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9

2010.08.09

재보선 웃고 나니 만날 일 없다?

‘MB-박근혜 회동’소문만 무성…형식과 의제 협의 성공방정식 찾기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08-09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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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보선 웃고 나니 만날 일 없다?

    지난해 12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쇼욤 라슬로 헝가리 대통령 환영 만찬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두 사람은 그날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을 놓고 무려 한 달간 하마평만 무성하다. 무슨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이번 회동설은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잡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7월 17일 “두 분이 재보선 이전이든 이후든 만남을 가질 것”이라고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자신이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에게 취임인사를 간 자리에서 회동을 제의해 모두 수락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재보선이 끝난 뒤에도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의 정진석 정무수석과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이 신중히 의제를 협의 중이어서 늦어지고 있다는 말만 나돌았다. 그래서 나온 관측이 ‘8·15 광복절 전후 회동설’이다. 이 대통령의 여름휴가(8월 2~6일)와 그 직후 개각 일정 등을 감안한 스케줄이다. 그러나 유 의원은 8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회동과 관련해 청와대 측과 어떤 협의도 없었다”고 밝혔다. 여권 고위 관계자도 같은 날 이를 확인했다.

    유 의원은 “(안 대표가 박 전 대표에게) ‘대통령을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건의하기에 (박 전 대표가)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대답한 것이 전부”라며 “그 말은 그동안 밝혀왔던 원칙을 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대통령도 (안 대표에게) 그런 정도의 말씀을 했을 것”이라며 “두 분이 당장 만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부분이 없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5차례 만남 혼선과 뒷말만 남겨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 고위 관계자도 “정 수석이나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유 의원과 회동 문제를 놓고 협의를 벌인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두 분의 만남은 ‘성공의 방정식’을 찾았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이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모두 5차례 만났지만 그때마다 아무런 성과 없이 무성한 뒷말만 남겼다. 따라서 이번에는 화해와 화합의 접점을 먼저 찾은 뒤 만나야 한다는 설명이다.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크게 패한 직후 화합의 접점이 있었다.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계를 막론하고 여권 전체에 몰아닥친 위기감이었다. 민심의 매서운 회초리를 맞은 여권에 이대로 가다가는 보수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진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선 범여권의 결속, 특히 친이계와 친박계의 화해가 급선무였다. 그런 와중에 7·14전당대회 지도부 경선 과정에서 양 계파의 표심이 쪼개지는 현상이 다시 나타났고, 급기야 안 대표가 취임 직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7·28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완승을 거두자 위기의식 자체가 희미해졌다. 두 달 만에 민심이 돌아선 것을 확인한 여권에서 “지금 시점에 굳이 두 사람이 만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청와대와 친이계에서 그런 인식이 퍼졌다. 사전 준비 없이 급히 회동을 하는 대신 상황을 더 지켜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재보선 웃고 나니 만날 일 없다?

    7월 29일 당사에 모인 재보선 당선자와 한나라당 지도부.

    “만일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했으면 두 분이 형식과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만났을 것이다. 사실 지방선거 이후에 (2012년 총선과 대선도 위험하다고)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특히 수도권 전체가 공포에 떨지 않았나. 그때는 화해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하지만 재보선 결과 수도권 두 곳(서울 은평을 이재오, 인천 계양을 이상권)에서도 모두 승리했다. 대통령은 이제 정국 운영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따라서 7·28 이후에 두 분의 회동 추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시간을 갖고 회동을 성공시킬 방정식을 찾은 뒤 만나자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두 사람의 회동이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일단 고비를 넘긴 만큼 여유를 두고 원점에서 형식과 의제를 천천히 협의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3의 메신저론’도 있다. 유 의원은 “(나 이외에) 다른 채널은 없다”고 했지만,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 가교 구실을 할 중립적인 인물을 물색 중이라는 말이 나돈다. 지금까지 5차례의 만남 때 중간에 양측 사람들이 끼는 바람에 이런저런 뒷말을 남긴 만큼 이번에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함께 신뢰할 수 있는 메신저를 활용하자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는 “가령 박 전 대표가 원로그룹 중에서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을 지명해주면 임태희 실장이나 정진석 수석이 예의를 갖춰 회동을 추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묵은 감정 해소하고 협력” 목소리

    물론, 위기상황을 일단 넘겼으니 시간을 갖고 회동을 추진하자는 것은 청와대와 친이계의 논리다. 박 전 대표 측은 상대방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자체를 못마땅해한다. 양 계파와 두루 가까운 중진 정치인은 “친이계에 속하는 안 대표가 7·28재보선을 전후로 두 분의 회동이 결정된 것처럼 언론에 공개한 것 자체가 박 전 대표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라는 의구심을 친박계가 갖고 있다”고 전했다. 유 의원이 “안 대표 발언 이후에도 청와대와 아무런 논의도 없었다. 언론이 작문을 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다만 친박계 안에서도 언젠가는 두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만나 묵은 감정을 털고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는 ‘현실론’, 더 정확하게는 ‘한계론’을 배경으로 한다.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의 세종시 수정안 표결,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에서 한나라당 내 박 전 대표의 지분은 여전히 30%선에 머물고 있음이 확인됐다. 대선후보 경선이 2년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가 그 정도라면 차기 대권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2007년과 마찬가지로 예선 통과부터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요즘 들어 친박계 내부 분위기도 싱숭생숭하다. 한때 ‘친박계의 좌장으로 통했던 김무성 원내대표까지 나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박 전 대표를 공격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박 전 대표와 멀어졌지만 충정은 변함이 없다”고 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거기서 안 알아주니까, 이 결정적 문제를 고쳐서 박 전 대표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을 이제 거의 소진했다”고 말했다. 당사자는 “2년 전부터 말해왔던 원론적인 얘기”라고 했지만 결별선언으로 들리기에 충분하다.

    친박계에서 이탈한 현역 의원은 김 원내대표 외에 몇 사람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때 원칙이 뚜렷해 친박계 내부에서 ‘남자 박근혜’라는 말까지 들었던 진영 의원(서울 용산)도 이탈자 대열에 포함된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7·28재보선 때는 박 전 대표와 상극(相剋)인 이재오 후보를 간접 지원했다. 진 의원은 현재 박 전 대표의 측근으로 활동 중인 모 의원과 마찰을 빚어 친박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다른 의원이 귀띔한다.

    이런 현실에 따라 박 전 대표의 광폭행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어 분위기만 성숙되면 어떤 형태로든 이 대통령과의 만남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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