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2010.07.26

로또 추첨, 번호도 숨죽였다

생방송 앞서 2시간 철저한 검수… 007도 놀랄 만한 보안 속에서 진행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김미향 인턴기자 서울대 종교학과 4학년손미정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입력2010-07-26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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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또 추첨, 번호도 숨죽였다

    1 본 방송에 앞서 로또 리허설 중인 ‘행운의 사나이’ 박찬민 아나운서와 ‘로또걸’ 조수아 씨. 2 방송 전에 지름 45mm, 무게 4g의 로또볼을 매번 검사한다. 3 로또볼이 든 가방은 봉인해 보관한다 .

    ‘1등 당첨자 수가 조작된다?’ ‘생방송이 아니다?’ ‘추첨기가 조작된다?’

    워낙 짧은 순간에 큰돈의 향방이 갈리기 때문일까. 로또 당첨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2008년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이 로또 7대 의혹을 제기하고 2009년 감사원이 대대적인 조사까지 했지만 로또 조작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과연 로또 방송은 투명할까? 7월 17일 서울 SBS 목동 사옥 6층 공개홀에서 있었던 제398회차 로또 추첨을 기자가 참관했다.

    방송 끝나면 추첨볼·추첨기 보관창고 봉인

    로또 추첨, 번호도 숨죽였다
    오후 6시30분. 장마 첫 자락,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나눔로또 사업운영본부 운영지원팀 관계자 5명이 SBS 목동 사옥으로 들어섰다.

    “2007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로또 추첨 방송 있는 토요일에 쉬어본 적이 없네요. 검수 및 방송 진행에 늘 5명 정도 필요하거든요.”



    오후 8시45분경 SBS TV를 통해 전국 생중계되는 로또 추첨 방송은 복권법에 의거한 매뉴얼에 따라 매번 철저한 검수를 거친다. 2시간가량 진행되는 검수 및 리허설의 첫 순서는 추첨기와 추첨볼을 보관하는 창고의 봉인을 해제하는 것. 방송이 끝나면 추첨볼이 든 007 가방과 추첨기를 보관하는 창고는 봉인한다. 이는 외부에서 충격을 가하면 열리지만 한 번 잘리면 재사용할 수 없다.

    SBS에는 총 3대의 기계가 보관돼 있는데 이 중 2대를 세트장에 설치한다. 실제 이용하는 것은 1대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다. 45개 추첨볼이 들어 있는 추첨볼 세트는 총 5세트. 각각의 기계와 볼세트를 세트장에 설치하고 기계의 작동 여부를 살핀다. 로또 기계가 보통 작동하는 시간은 약 1분. 작동 시간이 지나치게 길거나 짧으면 방송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점검한다. 모든 설치 및 테스트가 끝나는 오후 7시30분. 20여 명의 참관단이 들어온다. 그중 2명은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순번제로 파견 나온 경찰관이다. 그들은 매번 로또 검수과정 및 방송이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감시한다.

    “홍콩에서는 회계사, 대만에서는 고액 기부자, 한국에서는 경찰이 로또 추첨 전 과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나라별로 ‘공정성’을 상징하는 사람이 다른 거죠.”

    방청객이 모두 입장하면 공식적인 사전검수가 시작된다. 먼저 추첨볼 무게와 둘레를 측정한다. “특정 추첨볼이 무거워 가라앉거나 가벼워 더 잘 뜨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5개 세트 모든 공의 무게와 둘레를 잴 수는 없으니 세트당 5개씩을 선정해 측정한다. 이때 각 세트 5개씩, 총 25개의 공을 고르는 역할은 방청객들이 맡는다. 검수 과정에는 총 3명의 일반 방청객이 참여하는데 이를 두고 ㈜나눔로또 관계자는 “로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추첨 과정에 어떤 부정도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날 방청객으로 참여한 김하나(22) 씨는 “실제 해보니 정말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믿음이 갔다. 방송 준비를 돕는다는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로또 추첨볼은 지름 45mm, 무게 4g, 오차범위는 ±10%다. 이때는 추첨볼을 재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저울을 이용한다. 맨 위에는 44mm원, 아래는 46mm원이 있다. 즉, 공이 위에서는 통과하지 않고 아래에서는 통과해야 하는 것.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측정하는 전자저울이 있다. 방청객 중 한 명이 골라주는 공을 나눔로또 직원이 일일이 측정한다. 그리고 경찰관 한 명은 이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다.

    방청객이 눈 가리고 볼세트 선정

    로또 추첨, 번호도 숨죽였다

    로또 검수 전 과정을 기록한 문서는 나눔로또 측에서 보관한다 .

    공의 무게와 둘레 측정이 끝나면 5개의 볼세트 중 2개를 선정한다. 하나는 실제 추첨시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상용이다. 이 역시 방청객이 투명한 통에 담긴 1에서 5까지 번호가 적힌 공 중 하나를 눈을 가린 채 고른다. 이날은 추첨용 볼세트로는 3번, 비상용 볼세트로는 2번이 선택됐다. 추첨볼 세트가 정해지면 방청객 한 명과 나눔로또 직원이 함께 이를 추첨기계에 넣는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추첨기 이름은 ‘비너스’. 프랑스에서 제작된 모델로 통 안의 공기가 공을 회전시키는데, 사방에 달린 홀에 순간적으로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 들어가는 공이 당첨공이 되는 방식이다. 기계 윗부분에는 총 6개의 투입구가 있는데 방청객이 눈을 가리고 선택한 볼을 방청객이 정한 가로 또는 세로 배열 방식에 따라 한 투입구당 7~8개를 순서 없이 넣고 동시에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3차례 테스트를 해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한다. 사전검수 과정이 끝나면 8시쯤. 일주일간의 로또 판매가 끝나는 시점과 일치한다.

    이어 로또 추첨방송 리허설이 시작된다. 로또 추첨방송 9년차 SBS 박찬민 아나운서와 ‘로또걸’ 조수아 씨가 세트장에 들어선다. 3분 남짓한 로또 방송을 실제와 똑같이 리허설한다. 역시 한 차례 오차도 없다. 박 아나운서는 “지금까지 방송하면서 단 한 차례도 실수하거나 문제가 생긴 적이 없다. 워낙 사전검수 과정이 철저히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후 8시45분경. 드디어 방송이 시작된다. 오늘의 당첨번호는 10, 15, 20, 23, 42, 44, 보너스 번호는 7. 준비해간 로또를 꺼내보지만 한 줄에 겹치는 숫자가 2개 이상은 없다. 역시 꽝. 방송이 끝나고 방청객이 자리를 비우면 나눔로또, SBS 직원들은 다시 추첨기와 볼세트를 봉인하고 창고에 넣는다. “정말 로또 방송은 공정한가?”하고 묻자 박 아나운서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로또맨’을 하면서 6년간 줄곧 같은 번호로 로또를 사고 있는데 4등 한 번 됐네요. 만약 로또가 조작이라면 저부터 당첨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즉석복권 제조공장 체험

    데이터 암호화 → 인쇄 → 검사 ‘보안 또 보안’


    로또 추첨, 번호도 숨죽였다
    다른 곳은 되도록 간판이 눈에 잘 띄게 하려고 갖은 수를 쓰는데 이 회사는 간판이 안 보여 몇 번 허탕을 치고 나서야 골목 왼편에서 ㈜성지정보기술이라는 작은 간판을 찾았다. 성지정보기술은 즉석복권 제조공장. 국내에서 유통되는 즉석복권은 모두 이곳에서 만든다. 복권은 지폐와 같기 때문에 가능한 한 노출이 되지 않아야 하는 탓에 이렇게 안 보이는 데 회사가 자리했다는 것. 한국연합복권㈜은 즉석식 복권 ‘스피또’ 3종과 전자복권 7종 등을 발행·판매하는데, 성지정보기술은 한국연합복권으로부터 즉석복권 ‘스피또’ 인쇄를 위임받아 제작한다.

    복권 제조는 크게 데이터 암호화 → 인쇄 → 검사의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복권의 당첨 여부를 결정하는 데이터를 암호화해 인쇄라인으로 보내 인쇄한 뒤 검사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이다. 직원들도 담당구역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할 정도. 복권에 입력되는 데이터는 한국연합복권이 관리하는데, 데이터는 수시로 바뀐다. 데이터는 모두 암호화해서 관리하기 때문에 이곳 관리자라도 데이터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권에 스크래치를 씌우는 보안 인쇄공정에서도 보안은 생명이다. 자칫 복권이 긁히거나, 제대로 작업이 진행되지 않아 데이터가 노출되면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 보안인쇄 공정은 인쇄라인 가운데에 흰색 컨테이너박스와 장막으로 가려진 부분에서 이뤄진다. 성지정보기술 김호석 본부장은 “이곳에서 불량품이 발견되면 2만 장 가까운 라인 내 모든 복권을 폐기 처분한다”고 말했다.

    제작이 완료된 복권은 옆 작업실로 옮겨서 최종적으로 검사작업에 들어간다. 5~6년차 숙달된 작업자 4명이 복권을 일일이 검사한다. 이곳에서도 역시 3000매 단위로 인쇄되는 검사용 복권을 긁어서 불량 여부를 확인하는 등 1장의 복권이 만들어지기까지 수차례 검사가 이뤄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복권의 불량률은 5% 이내. 재고와 불량 관리용 바코드가 복권마다 인쇄돼 있기 때문에 불량이 나오면 그 개수가 전산화돼 서버로 전송되고, 이에 따라 새 복권의 인쇄작업이 진행된다. 복권의 총 생산량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모든 복권이 전산화돼 관리되기 때문.

    육안검사가 끝난 복권은 마지막으로 당첨금액 비율을 맞추는 스캔(scan) 작업을 거쳐 출고 때까지 보관된다. 김 본부장은 “불량품과 양품의 수의 합이 총 생산량과 같도록 전산 서버가 계속해서 데이터를 관리한다. 때문에 생산 도중에 관리자나 작업자가 복권을 빼내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즉석복권은 그간 ‘1등 당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당첨복권을 제작과정에서 미리 알 수 있는 것 아니냐’ 등 의혹에 적극 해명했다.

    “이러한 의혹을 없애기 위해 모든 제작과정을 자동화하고, 전산화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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