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2010.07.26

“감히 오빠 선물을 넘보다니…”

연예인에 선물공세 ‘서포트’문화의 현주소… 제작진 요구에 ‘조공’논란 불러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0-07-26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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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오빠 선물을 넘보다니…”
    “보통 다른 방송에 나올 때는 떡, 과일, 빵 등 축하선물이 많이 오더라고요. 오늘은 빈손이에요?”(지난 2월)

    “어머, (꽃다발이) 저한테 온 거네요. 이걸 왜 보냈겠어요. 씨엔블루 잘해주라고.”(7월 5일)

    7월 5일 방송인 최화정(49) 씨가 누리꾼의 맹비난을 샀다. SBS 라디오 프로그램 ‘최화정의 파워타임’ 진행 중 게스트인 가수 씨엔블루에게 건넨 말이 문제가 된 것. 사건은 누리꾼들이 최씨의 5개월여 전 발언과 최근의 발언을 비교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과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은 ‘선물 유무로 게스트를 차별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주는 선물인데 주객이 전도됐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에는 아무것도 보내지 말자’와 같은 항의성 글로 도배가 됐다. 사흘 뒤 최씨가 방송을 통해 사과를 해 비난은 수그러들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팬들이 연예인에게 조직적으로 선물을 주는 ‘서포트’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책부터 전자제품까지 돈 모아서 전달

    ‘서포트’란 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선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조공’이라고도 한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주는데, 방송촬영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제작진과 동료 연예인의 몫까지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공식 팬클럽에서부터 소규모 모임, 개인 등 서포트를 하는 이들의 유형은 다양한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만큼 주로 단체로 돈을 모아서 추진한다.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팬인 장모(21) 씨는 “연예인의 기도 살려주고 힘내라고 응원도 하는 의미에서 제작진에게까지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특수 제작한 책, 옷, 전자제품 등은 연예인 것만 준비하지만 도시락, 다과 등은 제작진 몫까지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팬이 내는 비용은 1인당 5000원에서 3만 원 정도로 알려졌지만, 개인에 따라 다양하다. 한때 여성 아이돌 그룹을 서포트했던 문모 씨는 “삼촌팬이라 불리는 30대 이상 직장인들이 거액을 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서포트 문화의 시작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징과 관계가 깊다. 연예기획사의 철저한 상업적 마인드가 팬들의 불만을 낳았고, 이것이 서포트 문화로 이어졌다는 것.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 씨는 “이전에는 팬들이 연예기획사를 통해 연예인을 소비했다면, 이제는 연예인에게 곧바로 접근하려고 한다. 서포트가 그 예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배국남 씨 역시 “팬들이 단순한 소비자에서 벗어나 연예인의 이미지를 만들고 홍보하는 적극적인 존재가 됐다. 모금한 돈을 연예인의 이름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말했다.

    과도한 입시 교육으로 찌든 청소년이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행위 중 하나가 서포트라는 분석도 있다. 문화평론가 김모 씨는 “연예인이 가족보다 큰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과 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선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감히 오빠 선물을 넘보다니…”

    ‘슈퍼주니어’(위)와‘씨엔블루’(아래)를 위한 서포트. 보통 음식은 제작진 몫까지 넉넉하게 준비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인터넷의 발달도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국 각지의 팬이 인터넷을 통해 조직을 결성하기가 수월해졌고, 지출에 대한 투명성이 담보되면서 서포트 문화가 정착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아이돌 그룹 출신인 A씨의 팬 사이트에는 서포트를 위한 게시판이 따로 마련돼 있다. 서포트를 총괄하는 사람이 모금전용 계좌를 공개하면 팬들이 해당 계좌로 입금한다. 담당자는 모금 현황을 일주일에 한 번씩 게시판에 공지하고, 서포트가 끝난 뒤에는 사용 내역을 올린다. 서포트 내용과 전달 과정 등을 사진으로 찍어 포스팅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대부분의 팬이 서포트 비용을 마련할 때부터 최종 지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문서화, 이미지화해 게시판에 기록한다.

    서포트는 잘나가는 연예인의 증거

    서포트는 연예인에게는 인기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연예인 김모 씨는 드라마 촬영장에 찾아온 팬들에게서 서포트를 받았다. 케이크와 과일, 떡 등이 배달돼 왔는데 피곤한 기운이 감돌던 촬영현장이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연예인 B씨의 매니저는 “서포트를 받으면 대부분의 연예인은 감사해하고 뿌듯해한다. B씨가 신인이었을 때 촬영현장에서 인기 많은 동료 연예인의 팬들이 선물 주는 것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나이가 많은 연예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젊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서포트를 받는 연예인이 알게 모르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서포트를 받다는 것은 곧 잘나가는 연예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드라마 조연출로 일하는 강모 씨는 “서포트 유무에 따라 제작진이 배우를 차별하지는 않지만, 연예인은 미묘한 감정을 느낄 것 같다”고 전했다. 서포트에 대한 연예인의 보답은 주로 ‘인증샷’으로 이뤄진다. 선물을 들고 있는 사진 등을 미니홈피나 팬페이지에 올리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방식. 아이돌 그룹의 팬인 이모 씨는 “인증샷을 올려주면 팬들이 큰 보람을 느낀다. 또 포털사이트를 보면 다른 연예인이 무슨 선물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방송 스태프에게 제공하는 조공 문화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씨의 선물 발언 논란 당시, 담당 프로그램의 PD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한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때 한 말이 논란을 가중시켰다. 담당 PD는 “선물이라고 해야 음료수나 김밥, 샌드위치인데 지금의 논란은 마치 최화정이 명품이라도 바란 것처럼 확산됐다”라고 했던 것. 이를 두고 프로그램 제작진이나 동료 역시 선물 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PD나 최화정이나 똑같다’ ‘팬들의 정성이 들어간 김밥, 샌드위치를 명품과 비교하나’와 같은 비난글이 다시 오르기도 했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제작진은 팬들의 서포트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문제의식은 못 느꼈다”는 반응이었다. 음식을 나누는 행위가 정을 나누는 행위라 여기는 한국적 문화의 영향도 큰 듯했다. MBC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이대호 PD는 프로그램 녹화현장에 팬들이 선물을 보내오면 거절하려고 애쓴다. 이 PD는 “작은 것이라도 받는다는 것이 찜찜하다. 하지만 택배로 보내오거나 문 앞에 두고 사라질 경우 어쩔 수가 없다”고 전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 씨는 “보이지 않는 제작진의 존재를 인식하고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물량 공세가 점점 심해지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팬들이 스태프에게 서포트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노력에 관심을 갖느냐가 중요한데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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