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1

2010.08.23

진화하는 관세청

경제 전쟁터 든든한 국경 지킴이

  • 입력2010-08-23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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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하는 관세청
    관세청이 8월 27일로 불혹(不惑)의 나이가 됐다. 재무부 세관국에서 독립행정기관인 관세청으로 태어난 지 40돌이 된 것. 중년이 됐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관세청을 모른다. 그저 입국 시 세관신고서를 받고, 밀수·탈세범을 검거하는 기관 정도로 여기지만 관세청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개청 당시 중화학공업 육성책과 수출입국 기치 아래 관세환급제를 도입하는 등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지원에 나섰고, 이제는 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한 국내 기업 지원을 하고 있다.

    “FTA 체결은 자고 나면 머리맡에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다.”

    지난 3월 취임한 윤영선 관세청장에 의해 FTA 대책반이 꾸려졌고, 직원들은 국내 기업이 관세혜택을 받도록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윤 청장은 1만1000여 개 수출기업에 e메일을 보내 원산지 인증을 당부했다.

    한편에서는 지능화, 첨단화되는 밀수 및 테러와의 전쟁도 한창이다. ‘첨단 과학’을 자랑하는 서울 중앙관세분석소는 중국산 메기류의 내장으로 만든 가짜 창난젓갈을 밝혀냈고, 국경 최일선에서는 ‘서울 G20 정상회의’을 앞두고 폭발물과 총기 탐지견이 활약하고 있다. 중년의 나이에 걸맞은 이미지 변신을 위해 국내 첫 공중파 세관 드라마인 ‘태리프 125’가 제작에 돌입했다.



    1878년 9월 두모진 해관(세관)이 설치된 지 132년, 관세청 개청 40년. 그동안 ‘최일선 국경 지킴이’ 관세청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그 발자취를 좇아봤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G20 정상회의 철통 경비 현장을 가다

    진화하는 관세청

    꼭꼭 숨겨도 폭발물 탐지견은 귀신같이 잡아낸다.

    ‘킁킁’거려봤지만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어른 주먹만 한 무연 화약가루 한 봉지를 비닐봉지로 돌돌 말아 여행용 가방 깊숙이 넣었다. 10개가 넘는 트렁크가 주변에 있고 냄새도 나지 않으니 은닉에 자신이 생겼다.

    드디어 문이 열리더니 폭발물 탐지견 ‘오로라’가 들어왔다. 래브라도 레트리버종(種)인 오로라는 마네킹이 들고 있는 여행용 가방 사이를 냄새를 맡으며 헤집고 다니더니 기자의 가방 옆에 살며시 앉았다. 양길남 훈련교관은 “폭발물이 터질 우려가 있어 탐지견은 가방 주변에 코만 갖다댈 뿐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8월 17일 오후 인천시 중구 운북동 관세국경관리연수원 내 탐지견훈련센터 대인탐지훈련장. 관세청 소속 폭발물과 마약 탐지견들이 훈련하는 곳. 기자는 이날 폭발물을 숨겨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테러범’이 됐다. 공항 입국장에 직접 폭발물을 가지고 들어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관세청의 사전 설명에 따라 아쉽지만 이곳에서 모의상황을 연출한 것. 무연 화약은 총포류에서 탄환을 발사할 때 필요한 추진약이다.

    하늘길·바닷길서 테러범·폭발물 철저 감시

    이날 기자의 ‘어설픈 은닉’을 간단하게 알아챈 열 살 오로라에게는 11월에 열리는 ‘서울 G20 정상회의’(이하 G20)가 더욱 특별하다. 2002년부터 폭발물 탐지견으로 활약한 오로라는 G20 때까지 일한 뒤 은퇴할 예정. 2005년 인천국제공항에서 실탄 200여 발을 은닉해 들어오던 입국 승객을 잡아낸 오로라도 세월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은퇴를 앞둔 베테랑답게 차분한 오로라에 비해 훈련장 앞마당에서 만난 두 살 ‘나빈’은 힘이 넘쳤다. 훈련교관이 목줄을 잡고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나빈은 총기류 탐지견이 되기 위해 맹훈련 중이다. 은닉한 총기를 찾는 기초훈련은 이미 마쳤고, 9월 말까지 현장능력 향상을 위한 훈련을 할 계획. 양 교관은 “G20에 대비해 2009년부터 양성했다. 총기류 탐지견은 총을 쏜 뒤 남은 초연가스, 총기에 바른 오일 냄새만으로 찾아내야 하기에 훈련과정이 더 까다롭다. 그래서 총기류 탐지견을 직접 양성하는 나라는 극소수다”고 말했다. 국내 총기류 탐지견은 나빈, 나비, 나얼 3마리. G20 때 투입하기 위해 체계적인 훈련을 하고 있다.

    탐지견의 활약을 확인한 기자는 곧 20분 떨어진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날 오전 G20 대비 대테러 종합모의훈련이 열렸기 때문.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은 총기류, 폭발물이 담긴 수하물을 찾아내 안전하게 처리하는 실전훈련을 펼쳤다. 실전훈련을 마친 탓인지, 기자를 맞는 세관직원들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공항 곳곳에 설치된 ‘G20 대비 검색 강화’ 팻말이 실전을 방불케 했다. 탐지견들은 직접 수하물에 접근해 테러 위협 무기를 찾고, 인천공항세관 ‘X선 검사실’ 판독관들은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비행기에 싣고 온 수하물을 100% 감시하고 있었다.

    “G20은 20개국 정상 외에 다른 나라 정상도 한국을 방문하는 중요한 행사죠. 테러가 발생하기 전 국경 경비의 최일선에서 먼저 잡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진화하는 관세청

    1 입국심사대 직원들이 여행객의 수하물을 검사하고 있다. 2 베테랑 판독관은 X선 영상만 보고도 가방 속 짐을 훤히 꿰뚫어 본다.

    인천공항세관 김규진 홍보담당관의 설명을 들으며 통제구역인 ‘X선 검사실’에 들어섰다. 국경 경비라고 하면 보통 군대, 경찰, 국정원 등을 떠올리지만, 사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과 물건을 제일 처음 맞는 임무는 관세청의 몫. X선 검사실의 수십 대 모니터에는 비행기에 실린 짐의 X선 영상이 지나갔다. 기자의 눈에는 모두 비슷한 영상. 하지만 전문요원은 달랐다.

    “검은 트렁크에 전자태그(Seal) 붙여주세요.”

    전자태그가 붙으면 가방 주인이 입국장을 나갈 때 세관직원이 제지하고 직접 가방 검사를 한다. 전자태그 색깔별로 총기·마약류, 식물류, 동물류, 기타 검색 대상 물품 등으로 구분된다. 판독관은 입국심사대 세관직원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의심스러운 부분을 붉은 동그라미로 표시한 영상물을 전달한다. 가방을 전부 뒤지지 않아도 되므로 검사 시간을 줄이고 검사 대상자의 편의도 배려할 수 있다. 하루 평균 비행기 230여 대, 수하물 3만3000여 개가 인천공항으로 들어오지만 판독관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최완숙 반장에게 대뜸 물었다.

    “세관에 걸리지 않는 방법을 물어보는 주변 사람은 없습니까?”

    “그런 사람 없어요. 이제는 공항에서 철저히 감시한다는 것을 여행객이 더 잘 알아요.”

    20년 베테랑 모인 X선 검사실…AK 총기도 찾아내

    기자는 머쓱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성 요원이 대부분인 판독관은 보통 15~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2007년 버지니아 총기사건 직후 한 재미교포가 권총 한 정과 실탄 14발을 인천공항을 통해 들여오려다가 판독관의 눈에 딱 걸렸다. 소총을 분해해도 소용이 없다. 기존 적발 영상 중 기자의 눈에 검은 쇠막대기로만 보이는 물체가 분해한 AK47 모의 총기였다. 판독관들이 총열의 모습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발견이 가능했던 것이다.

    베테랑 판독관이라 해도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인천공항세관 감시과 이운희 계장은 “세관업무는 곧 교육이다. X선 판독 경진대회를 개최해 판독관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적발한 영상은 데이터베이스화해 반복학습을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27일에는 G20에 대비해 군과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세관 직원들이 실제 총기와 폭발물 100여 점을 보고 X레이 영상을 찍어 판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G20을 앞두고 대테러 태세를 강화했지만, 밀수와 탈세 등 전통 업무도 중요하다. 기자가 찾은 날은 런던발(發) 대한항공 KE908기 승객의 수하물이 전수조사 대상이 됐다. 전수조사를 받는 비행기는 명품 세일기간, 보석 전시기간 중인 지역에서 출발한 비행기나 관계기관의 첩보가 들어온 비행기. 하루 6~7대가 전수조사를 받는다. 전수조사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세관 직원의 눈을 피하기는 어렵다. 사전승객분석 시스템에 따라 승객의 1년간 입국 횟수, 국가, 면세점 구입액이 전송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검사 대상자를 선별한다. 또 일반인을 가장한 요원이 여행객 사이에 잠복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를 골라내기도 한다. 다행히 이날 KE908기는 면세 범위를 넘은 명품만 발견됐을 뿐 대테러 무기는 적발되지 않았다.

    드넓은 바다를 지키는 촘촘한 눈길

    진화하는 관세청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공항과 항구의 경비는 한층 강화됐다.

    2007년 3월 9일 오후 4시경 인천시 중구 항동 인천본부세관 종합상황실. A감시관은 2부두 27번 석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를 조그스틱으로 좌에서 우로 조정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5명의 남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냥 지나치더니 별문제 없어 보이는 주차장 옆 CCTV 기둥의 카메라 박스가 비치자 화면을 확대했다. 그러자 하얀 점으로 보이던 물건이 형태를 드러냈다.

    “계장님, 저것 이상한데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B계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같은 CCTV 화면을 비췄다.

    “원래 없던 물건입니다.”

    A감시관은 인천항 전자지도를 확인하고 위험물질과 가장 가까이 있는 기동반 차량에 무전기로 출동을 요청했다. 다른 직원들은 위험물질 인근 지역을 비추는 CCTV를 살폈다. 1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직원은 사람의 키가 닿지 않는 카메라 박스 위에 놓인 하얀 봉지를 내렸다. 봉지에는 독일제 모의권총 1정과 실탄 100발이 들어 있었다.

    기자가 찾은 8월 18일에도 여의도보다 넓은 인천항을 49개의 CCTV가 비추고 있었다. 인천본부세관 민병조 감시과 계장은 “49개 CCTV에 전자지도 시스템, 차량번호인식 시스템, 조기경보 시스템 등이 있어 총기류 등 안전을 해치는 물건이 들어올 경우 즉시 잡아낸다”고 말했다. 이곳 감시관들도 다년간 노하우를 자랑한다. 감시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스트도 있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직원이 항구에서 일부러 수상한 행동을 하고, 감시관들이 제대로 적발을 하는지 가려내는 식이다. 인천항에는 33개 부두 89개 선석이 있고 1일 평균 27척이 입항하며 1만7000여 명이 이곳에서 일한다.

    종합상황실의 존재는 비밀이 아니다. 도리어 인천본부세관은 항구 물류업체 직원들을 초대한다. 민병조 계장은 “감시 업무는 우리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항구에서 일하는 이들의 불편불만과 민원을 들어주며 서로 이해를 높이고, 적발 영상을 보여주며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밀수 방조 등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없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은밀한 거래’를 제의받은 업체 직원들이 세관에 먼저 신고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밀수에 자주 이용하는 컨테이너에 대한 감시도 계속된다. 인천컨테이너터미널(ICT) 부두 제2컨테이너검색센터에는 100억 원이 넘는 컨테이너 검색기가 설치돼 있다. 이 기계는 철판 두께 40cm를 뚫고 5cm₃의 정육면체 납 벽돌을 판독할 수 있다. 보통 두께의 컨테이너라면 발기부전치료제 알약까지 구분이 가능하다. 컨테이너 입구에 신고물품을 쌓고 뒤에 밀수품을 숨기는 ‘커튼 치기’ 수법도 검색기 앞에서는 무용지물. 테러위협 무기도 예외가 아니다. 2009년 중국 톈진에서 가구, 수공예품으로 신고한 컨테이너 적발 사례가 대표적. 눈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가구였지만 검색기 영상에는 가구 속에 숨긴 중국장검 124점, 일본도 100점, 단검 210점 등이 나타났던 것이다.

    컨테이너 검색기가 고정된 장소에서 검색을 한다면, 컨테이너 이동 ‘X선 검색 차량’은 수시로 항구를 이동하며 감시한다. 기동성이 뛰어난 만큼 시간과 공간 제약이 없다. 특히 주차된 차량의 트렁크를 열지 않고도 감시가 가능하다. 고정호 감시관의 설명.

    “G20을 대비해 요즘은 더 자주 운영합니다. 주차된 차량에 숨겨진 무기, 마약 등을 찾아내는 효과가 탁월합니다.”

    항구 밖 바다에는 3대의 감시정이 있다. 외항에 정박된 배에서 다른 작은 선박으로 물품을 내리거나 사람이 이동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게 주 임무. 50t급 감시정은 물을 뿜어 추진력을 얻는 워터제트 방식이라 종합상황실에서 무전이 들어오면 어떤 배보다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할 수 있다.

    G20을 앞두고 관세청 직원들은 3교대에서 2교대로 근무시간을 늘리고 휴일을 반납한 채 국경수비에 매달리고 있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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