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4

2010.05.04

‘안방마님’ 덕에 팀이 춤추네

포수 활약 따라 초반 프로야구 희비교차 … SK 박경완·두산 양의지 “나만 믿어라”

  •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입력2010-04-26 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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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방마님’ 덕에 팀이 춤추네
    “팀 전력의 절반이 없어졌다.”

    지난해 6월 포수 박경완(38·사진)이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을 마감하자 SK 김성근 감독이 한 말이다. 김 감독은 “박경완이 부상한 날 저녁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호텔에서 맥주 세 병을 시켰는데 한 병 마시고 취해 의자에서 잠들었다”고 했다. ‘야신(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김 감독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팀 전력의 절반 그라운드의 야전사령관

    야구는 흔히 ‘투수놀이’라고 한다. 투수가 강한 팀이 강팀이라는 얘기다. 단순히 계산해도 그렇다. 타자는 10번 타석에 들어서 3번 안타를 치면 3할 타자다. 3할 타자는 좋은 타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거꾸로 말하면 좋은 타자라도 7번은 투수에게 밀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각 팀은 좋은 투수를 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포수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투수의 공을 받아주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모든 투수가 강속구에 빼어난 제구력을 지녔다면 좋은 포수는 필요 없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받을 줄만 알면 된다.

    하지만 강속구에 제구력까지 갖춘 투수는 리그 전체를 통틀어 손가락에 꼽을 정도. 특별하지 않은 투수에게는 포수의 구실이 무척 중요하다. 어떻게 투수를 리드하느냐, 어떤 볼 배합을 가져가느냐, 투수가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 어떻게 안정을 시켜주느냐, 원 바운드 공을 얼마나 잘 블로킹해주느냐, 도루 시도를 얼마나 잘 막아내느냐 등 포수가 할 일은 차고 넘친다.



    박경완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한국 프로야구에서 첫손에 꼽힌다. 지난 3년 연속 SK와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었던 두산의 김경문 감독도 박경완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포수 출신인 김 감독은 “박경완은 투수가 믿음을 갖고 던질 수 있게 하는 포수”라며 “사인도 잘 내지만 투수의 공을 블로킹하면서 아픈 티를 안 내 투수가 마음 편하게 던질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김시진 넥센 감독 역시 “박경완의 볼 배합은 단연 최고다. 타자들의 허를 찌르는 볼 배합을 잘한다”고 전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SK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전천후 왼손투수 전병두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팀의 주축 투수인 윤길현과 채병용은 군에 입대했다. 자유계약선수(FA) 보강 등의 전력 보충도 없었다. 하지만 SK는 시즌 초부터 탄탄한 마운드를 바탕으로 선두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냥 선두권 정도가 아니라 7할대의 승률을 거두고 있다. 4월 19일 현재 성적은 13승 5패(승률0.722)다. 그 배경에는 팀 전력의 절반이라던 박경완이 있다. 박경완은 9개월여의 긴 재활을 거쳐 올 시즌 건강하게 돌아왔다.

    그가 마스크를 쓴 뒤 SK 투수들은 지난해보다 한결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일본인 투수 가도쿠라 겐은 “박경완이 공을 받으면 마운드에서 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왼손투수 고효준 역시 “박경완 선배의 사인대로 던지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SK 투수들 사이엔 ‘박경완의 리드는 옳다’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다. 믿음을 갖고 던지는 공과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던지는 공은 타자에게 큰 차이가 있다. 똑같은 투수를 더욱 춤추게 만드는 포수가 박경완인 것이다.

    박경완은 또 공격에서도 한 방을 갖춘 포수다. 19일 현재 타율은 0.231에 그치지만 타점을 12개나 올렸다. 최정과 김강민에 이어 팀 내 3위다. 한창때는 홈런도 곧잘 쳤다. 현대 시절이던 2000년 5월 19일 한화전에서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쳤다. 그해 40홈런으로 홈런왕도 차지했다. 2001년에는 24홈런-21도루로 포수 최초로 20-20 클럽에도 가입했다.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모자람이 없다.

    좋은 포수를 갖춘 것은 SK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는 두산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두산의 안방은 신예 양의지(23)가 지킨다. 이름조차 낯설었던 양의지가 두산의 주전포수가 된 사연도 재미있다. 김경문 감독은 당초 KIA와의 개막 2연전을 끝낸 뒤 양의지를 2군에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지훈련 내내 열심히 훈련한 양의지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3월 29일 경기에서 초반 0대 6으로 뒤지자 그에게 남은 경기나마 한번 뛰게 한 뒤 2군에 보내려 했다.

    상위권 질주는 ‘포수 살림살이의 힘’

    그런데 그날 두산은 덜컥 10대 9로 역전승을 거뒀다. 김 감독은 교체 멤버로 마스크를 쓴 양의지를 눈여겨봤다. 그리고 3월 30일 넥센전에 그를 선발로 출장시켰다. 양의지는 그날 홈런 2방을 몰아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결국 2군에 내려간 선수는 고참 최승환이었다. 김 감독은 “기회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잡는 것인데 양의지는 그것을 제대로 잡았다”고 했다. 양의지는 어린 나이지만 투수 리드는 물론 방망이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양의지와 함께 투수 리드가 좋은 용덕한이 백업으로 뒤를 받친다.

    상위권에 포진한 삼성과 LG 역시 포수의 힘이 크다. 삼성은 지난해 왼쪽 팔목 골절로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한 특급포수 진갑용(36)의 복귀가 반갑다. 투수 리드와 송구, 블로킹 능력이 좋은 진갑용은 올해 부상에서 회복해 삼성 투수진을 편안하게 이끌고 있다. 타격에서도 19일 현재 타율 0.306에 2홈런, 8타점으로 하위 타선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마운드에서 후배 투수 심수창과 언쟁을 벌여 팬들의 비난을 받았던 LG 포수 조인성(36)도 올해는 한결 매끄러워진 모습으로 팀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조인성은 박종훈 신임 감독의 절대 신뢰 속에 그동안 감춰져 있던 포수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펼친다. 수비가 잘되니 방망이도 살아났다. 19일 현재 타율 0.320에 2홈런, 12타점을 기록 중이다. 두 팀은 현재윤(삼성)과 김태군(LG)이라는 수준급 백업 포수도 보유해 30대 중반인 진갑용과 조인성의 체력을 안배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KIA도 주전포수 김상훈과 장기 계약을 해 당분간 안방 걱정을 덜었다.

    반면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처진 넥센과 한화, 롯데 등은 포수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넥센은 터줏대감이던 김동수의 은퇴 공백을 강귀태와 허준이 제대로 메우지 못해 고민이다. 김시진 감독은 “강귀태는 무모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만큼 정면승부를 하는 반면, 허준은 지나치게 안전 위주로 투수를 리드한다”고 지적했다. 공격에서도 강귀태는 타율 0.211에 그치고, 백업 포수로 나서는 허준은 아직 안타를 1개도 치지 못했다.

    한화는 고참 신경현과 신예 이희근이 교대로 마스크를 쓰지만 벤치에 확실한 믿음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롯데 역시 공격형 포수 강민호과 수비형 포수 장성우 가운데서 고민이다.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팀 공격력 강화를 위해 강민호를 중용하지만 장성우의 수비가 아까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4월이고 시즌은 길다. 그라운드의 3D 포지션인 포수 자리를 지키는 선수는 부상을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 한여름의 체력 저하도 이겨내야 한다. 우승 팀 뒤에는 언제나 좋은 포수가 있었다. 올해 가을 마지막에 웃는 팀의 ‘야전사령관’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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