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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1인 3역 김명민의 연기 본색

우민호 감독의 ‘파괴된 사나이’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1인 3역 김명민의 연기 본색

1인 3역 김명민의 연기 본색

김명민의 연기 변신은 끝이 없는 듯하다.

세상이 흉흉하다. 우리 딸들은 학교에 가다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입고, 혹은 학교에 도착해서도 자신을 향해 내뻗는 음험한 손길을 피하지 못한다. 세상은 원래 험악한 곳이라지만 최근의 뉴스를 보고 있으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유괴하고, 죽이는 일이야 세대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지만 세상이 점점 나빠진다는 생각을 버리긴 힘들다.

영화 ‘파괴된 사나이’는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목사였던 남자는 아이를 유괴당하고 거액의 돈을 요구받는다. “경찰에 신고해서는 안 된다”는 범인의 요구가 있었지만, 주인공은 경찰과 함께 목동 아이스링크에 나간다. 낌새를 차린 유괴범은 도망을 치고, 결국 아이는 영영 소식이 없다. 8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이 남자에게 과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의료기구 판매상으로 바뀐 남자는 목사의 말투나 외모를 버린 지 오래다. 욕을 하고, 줄담배를 피우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오히려 자신이 믿었던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 지하철역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이미 8년이 지난 터라 바뀐 모습을 그래픽으로 재연해보지만, 이것조차 남편에게는 지긋지긋한 풍경이다.

그런데 정말 그 딸이 나타난다. 유괴범은 아이를 살려두고 2차 범행을 위한 ‘소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의 영혼과 육체는 형편없이 유린당하고, 이를 알게 된 아내는 아이를 뒤쫓다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어쨌든, 아이가 살아 있다.

이후 영화는 영혼을 버렸던 남자가 아이를 찾아가는 여정이 그려진다. 이번엔 유괴범의 말처럼 경찰에게 알리지 않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윤리적 문제를 던진다는 사실이다. 유괴범이 요구하는 돈이 없는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마련하려고 한다. 그때 누군가 알려준다.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니 정확히 말해 의식을 잃은 아내 앞으로 수억 원의 사망보험이 기다리고 있다고.



남편은 “우리 아이”를 위한 일이라며 보험금을 타낸다. 법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윤리적으로, 심정적으로는 허락된 일 아니냐며 신인감독 우민호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 ‘추격자’처럼 주인공 김명민은 사이코패스 엄기준을 쫓아 서울 외곽의 외딴집까지 가 혈투를 벌인다. 목사, 양아치,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진폭이 넓은 감정 연기를 보여주느라 김명민은 힘든 여정을 겪는다. 어떤 작품이든 김명민은 늘 힘든 역할을 선택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리얼리즘을 부여하는 메소드 연기만 보여준다는 우려를 버리기 어렵다.

‘파괴된 사나이’의 가장 큰 수확은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뮤지컬 배우, 시트콤 배우로 얼굴을 알린 엄기준은 냉혹하면서도 매끈한 살인마의 이미지를 120% 소화해낸다. 정확한 발성이나 차분하고 냉정한 연기는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파괴된 사나이’는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과 동일선상의 감정을 요구한다. 사실 ‘세븐 데이즈’와 ‘추격자’ 이후 한국 대중·상업 영화 시장의 중요한 코드가 바로 딸을 모티프로 한 스릴러 아닐까 싶다. 게다가 이러한 계보의 작품들은 마지막 구원에 인색하다. 세상 대부분의 납치가 살인으로 끝나는데, ‘영화적 구원은 허구적이지 않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뉴스에 이토록 처참한 광경이 널려 있다고 영화가 더 독해져야 하는 것일까? 사실감 있고 완성도 있는 긴장감일지라도 때로는 그 세공적 완성도가 갑갑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아마 9·11테러 이전에 미국 영화사에 수없이 등장했던 공공건물 파괴 장면이 이후 거의 사라진 것과 유사한 현상일 테다. 진짜가 된 공포를 다시 체험하고 싶은 관객은 오히려 드물다.



주간동아 2010.06.21 742호 (p86~86)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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