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2

2010.04.20

장르와 매체의 경계가 어딨니

‘페스티벌 봄’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0-04-15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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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와 매체의 경계가 어딨니

    ‘죽은 고양이 반등’은 스토리를 재현하는 식의 연극이 아니다. 그러니 프로덕션이든 관객이든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예술가가 ‘경계’를 넘어서는 표현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연극, 무용, 미술, 건축 등을 융합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테크놀로지도 활용한다. 굳이 포스트모던, 포스트드라마, 해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유비쿼터스 시대의 감성을 담을 수 있는 형식을 고민한 결과다.

    ‘페스티벌 봄’은 국내외의 다원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다수 모아놓았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특히 크리스 콘덱의 ‘죽은 고양이 반등’은 주식을 이용한 독특한 공연이다. 이 작품은 치밀하게 짜인 스토리를 재현하는 식의 연극과는 거리가 멀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주식시장을 검색하고, 관객들의 조언을 구하며 주식을 사고판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원하는 관객은 직접 극에 참여해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프로덕션이든 관객이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흉내 내기’가 아닌 ‘진짜’ 사건들이다. 물론 대략적인 시나리오는 갖춰져 있지만, 공연 실시간의 상황에 따라 결과는 변한다. 진행 상황, 관객 구성, 배우들의 상태에 따라 매회 긴장감과 집중도 등에서 많은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삶이 그렇듯 무대 위의 상황도 똑같이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은 동시대 퍼포먼스들이 공통적으로 기저에 깔고 있는 생각이긴 하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관객들이 속한 제도권 사회의 삶 자체다.

    ‘죽은 고양이 반등’이라는 제목은 ‘죽은 고양이를 높은 건물에서 떨어뜨리면 쭉 떨어졌다가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빗댄’ 주식용어로, 완전히 떨어진 회사의 주가가 갑자기 상승해도 회생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좋아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주식시장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주식’은 하나의 알레고리다. 단지 금전적인 차원에서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확대해보면 우리 사회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두 시간 동안 재미있게 눈앞에서 벌어지는 주식놀이에 씁쓸한 끝 맛이 숨겨져 있다고나 할까.

    그런가 하면 컨템포러리 댄스 ‘문맥이탈-피나 바우쉬를 위하여’는 독특한 신체 표현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감수성을 전달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맥’은 제거한 채 동물적이고 히스테릭한 동작, 상대의 체온을 갈구하는 모습 등을 통해 현대인의 잠재된 상처와 그 반응을 전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페스티벌 봄’에서는 다원예술가인 홍성민이 기획한 ‘줄리엣’ 등의 실험이 이뤄졌고 제롬 벨 안무의 ‘루츠 푀르스터’, 극단 여행자와 캐서린 설리반의 ‘영매’ 등 다채로운 콘셉트의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5월 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아르코미술관, 남산예술센터, 서강대학교 메리홀, 구로아트밸리, 정보소극장, 마로니에 공원, 서울월드컵경기장, 필름포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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