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5

2010.05.03

“시장자본주의 체제 너 떨고 있지”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 박경철 blog.naver.com/donodonsu

    입력2010-05-03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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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자본주의 체제 너 떨고 있지”
    A씨가 무인도에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당장 생존을 위해 필요한 수단들을 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큰 나뭇가지를 꺾어 집을 짓고, 물고기 잡을 작살을 만들고, 과일을 따서 말려 저장함으로써 갑자기 닥칠 위험에 대비한다. 이러한 A씨의 활동은 생존, 혹은 삶의 유지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여러 활동 중 하나다. 본능행위를 넘어선, 인간의 지성과 기술이 조합된 일종의 근본 행위인 셈이다. 이것이 실제적 경제행위다.

    그런데 무인도에서 나와 세상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A씨는 사회질서의 규제를 받게 된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생긴다. A씨의 말린 과일은 때에 따라 한 곡의 노래, 한 장의 지폐로 교환되기도 한다. 그리고 A씨는 그것(지폐)을 더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지폐라는 경제 수단은 말린 과일보다 보관에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래서 사회는 이런 교환을 쉽게 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두었다. 이것이 형식주의적 경제다. 우리가 통칭 ‘경제’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것. ‘리카도의 악’이라 부르는 비교우위론도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개인과 사회의 실존을 위한 행위는 배제한 채 그것의 산물을 교환하거나, 최대의 산물과 잉여를 축척하는 데 필요한 효율적 시스템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주류경제학이다.

    ‘거대한 전환’(길 펴냄)의 저자 칼 폴라니(1886~1964)는 바로 이런 시각을 부인한다. 흔히 전자를 좌파적 견해로, 후자를 우파적 견해로 보지만, 폴라니는 이 둘의 조합 또는 혼합이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하기에는 그의 사상이 지나치게 거대하고 복잡하며 심오하다. 폴라니는 인간이 ‘희소성’을 기반으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더 많은 생산을 이룰 것인지를 고민하는 현대경제학의 논점에 대해 출발 지점이 틀렸다고 말한다. 즉, 인간이 단순히 이윤 획득의 동기만으로 경제활동을 한다고 보는 관점은 오류라는 것. 인간은 때로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기도 한다. 단순히 기아를 면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여기는 것은 일면만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에게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경제란 ‘일, 생산, 기술, 물건을 만들고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단지 선택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는 이런 인식의 바탕에서 “다양한 방식과 여러 동기를 가지고 경제적 행위에 참여하는 노동자, 자본가, 그리고 지주계급들은 결코 경제시스템, 즉 체계 속에 머물지 못하며, 그 대신 경제는 개별적으로 이윤 극대화를 기도하는 무형질의 가격결정자들에 의해서만 존재 영역을 확보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제라고 여기는 것은 물질을 생산하고 그 생산이 생존의 필요에 의해 작동하는 현실적인 경제가 아니라, 사실은 가격을 의식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폴라니의 시각에서 보면 시장자본주의는 ‘이득, 혹은 획득이 기본 추진력으로 작동’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 폴라니의 사상은 실제적 경제와 형식적 경제에 대해 사회학적·인류학적 반성을 거쳐, 끊임없이 질주하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경제가 가진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순간은 정치·경제 체제가 완성된 순간이 아니라, 단지 발전의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시장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완전한 체제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 진화해야 할 불완전 체제이므로, 그 개선과 진화에 주력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임을 설파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시장’이라는 말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한다. 시장은 늘 옳고 정당하며, 반시장적이라는 말은 곧 체제를 부정하는 말처럼 위험한 금기어가 돼버렸다. 그의 사상은 당시 다소 위험한 사상으로 치부됐지만, 오늘날 그의 견해가 얼마나 탁월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책은 폴라니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다. 물론 ‘위대한 전환’ 같은 주저(主著)들을 읽어보고 정리의 용도로 이 책을 읽으면 더 좋겠지만, 여건상 다른 저작들을 넘어서서 폴라니의 사상에 접근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필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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