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2010.07.26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무서워~

5주년 맞은 공포문학 창작집단 ‘매드 클럽’ 회원들 “내게도 생길 수 있는 일, 간담 서늘”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07-26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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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무서워~

    ‘매드클럽’ 회원들. 박주섭, 김종일, 전건우, 신진오, 이종호 작가(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밤 12시, 한 허름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공부에 지친 여학생과 평범한 중년 남자가 함께 탄다. 여학생은 10층, 남자는 9층을 누른다. 9층,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힐끗 뒤를 보니 닫히는 문 틈으로 식칼을 들고 살기등등한 얼굴로 여학생을 노려보는 남자가 보인다. 중년 남자는 계단을 통해 10층으로 뛰어올라간다.

    “여학생이 알고 보니 귀신 아닐까요? 남자에게 학대받아 살해됐는데, 원혼이 돼 남자를 미치게 만든 거죠.”(전건우)

    “여학생이 피해자가 되려면, 그 원인이 분명히 있어야 하지요. 남자가 살의를 느끼게 할 만큼 모욕적인 말을 했는데, 여학생이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든지 하는.”(김종일)

    “10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4차원 미지의 세계가 나타나는 건 어떨까요? 여학생을 죽이려던 남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거죠.”(신진오)

    7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만난 공포문학 창작집단 ‘매드 클럽(Mad Club)’ 소속 작가들은 어떤 소재를 던져도 즉석에서 소름이 오싹 돋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매드 클럽은 2006년 5월 이종호, 김종일, 장은호 세 작가가 좋은 공포 소설가를 발굴, 트레이닝하자는 의도로 만든 모임. 매해 여름 소속 작가들이 집필한 단편을 모아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이하 단편선)을 냈는데, 2010년 현재 5편까지 출간했다. 그사이 3명으로 시작했던 회원은 26명으로 늘었다. 대다수가 전업작가가 아닌 의사, 경찰, 잡지사 기자,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왜 순수문학에서 터부시하는 공포물에 빠진 걸까. 또 이들이 생각하는 한국형 공포의 특징은 뭘까.



    현실 조금만 비틀면 공포 유발

    이종호 작가는 “사람들이 공포문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고 강조했다. 아픔을 느끼면서도 묘한 쾌감에 생채기를 뜯어내는 것처럼, 사람들은 공포문학을 싫어한다면서도 몰래 숨죽이며 읽는다는 것. 그는 “특히 한국형 공포는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독자에게 더 큰 무서움을 선사한다”고 덧붙였다.

    서양의 공포는 주로 악마, 괴물 같은 폭력의 집합체에서 발생한다. 특정 이유로 어떤 인물의 삶에 뛰어든 후 무서울 정도의 폭력을 행사한다. 피가 튀고, 몸이 난자되는 건 기본. 반면 일본의 공포는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에 있는 미지의 존재에 기인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의 삶에 끼어들어 이들을 두려움에 몰아넣는다. 이런 서양과 일본의 공포물을 보며 한국인들은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정도의 두려움, 즉 안전이 확보된 무서움을 느낀다. 하지만 한국형 공포는 다르다. 바로 오늘, 내 앞에 있는 현실에 기반을 두기 때문.

    옛 남자친구가 자신과의 성관계 장면을 인터넷에 유포시킨 뒤, 수만 개 ‘눈’으로부터 고통을 받은 여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김종일 ‘도둑놈의 갈고리’/단편선 4), 학창시절 왕따당했던 남자가 15년 후 동창회에서 당시 일을 기억조차 못하는 가해자 친구의 숨통을 은밀히 죄어온다(김종일 ‘황금놋쇠’/단편선 5). 가족에게 버림받은 기러기 아빠와 의처증으로 아내를 폭행, 살해한 남편이 한 아파트의 배수관을 통해 연결되고(전건우 ‘배수관은 알고 있다’/단편선 4), 지구로 쏟아지는 혜성 때문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도처에서 폭동과 살인이 일어나는데, 10대 청소년들은 게임하듯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인다(황태환 ‘폭주’/단편선 4). 갑자기 나타난 ‘식인괴물’ 룸메이트에게 3일에 한 번씩 먹잇감을 주기로 하고 목숨을 부지한 ‘나’는 평소 경쟁관계에 있던 동료와 나를 괴롭히던 상사부터 시작해 중국집 배달원, 다방 종업원 등 닥치는 대로 사람을 불러들인다(신지수 ‘나의 식인 룸메이트’/단편선 3).

    이처럼 직장 내 불화, 학교에서의 왕따, 외모 스트레스, 외로움, 인터넷 악성 댓글, 남녀 간 사랑, 부모 자식 간 집착, 친구 간 왜곡된 우정 등 일상의 모든 것이 조금만 비틀어 극대화하면 공포유발 원인이 된다. 즉 사람이 악마나 괴물, 원혼보다 무섭고, 사람을 이렇게 만든 현대사회가 더 무섭다. 특히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은 ‘뒤처지면 죽는다’ ‘죽기 싫으면 경쟁자를 제거하라’는 강박관념을 낳는데, 전건우 작가는 “그 강박관념이 한국형 공포의 원형”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에서 살다가 지방으로 이사했는데, 기분이 묘하더군요. 중심에서 뒤처진 것 같은 느낌. 돈 많이 벌어 서울로 재입성해야지 다짐했죠(웃음). 주류에서 밀리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이 공포가 되는 겁니다. 이는 경제력일 수도 있고, 생김새일 수도 있어요.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를 소재로 한 공포물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죠. 조금 과장됐을지라도 이게 현실이니까요.”(전건우)

    서울강남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형사인 박주섭 작가는 “오히려 현실이 공포소설 이상으로 무자비하다”며 “연쇄살인이 부쩍 늘었고, 수법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잔인해졌다”고 강조했다. 실제 그는 2005년부터 연쇄살인에 대한 소설을 썼는데, 그러던 중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 터졌다. 유영철의 살인 과정과 수법은 그의 소설과 거의 비슷한, 아니 그 이상 잔인했다고 한다.

    물론 전통적 귀신 이야기인 ‘원혼’이나 사후세계나 엑소시즘 등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도 여전히 존재하고, 이를 소설로 담은 작가도 많다. 이종호 작가는 “요즘은 단순히 귀신을 이야기한 것보다, 하는 일마다 안 되고 돈이 줄줄 새며 건강이 나빠지는 이른바 ‘액’(厄·재액, 고통, 병고 등을 이르는 말)을 다룬 소설이 인기”라며 “무언가 나를 훼방하는 손이 있는데, 이게 과거의 잘못에 기인한 원혼과 연관됐거나, 심지어 그 존재마저 모르는 상태라면 얼마나 무섭겠는가”라고 했다.

    올해도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출간

    이처럼 매드 클럽 소속 작가들이 단순한 괴담을 넘어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공포문학을 쓸 수 있었던 건 소재 선정부터 이야기 구성, 세세한 문장까지 회원끼리 의견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작품을 완성하면, 온라인 클럽 게시판에 올려 회원들의 의견을 듣는다. 형사인 박주섭 작가가 “범죄 현장보다 더 무섭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서로의 작품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매해 여름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이 탄생했다. 올해에는 따끈따끈한 신작 5편을 지난 7월 26일 출간했다. 아이폰용 앱스토어에서도 매드 클럽 작가들의 작품을 맛볼 수 있다. 또 2011년엔 매드 클럽의 이름을 건 10권의 중편 공포소설 컬렉션을 출간할 예정이다. 현재 26명의 소속 작가는 이 10편의 컬렉션에 작품을 올리려고 준비 중인데, “살인이 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편 작가들은 소설을 쓰며, 또는 자신이 쓴 소설을 보며 공포를 느낀 적이 없을까. 이들은 “쓰면서 두려움을 느끼진 않지만, 만약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지는 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작가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공포소설에 대한 터부, 즉 ‘공포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가족에게 당당히 작품을 보여주기 힘든 현실이다.

    “어느 날 장모님이 제 소설을 궁금해하셔서 보여드린 적이 있어요. 하필이면 온몸을 난자하는 내용이 들어간 작품이었죠. 그걸 보고 흙빛이 된 장모님은 아내에게 진지하게 ‘요즘 사이코패스가 많다던데’라고 말씀하셨대요, 하하.”(전건우)

    “공포는 문학이 주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즉, 재미의 코드가 공포인 거죠. 장르는 괴담이 될 수도 있고 스릴러나 판타지, 심지어 SF도 될 수 있어요. ‘공포소설 안 보는데, 봐보니 재미있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쁘면서도 서글프죠. 아무런 편견 없이 그저 재미있는 소설을 쓰려는 작가로 봐주면 좋겠어요.”(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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