 자연 상태에서 또는 저열 처리해서 응고시킨 것으로, 특별한 가공처리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 피자용 치즈로 쓰는 모차렐라 치즈는 스트레칭이 뛰어나고 쫄깃하기로 유명한 자연치즈 중 하나다.

    한국인이 치즈를 즐겨 먹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말로 대표적인 가공치즈인 슬라이스 치즈가 먼저 도입됐다. 가공치즈는 여러 가지 자연치즈에 식품첨가제, 유화제 등을 섞고 가열해 모양을 만든 것으로 보존기간이 긴 것이 특징이다. 1990년대 초 피자 전문점이 생기면서 모차렐라 치즈의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치즈 소비량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양식 식습관의 보편화, 와인 소비의 증가, 웰빙 열풍 등이 자연치즈의 소비를 늘렸다는 분석이다.

    한국유가공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치즈 소비량은 1990년 4744t에서 2009년 6만4526t으로 1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중 자연치즈 소비량은 1990년 1279t에서 2009년 4만5162t으로 35배 정도 증가해 그 수요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9년 기준으로 자연치즈의 수입량은 4만4762t인 데 반해 국내 생산량은 7682t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국내의 가공치즈 생산량은 1만5517t으로 여전히 자연치즈 생산량보다 많다.

    임실치즈 상호명 쓰는 피자업체 난립



    국내산 자연치즈로 유명한 곳은 국내 최초로 치즈를 생산한 전북 임실이다. 임실치즈의 역사는 1967년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임실의 젖소 사육농가에 치즈 제조기술을 전수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 전통을 이어온 곳이 지금의 임실치즈농협이다. 임실치즈농협 품질관리과 관계자는 이곳 치즈가 인기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유로 만든다는 점은 같지만 지역 환경, 제조기술 등에 따라 치즈의 상태와 맛이 달라집니다. 임실치즈는 스트레칭, 고소한 맛, 쉽게 굳지 않는 점 등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임실치즈농협의 치즈는 긴 역사와 정통성만으로도 브랜드 가치가 충분합니다.”

    현재 임실에서는 6곳의 유가공 업체가 다양한 종류의 자연치즈와 숙성치즈를 생산하고 있다. 이 중 5곳은 직접 젖소에서 원유를 얻어 자연치즈, 숙성치즈 등을 생산하는 목장형 유가공 업체로 소규모라 생산량이 1일 기준 10~250kg이다. 최근에는 치즈체험마을로도 유명해졌다. 나머지 1곳이 임실치즈농협으로 유일한 공장형 유가공 업체다. 주요 생산 치즈는 자연치즈인 모차렐라 치즈다.

    임실치즈가 인기를 끌자 1990년대 말부터 임실치즈를 쓴다는 피자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임실치즈를 검색하면 관련 피자 업체만 20여 곳 뜬다. 그중에는 임실치즈농협에서 직접 운영하는 ‘임실치즈피자(임실치즈농협 마크)’와 임실군에서 만든 통합 브랜드 업체인 ‘임실N치즈피자’도 있다. 사실상 임실치즈를 쓰는 곳은 이 2곳이라고 봐야 한다.

    임실치즈농협은 1998년부터 임실치즈피자라는 브랜드로 피자 체인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임실치즈 상호를 쓰는 업체가 난립해 치즈 본고장의 이미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자 임실군청은 2008년 ‘임실N치즈’를 특허출원하면서 임실N치즈피자라는 통합 브랜드를 출원했다. 임실군청은 임실치즈피자 측의 상황을 고려해 현재 두 업체가 공존하지만 최종적으로 임실N치즈피자로 통합한다는 방침이다.

    그렇다면 임실치즈피자와 임실N치즈피자 외에 임실치즈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대형 피자 업체 A임실치즈피자, B임실치즈피자, C임실치즈피자 등은 어떤 치즈를 사용할까? 이들 업체 중에는 가맹점이 100여 군데에 이르는 큰 규모도 있다. 기자가 세 업체에 임실치즈 사용 여부를 문의한 결과 “100%는 아니지만 일정 비율 이상 임실치즈농협에서 생산하는 치즈를 쓴다” “치즈를 (임실치즈농협) 대리점을 통해 구입한다”고 주장했다.

    임실치즈농협이 하루에 생산하는 모차렐라 치즈는 4~5t. 총생산량의 40%가 임실치즈피자와 임실N치즈피자의 220여 곳에 달하는 가맹점으로 전달된다. 나머지 60%가량이 대리점으로 가는데 대리점에서는 다시 외식업계, 식자재업계, 마트 등에 공급한다. 따라서 지정환임실치즈피자 등은 대리점을 통해 임실치즈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과정을 여러 단계 거치며 가격이 높아질뿐더러 그만큼의 물량이 제공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결국 많은 소비자가 임실치즈가 들어가지 않은 임실치즈피자를 먹을 가능성이 높다.

    진짜 ‘임실치즈피자’ 확인할 방법 없어

    임실군도 이런 현실을 인식하지만 유사 임실치즈피자를 막지 못하는 데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 임실은 지명, 치즈는 고유명사여서 임실치즈라는 상호를 쓰는 업체가 실제로 임실치즈를 전혀 사용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 ‘전주콩나물국밥’에 들어간 콩나물이 전주에서 생산한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러나 임실치즈농협과 임실군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기자가 임실치즈농협 측에 대리점을 역추적해 실제 어느 업체가 얼마만큼의 임실N치즈를 구입했는지 파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대리점의 유통망까지는 관리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유사 상호 업체의 난립이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철저한 내부 점검시스템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임실군은 지난 5월 말부터 공장을 확장하기 위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치즈 수요가 증가한 데다 임실군의 통합 브랜드 정책으로 치즈를 공급해야 하는 곳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공장 완공 예정일인 올해 말까지는 전남 강진의 공장에서 피자용 임실치즈를 생산한다.

    현재 ‘임실치즈피자’ 가맹점은 50여 곳, 임실N치즈피자는 170여 곳에 이른다. 전국 곳곳에 퍼진 임실치즈피자와 임실N치즈피자의 가맹점은 100% 임실N치즈만 쓰고 있을까. 임실군청과 임실치즈농협에 확인한 결과, 어떤 치즈를 사용하느냐는 가맹점주의 선택사항이며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는 답변이 왔다. 특별한 관리, 감시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서 가맹점 업주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 유사 상호를 사용하는 업체의 양심과 임실군과 임실치즈농협의 철저한 관리체계에 기대지 않는 한 소비자가 먹는 ‘임실치즈’피자에 임실N치즈가 100% 들어 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임실치즈피자에 임실치즈가 없다?

    1 40여 년 동안 임실치즈의 역사를 이어온 임실치즈농협 본사. 2 모차렐라는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치즈. 뜨거워지면 실처럼 길게 늘어나 피자에 주로 사용된다. 3 임실치즈농협에서 생산한 피자용 모차렐라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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