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1

2010.08.23

되풀이되는 금융위기 막을 수 없나?

‘위기 경제학’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8-23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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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풀이되는 금융위기 막을 수 없나?

    누리엘 루비니 등 지음/ 청림출판/ 508쪽/ 2만2000원

    2008년에 전 세계를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공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를 잠재우고 대불황 정도에서 멈추어 섰다. 그렇다면 위기는 끝났나. 2006년 9월 IMF 강당에서 정확하게 눈앞의 위기를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저널 감각이 탁월한 학자 스티븐 미흠과 함께 쓴 ‘위기 경제학’은 금융위기의 본질과 위기 탈출의 해법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2008년의 위기를 두고 대부분은 1세기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천재지변과 같은 돌발적인 상황이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말하는 ‘블랙 스완(흑조)’처럼 말이다. 그러나 루비니는 위기상황이란 우연을 가장한 끔찍한 악순환인 ‘화이트 스완(백조)’일 뿐이라고 말한다.

    루비니는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튤립의 구근이 황금보다 비싸게 거래되며 이상열기가 퍼지다가 순식간에 튤립 가치가 바닥을 치는 바람에 대공황에 이른 ‘튤립투기 사건’ 이후 주기적으로 반복돼온 사례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이런 사례는 무대와 관객이 바뀌었을 뿐 등장인물이나 극의 순서,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고 말한다. 2008년의 위기 또한 과거의 위기들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유시장이라는 근본주의를 숭상했던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개혁가’들은 대공황시대에 만들어진 은행 규제를 일축했고, 월스트리트의 기업들은 남아 있는 규제를 피해갈 방도를 찾는 데 몰두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학자, 월스트리트 사업가 등은 규제받지 않는 시장의 오묘함과 금융혁신이 가져다주는 무제한의 수익 같은 동화 속 이야기에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위기의 원인은 언제나 ‘거품’이었다. 거품에는 촉매제가 필요하다. 앞선 세기의 금융위기에서 촉매제는 특정 상품이나 원자재의 부족 현상 혹은 해외 시장의 개방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위기는 투자방안을 과다 포장하고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고안된 금융 기법이 촉매제였다. 주택이야말로 안전한 투자처이며 그 가치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거품을 양산하면서 ABS, MBS, CDO 등 정체불명의 파생상품으로 시장을 교란했다. 그러다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손실이 확대됐고, 이어 대형 금융회사와 은행이 줄줄이 파산 위기를 맞이했다.



    어느 한 국가에서 문제가 수면으로 부상하면 곧 상품, 통화, 투자, 파생상품, 무역 등의 통로를 타고 그 무대가 세계로 확대된다. 2008년의 위기도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전 세계로 확대됐고 그 위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들은 대재앙은 이제부터라고 목청을 높인다.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려면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회생 불능의 은행이나 기업, 개인을 창조적 파괴를 통해 솎아내고 건전한 기업이나 개인만이 살아남도록 해야 미래에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없다는 교훈을 줄 수 있다. 물론 케인스식의 통제된 정부개입도 필요하다. 저자들은 케인스와 슘페터가 통찰력을 합한 ‘통제된 창조적 파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준비은행과 각국 정부는 핵에너지와 같은 파괴력을 갖는 금융위기를 서둘러 봉합하기 위해 소비촉진, 자금지원, 정부보증, 통화정책 같은 단기 처방에 급급했다. 그래서 최악의 위기는 피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말았다. 목숨만 붙어 있는 좀비기업이나 좀비가정을 양산함으로써 위기를 온존시키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저자들은 불안한 진실을 통해 희망을 찾자고 말한다.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금융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 같은 대마불사기업은 해체해 부문별로 분리하고, 은행과 은행 시스템까지 관장할 수 있는 규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강력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투기거품을 사전에 막아내고 관리하기 위해 통화정책과 신용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달러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IMF는 세력을 지금보다 키워 새로운 국제 기축통화를 창설하고 공급하는 데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 등이 저자들이 내놓은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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