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9

2010.08.09

“도 넘은 청소년 일탈, 해도 너무해”

영국 정부와 교육계 깊은 시름…학교 및 교사 권한 강화 움직임

  • 코번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입력2010-08-09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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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넘은 청소년 일탈, 해도 너무해”
    휴대전화로 촬영된 화면 속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교복 차림의 10대가 복도로 우르르 도망쳤고, 급하게 뒤쫓아 나온 선생님은 소리를 질러댔다. 얼마 전 영국 언론에 보도된 이 화면은 지난해 7월 맨스필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촬영되기 직전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과학교사 피터 하비 씨가 3kg 덤벨로 학생의 머리를 때리고 있었던 것. 이 교사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학생에게 “죽어버려라”고 고함까지 쳤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겁에 질려 복도로 뛰쳐나온 것이다.

    욥 컬처, 비뚤어진 청소년 문화

    엽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사건에 대한 영국 사회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물론 하비 교사는 파면됐고, 추후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살인미수 혐의로 법정에 섰다. 동시에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휴직한 경력이 있는 하비 교사를 학생들이 ‘사이코’라고 계속 놀려온 것이 이 사건의 직접적 동기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교원노조 단체와 과거 하비 교사에게 배웠던 제자들이 그에 대한 구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올해 초까지 재판이 진행된 이 사건은 영국 사회에서 학교 현장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포커스는 한 ‘정신 나간’ 교사에게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의 심각한 일탈 행동, 교사의 학생지도 권한, 체벌의 한계 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다.

    최근 들어 영국 청소년의 일탈 행동이 크게 우려할 수준이라는 게 정부와 교육계의 진단이다. 10대 임신율, 흡연율 등은 유럽연합 국가 중 이미 최고를 기록했다. 음주, 기물 파손, 집단 따돌림 등 반사회적 행동은 영국 사회에 ‘욥 컬처 (yob cultur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남자아이(boy)’라는 단어의 철자를 뒤집어 만든 ‘욥(yob)’은 비뚤어진 영국 청소년 문화를 상징한다.



    이런 일탈 청소년의 행동은 학교 현장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교원노조 등을 통해 공개되는 사례를 보면 학생들이 특정 교사를 “학교 밖에서 보자”며 협박하고, 실제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있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폭력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은밀히 사설 경비원까지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전국 교원노조대회에 참석한 런던의 한 교사가 이런 사실을 폭로한 것.

    학교 현장에 밝은 전문가들은 일선 교장들이 학교 이미지 추락 등을 우려, 문제 학생들을 강력히 처벌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비판한다. 지난 5월에 출범한 보수-자유민주당 연립정부가 교장과 교사들의 학생 단속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교육부 방침에 따라 영국의 일선 교사들은 9월부터 마약, 주류 등의 학내 반입 방지를 위해 학생들의 소지품을 뒤질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현재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압수할 수 있는 권한은 무기류를 소지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에만 국한됐다.

    정부의 이번 방침은 음란물, 담배는 물론 휴대전화까지 교사 책임 아래 수색·압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닉 깁스 교육부 차관은 “수업을 방해하고, 선의의 학생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물건의 반입을 허용해선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가 더욱 강한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영국 청소년의 무분별한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학부모와 교육현장 관계자는 정부가 교사의 학생 단속 권한을 확대하는 데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총론에서는 찬성일지라도 각론에 들어가면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특히 교육부가 학생 체벌과 관련해 좀 더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밝힌 대목이 그렇다.

    “도 넘은 청소년 일탈, 해도 너무해”

    1980년대 중반 영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체벌 금지를 명문화했다. 하지만 청소년 일탈이 심각해지자, 이 대목을 손보겠다는 의중을 내비치고 있다.

    현재 정부 지침은 학생 체벌을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에게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해당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시설물을 파괴할 경우’다. 이 밖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학생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학생 체벌 금지를 명문화한 것은 이미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이 대목을 손보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워낙 민감한 대목이라서 즉각적인 조치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무조건 접촉 불가(no touch)’와 같은 정책을 유지하는 데 부정적 견해를 보이는 것. 교사들이 필요하다고 느낄 경우 일정한 수준의 체벌을 허용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물론 ‘일정한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국은 부모들이 자녀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회초리를 들어도 경찰을 부를 수 있는 나라다. 아동 및 청소년 구타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최고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있기 때문.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도 교사들은 어디까지가 일정한 수준인지에 대해 법정이 명확한 판단을 하기 전까지 실제 효과가 없으리라고 본다. 신상의 불이익을 우려하는 교사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

    영국 교육부가 학생들의 일탈 행동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조치로 학교에 더 많은 권한을 주겠다고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학생들의 비행이 점점 과감해지는데도 교장들이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결과적으로 학생들을 감싸고돈다는 것. 물론 공립학교들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맞춘 다양한 처벌 규정을 갖고 있다. 견책, 근신, 유기정학, 퇴학 등 우리나라 처벌 규정과 유사하다. 하지만 퇴학 등 중징계가 내려져도 학부모가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학교는 비행 정도가 심각한 학생에게도 근신이나 유기정학 등 경징계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처벌 형태는 단순 근신이다. 영화 ‘해리 포터’를 보면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주인공 해리를 포함한 학생들이 걸핏하면 교사에게 불려가 반성문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디텐션(detention)’이라 불리는 근신 처벌은 그만큼 역사가 깊다. 지금도 영국의 학교 현장에서 단골로 쓰는 처벌 메뉴다.

    디텐션 부과 요건 완화

    정부는 “학교 현장에서 가장 단골로 쓰는 근신, 즉 ‘디텐션’을 부과하는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학교 수업시간 이후 학생을 남겨놓고 반성문, 청소 등의 과제를 내주려면 적어도 하루 전에 부모에게 이를 서면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장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주기 위해 이 ‘하루 전 통보’ 규정을 없애겠다는 것. 학생들이 잘못을 저지를 경우 그때그때 처벌함으로써 현장에서 즉각적인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텐션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은 새로 출범한 보수-자유민주당 연립정부가 내놓을 학교 현장 교육개선안의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더욱 진전된 카드를 내놓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데 많은 학부모와 교육 당국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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