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9

2010.08.09

진안郡 흔드는 ‘롯데슈퍼’ 후폭풍

4월 개장 이후 지역 유통업 절대 강자로 … 재래시장 상인들 “우린 다 죽는다”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8-09 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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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郡 흔드는 ‘롯데슈퍼’ 후폭풍
    “진안에 뭐가 있다고 대기업이 여그까정 와서 빨대를 꽂는다요.”

    “10년 만에 또 한 번 진안이 물에 잠겨버릴 거여.”

    4월 23일, 인구 2만7000여 명에 불과한 전북 진안군에 연간 매출 1조 원의 롯데슈퍼가 진출했을 때 진안군은 충격에 휩싸였다. 10년 전 5개 면 68개 마을이 물에 잠겨 1만2616명의 이주민이 생겼던 용담댐 공사에 견주는 군민도 있었다. 산간벽지에 대기업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진출은 상전벽해. 이에 진안지역 사회단체들은 ‘SSM 진출 반대’ 플래카드를 걸고 불매운동에 나서며 1인 시위와 집회를 열기도 했다. 6·2지방선거 때도 롯데슈퍼는 주요 이슈였다. 당시 군수 후보들은 현 송영선 군수에게 롯데슈퍼 진출을 막지 못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진안군은 2월 4일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을 마트형 공설시장으로 바꿔 진안현대화시장을 개장했다. 군 단위 지역 최초로 전통시장을 마트형으로 바꿔 개장한 만큼 시골의 전통시장이 SSM에 대항해 살아남을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무대라 더 주목받고 있다.

    SSM 문제를 대하는 지자체의 한계



    8월 3일, 입점한 지 100일이 지났다. 진안군의 3대 성수기로는 추석, 설날과 함께 여름휴가가 꼽힌다. 진안을 오고 나가는 길목 진안로터리에 있는 롯데슈퍼 진안점에는 피서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군산에서 온 김모 씨는 “지나가는데 롯데슈퍼가 한눈에 들어왔다.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슈퍼보다는 브랜드 슈퍼가 더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지역주민도 적지 않다. 군민 장모(41) 씨는 “원래 롯데슈퍼 자리에 있던 마트를 이용했다. 익숙한 자리에 더 싸고 편리한 슈퍼가 들어오니 소비자 처지에서는 좋다”고 답했다. 반면 인근 상인들은 울상이다. 김명수(47) 씨는 “여름휴가 대목인데 손님이 없다. 불매운동만이 해답인데 앞장설 동력이 없다”고 낙담했다.

    진안군청은 SSM 문제를 해결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6월 29일 송 군수는 전라북도시장군수협의회에서 ‘SSM 법안’으로 불리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4월 22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가 합의했던 법안 즉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하는 상생법 개정안, 전통시장 500m 이내 SSM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법 개정안 등에서 더 나아가 진안군은 영업시간, 영업품목 제한 등을 조례로 규정 가능토록 하고, 군 자치단체(인구 7만 명 미만) 지역에는 기업형 슈퍼 입점을 막도록 하는 안을 주장했다. 하지만 SSM 법안이 8월 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라 진안군의 노력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이에 진안군민, 중소 상인들이 외치는 구호도 힘을 잃고 있다. 진안군민들은 “진안의 돈이 서울로 빨려 올라가고 있다”고 외쳤다. 진안군청 관계자도 진안점 매출이 하루 1000만 원에 달한다고 예측했다. 반면 롯데슈퍼 최현주 홍보매니저는 “진안 돈이 서울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억지다. 신선식품류는 현지에서 구입하려 하고 직원들도 진안군민을 채용했다. 지방세도 내는 만큼 수익이 모두 서울로 간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진안군이 대응하지 못하도록 기존 마트를 갑자기 인수하는 전략을 썼다는 주장에도 “전 마트 주인 서모 씨가 먼저 인수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롯데슈퍼에 10년간 장기 임대를 내준 서모 씨는 “직접 운영하기보다 임대료를 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먼저 제안했다. 진안군민이 전주로 물건을 사러 가야 하기 때문에 장사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법을 따를 뿐”이라는 롯데슈퍼를 압박할 수단이 없다.

    진안郡 흔드는 ‘롯데슈퍼’ 후폭풍

    진안군 지역 상권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송 군수가 ‘지역경제 살려달라’는 군민과 ‘법대로 해달라’는 롯데슈퍼의 눈치를 보는 사이 해프닝도 벌어졌다. 6월 6일 롯데슈퍼에서 아몬드류 과자를 구입한 한 군민은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것을 확인하고 진안군청 홈페이지의 ‘건강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진안군청은 식품위생법에 따라 롯데슈퍼 진안점에 영업정지 7일이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군청은 롯데슈퍼의 요구를 받아들여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군수가 의지가 있다면 영업정지를 택해 중소상인 편에 서 있음을 확실히 보여줬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송 군수는 “해당 직원이 통상적으로 업주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고, 영업정지를 내릴 경우 롯데슈퍼에 고용된 진안군민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에 과징금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송 군수의 확인되지 않은 발언도 문제가 됐다. 송 군수는 7월 말 사석에서 “영업정지를 내리면 직원을 자르겠다고 롯데슈퍼가 협박에 가까운 말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자의 확인 요청에 군수는 “군청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말을 돌렸다. 하지만 군청 직원은 “롯데슈퍼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롯데슈퍼 이호중 진안점 점장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해명한 상황. 송 군수가 행정처분과 관련한 비판을 롯데슈퍼 탓으로 돌렸다는 의혹이 나온다.

    마지막 남은 진안군의 카드는 2월 개장한 마트형 공설시장 ‘진안현대화시장’이다. 진안군 지역물류 유통의 중심축인 만큼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진안시장이 상권부터 다시 살아나야 했다. 회심의 카드인 만큼 국비 포함 109억 원이 투자됐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진안읍 군상리 406번지 진안현대화시장 내부는 조용했다. 대도시 마트 못지않은 규모에 비해 찾아오는 손님이 없었다. 건물 내부의 조명은 어두컴컴하고 냉방시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후덥지근했다. 활기를 띤 롯데슈퍼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한 주민은 “5일장이 열려도 새로 지은 건물에는 안 들어가고, 주변에 늘어선 노점상만 붐빈다. 상인들도 고객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지막 카드,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

    진안군청 김정배 농업경제과장은 “상인회에 노인층이 많아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상품 구성이 다채로워야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업종 변경을 권했지만, 두어 명만 바꾸는 데 그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진안현대화시장 54개 업소 중 의류잡화가 13개점으로 25%에 이른다. 상인의 평균연령도 62세에 달했다. 기존 재래시장과 소프트웨어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장시원(63) 상인회 부회장은 “상인도, 지역주민도 아직은 적응기간인 만큼 적응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인 전모(42) 씨의 생각은 달랐다. 전씨는 “진안에 애초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이 필요 없다. 겉만 크게 현대식으로 만들었지 짜임새도 효율성도 떨어져 물건을 옮기기도 힘들고, 에어컨을 못 틀 정도로 전기요금도 많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진안의 진짜 문제는 롯데슈퍼가 아니라 경쟁력 없이 만들어진 진안현대화시장이라는 이야기다.

    소비자들이 롯데슈퍼를 찾는 이상, 전통시장과 롯데슈퍼는 윈-윈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또 현행법이 개정되지 않는 이상 진안군과 롯데슈퍼의 동거는 불가피하다.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상인의 상생방안을 연구해온 남서울대 유통학과 원종문 교수는 “롯데슈퍼의 규모를 군청이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954m2 이상의 롯데슈퍼는 전주에서 식음료품을 구입하던 진안군민의 발길을 잡을 수 있는 만큼, 진안현대화시장은 비식음료품을 구입하는 군민을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원 교수는 “진안현대화시장이 경쟁력을 찾으려면 군청이 상인회의 기득권에 휘둘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서 전문 운영주체를 발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롯데슈퍼에 직격탄을 맞은 슈퍼들이 편의형 슈퍼로 전환하고, 롯데슈퍼도 대량상품 위주로 물건을 판매해 이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안도 있다.

    진안군이 진안군 일반 소비자도, 상인도 만족시키는 절묘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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