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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왜 우리는 복권에 미칠까④

올림픽 출전 후원에서 공익기부까지

대한민국 복권 역사 60년, 시대 변했어도 그 한 장엔 많은 꿈 담겨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올림픽 출전 후원에서 공익기부까지

올림픽 출전 후원에서 공익기부까지

1990년대 등장한 즉석복권은 1995년 전체 복권시장의 66%를 점유했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10년 전쯤 일요일 점심 무렵이면 TV에서 들려오던 그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커다란 돌림판 앞에 나란히 선 언니들이 버튼을 쿡 누르면, 복권 한 장 사본 적 없던 나도 괜히 긴장이 됐다. 37년간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주었지만 이젠 추억이 된 주택복권, 500원의 행복 즉석복권, 2002년 초반 등장과 함께 ‘열풍’을 이끌었던 온라인복권 로또(Lotto)까지 복권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선수단 파견 밑천… 이재민 구호자금 마련도

우리나라 복권의 기원은 ‘계(契)’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 이전,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 힘을 모아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일종의 민간협동체를 만든 것. 특히 조선 후기에는 통이나 상자에 각 계원의 이름을 적은 알을 넣은 뒤 통을 굴려 나오는 알로 당첨자를 결정하던 산통계(算筒契), 일정 번호를 붙인 표를 100명에게 나눠주고 추첨하던 작백계(作百契) 등이 인기였다.

근대적 의미에서 한국 최초의 복권은 해방 이후 발행한 올림픽복권이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선수들을 파견하기로 결정했지만, 해방 직후 대한민국은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이에 1947년 12월 당시 안재홍 민정수석 겸 올림픽후원회장이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했다. 전면에는 올림픽 참가를 위해 1947년 5월 스웨덴 IOC 총회에 참석하려다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故) 전경무 올림픽 후원회 부회장의 사진이 실렸다. 1장당 100원씩, 총 140만 장을 발행한 이 복권의 1등 당첨금은 100만 원. 총 21명이 1등에 당첨됐고, 이때 모인 기금으로 한국은 7개 종목에 69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후 이재민 구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후생복표가 1949년 10월부터 1950년 6월까지 총 3회 판매됐다. 1956년 2월부터는 산업부흥자금과 사회복지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10회에 걸쳐 애국복권이 판매됐다. 당시 액면가 100~200환에 발행한 애국복권의 1등 당첨금은 100만 환. 쌀 한 가마가 1만4030환이었으니 70가마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이후 만국박람회 개최 경비를 마련하고자 무역박람회장 안에서 관람객을 대상으로 판매된 산업박람회 복표(1962년)와 무역박람회 복표(1968년) 등이 있다. 이때까지 복권은 특정 이벤트를 유치, 후원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판 것이 특징이다.

2세대 복권시대는 1969년에 열렸다. 그해 9월 한국주택은행이 최초의 정기발행 복권인 주택복권을 발행한 것. 한국주택은행은 군경유가족, 국가유공자, 파월 장병 등의 주택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장당 100원의 주택복권을 발행했다. 1등 당첨금 300만 원. 1970년대 서울의 중소규모 집값이 200만 원 정도여서 서민에게 주택복권은 ‘내 집 마련의 상징’이었다. 월 1회, 50만 장씩 발행하던 주택복권은 1973년부터 주 1회로 바뀌고 1등 당첨금도 1978년 1000만 원, 1981년 3000만 원, 1983년 1억 원으로 뛰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주택복권의 전성시대도 로또 열풍에 밀려 2006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온라인 복권의 등장에 판도 바뀌어

올림픽 출전 후원에서 공익기부까지
1990년대에는 복권시장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바로 500원 동전으로 삭삭 긁는 즉석복권. 최초의 즉석복권은 1990년 9월 시행된 엑스포복권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체육복권이다. 엑스포복권은 대전국제무역박람회가 박람회 개최 경비를 마련하려고 대전엑스포가 끝나는 1993년 11월까지 매달 1회 발행했다. 체육복권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체육진흥기금을 조성할 목적으로 발행했다. 당시 추첨식 복권을 발행하던 한국주택은행 측은 “추첨식은 저소득층이, 즉석식은 중산층이 주로 구매할 것”이라며 두 복권을 비판했지만 즉석식 인쇄복권은 1995년 전체 복권시장의 66%를 점유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이 밖에 1993년 기술복권, 1994년 복지복권, 1995년 기업복권·자치복권·관광복권 등이 차례로 도입됐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주택복권의 인기에 중앙부처들은 기금 조성을 위해 경쟁적으로 복권을 발행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복권의 난립을 불러왔다. 과다한 복권 발행은 유통비용을 상승시켰고, 이로 인해 효과적인 공익기금 조성이 어려워졌다. 2001년 상반기에 중앙 8개 부처에서 발행한 복권 18종 가운데 65%가 판매되지 않고 폐기될 정도였다. 2003년에는 추첨식 인쇄복권 점유율이 전체 복권의 5.4%, 즉석식 인쇄복권은 3%밖에 되지 않았다. 그 빈자리에 온라인복권(로또)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2년 12월 7일 1회 추첨을 한 로또는 45개 번호 중 6개를 맞히면 1등에 당첨된다. 등장 3개월 만인 2003년 2월 한 달 동안 5025억 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2001년 한 해 모든 종류의 복권 판매액이 7000억 원 수준이었으니 로또 열풍이 얼마나 거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나친 인기 때문에 로또는 사행심 조장, 로또 폐인 등장 등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복권 전체 판매액(스포츠토토 제외)의 95% 수준을 유지하며 대한민국 복권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올림픽 출전 후원에서 공익기부까지

2003년 2월 온라인 복권을 사러 국민은행을 찾은 인파가 대단하다.

현재 전체 복권 판매액에서 온라인복권의 판매 비중은 53.4%(2008년 기준). 세계 평균 37.9%보다 높다. 특히 인쇄복권은 2.6%에 불과해 세계 평균 인쇄복권 판매 비중 38.1%보다 훨씬 낮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온라인복권의 인기가 높은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복권을 석권하는 로또의 당첨금이 높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30일부터 한 달간 한국갤럽이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표적인 온라인복권 로또를 구입하는 이유로 74.3%(중복 응답)가 ‘최고 당첨금이 커서’라고 답했다.

로또는 당첨액수가 정해지지 않아 많이 판매될수록 많은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 1등 당첨자가 없으면 당첨금이 이월되기도 한다. 7월 17일 제398회 로또 1등 당첨자 4명은 각각 26억여 원을 거머쥐었다.

‘로또는 또 다른 베풂’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인기의 비결이라고 볼 수 있다. 2002년 국내 출시 당시 로또는 ‘인생역전’ ‘대박’ 등의 이미지였으나, 2007년 12월 (주)나눔로또가 사업을 전담하면서 나눔의 의미가 강조됐다. 나눔로또 사업운영본부 운영지원팀 차승현 팀장은 “많은 분이 ‘오락도 즐기고 기부도 한다’며 정기적으로 로또를 구매해 고정 팬이 늘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0.07.26 747호 (p36~37)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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