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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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 죽인 살인마 … 죽이지 말라”

한·미 범죄피해자 가족들 서로의 아픔 위로 … ‘사형제 폐지’ 용서의 외침도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6-28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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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식 죽인 살인마 … 죽이지 말라”

    범죄 피해자 가족들은 대중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할머니, 친구들이랑 자전거 타러 갈 거예요. 금방 올게요.”

    야구를 좋아하던 주근깨 소년, 제프리 컬리(Jeffrey Curley·당시 10세)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긴 채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1997년 10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제프리는 20대 초반 남성 2명에게 살해당했다. 사건 2주 전 제프리의 자전거를 훔친 두 청년은 사건 당일 “새 자전거를 사주겠다”며 아이를 유인했다. 제프리는 차에 올라탔고 그들은 아이를 위협하며 “나와 성관계를 맺으면 자전거를 사주고 돈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프리는 거부했고 결국 두 청년에게 살해당한 뒤 플라스틱 통에 담겨 강물에 던져졌다.

    마음에 묻은 소중한 내 아이

    “제프리를 키우며 저는 ‘아이가 건널목 건널 때 혹시 넘어지진 않을까? 숙제는 혼자 힘으로 잘할 수 있을까?’만 걱정했죠. 내 아이가 성폭행이나 유괴 피해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버지 로버트 컬리(Robert Curley) 씨는 10여 년 전 사건을 담담히 회상했다. 이런 사건을 겪기 전까지 그는 대부분의 사람처럼 사형제도에 대한 명확한 의견이 없었다. 끔찍한 사건을 보면 “저런 놈은 죽여야 해!”라고 외쳤지만, 사형제의 부당함에 대해 들으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 일을 겪은 뒤 그는 매일 아침 분노에 떨며 ‘그 범인들을 때려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에 참석하면서 사형제도 역시 인간이 운영하는 제도로 완벽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객관적으로 사형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만약 범죄를 저질렀어도 부자라면 사형을 선고받지 않을 수 있지만 가난하다면 그 반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그는 미국의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Murder Victims’ Family for Human Rights·이하 MVFHR)’ 회원으로 사형제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제프리의 죽음이 나를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명예롭게 하기 위해 나는 전 세계를 돌며 내 아이의 죽음을 말하고, ‘사형제 폐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MVFHR은 2004년 ‘세계인권의 날’에 살인 피해자의 가족과 사형수 가족이 모여 만든 단체로 사형제도의 폐지와 범죄 피해자의 인권옹호를 주장한다. 이사장 버드 웰치(Bud Welch) 씨 등 대표단 3명이 6월 19일부터 사흘간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의 초청으로 방한해 한국의 살인 범죄 피해자 가족들과 만났다. 그리고 21일 오후 서울 조계사 내 전통예술공연장에서 대담의 시간을 갖고 240여 명 앞에서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털어놓았다.

    웰치 씨는 1995년 168명이 목숨을 잃은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 사건으로 외동딸 줄리 매리(Julie Marie·당시 23세)를 잃었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까지 능통한 줄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페인어 번역가로 일했다. 그러나 티머시 맥베이 등

    2명이 무기거래 단속에 원한을 품고 줄리가 일하던 앨프리드 머레이 연방청사에 차량 가득 폭탄을 싣고 와 터뜨렸다. 줄리가 공군 소위였던 한 살 연상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발표하기 2주 전이었다.

    한국의 살인 피해자 가족 모임인 ‘해밀’ 소속으로 대담에 참석한 김기은 씨 역시 2005년 딸 은경 씨(당시 29세)를 잃었다. 범인은 딸의 남자친구였다. 당시 6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내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며 은경 씨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3주 후 밤늦게 딸을 불러냈다. 금방 돌아오겠다던 딸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앰뷸런스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딸을 칼로 찔러 죽이고 뒤따라 자살한 남자친구의 시신을 실으러 온 것이었다.

    “저는 지금도 앰뷸런스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딸을 가슴에 묻으면서 제 삶도 묻었습니다.”

    사건 발생 후 그들은 사회를 등지고 살았다. 웰치 씨는 이때의 삶을 ‘안간힘을 써서 살아내다’란 뜻의 ‘struggle’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하루하루 술에 기대 보냈더니 1년 만에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김기은 씨는 “가해자인 딸의 남자친구 가족을 다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사형 요구는 가족들의 사사로운 복수”

    하지만 점차 가해자를 저주하고 처벌해도 죽은 자녀를 되살릴 수 없고, 분노와 증오는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웰치 씨는 “5년간 ‘과정’을 겪은 끝에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그를 용서해야 내가 해방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폭파사건의 주범인 티머시의 아버지를 만난 날 큰 깨달음을 얻었다.

    “티머시의 가족도 나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드러내고 눈물을 흘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피해자였습니다. 사형은 피해자인 나의 상처를 치유해주지 않는 또 다른 살인입니다.”

    살인 피해자 가족으로서 “난 사형제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컬리 씨가 사건이 난 지 2년쯤 지나 처음으로 “나는 범인인 두 청년이 죽길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자 아내와 제프리의 형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에 웰치 씨는 “피해자 가족이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클라호마 사건 발생 6개월 후에는 피해자 가족의 85%가 사형제에 찬성했어요. 그런데 1년 후에는 절반만이 지지했죠. ‘범인을 죽이는 건 자신에게, 죽은 가족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가족이 꽤 있었던 거지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범죄 피해자 가족들에게 컬리 씨는 “‘괜찮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평생 악몽에 시달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웰치 씨는 “피해자 가족들 스스로 ‘쉬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며 상처를 덜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내 딸 줄리가 얼마나 훌륭한 아이인지 알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영원히 의미를 가진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MVFHR은 ‘사형집행은 범죄를 줄이지 않고, 살인자를 죽이는 것은 가족들의 사사로운 복수에 불과하며, 다른 정치인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사형제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사형제에 반대한다. 공지영 씨에 따르면 사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만약 네 자식이 죽었을 때는 어떻게 할 거냐?’라고 한다. 마른 어깨를 떨며 울먹이는 김기은 씨 머리 위로 대담의 제목이기도 한 현수막이 그 대답처럼 흔들렸다.

    “우리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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