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2010.04.13

한국 패션이 날개를 다는 법

매력 넘치고 파워풀한 콘텐츠 보유 … ‘로컬화’ 전략으로 세계인에 다가서기

  • 조 벡 광고기획자·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입력2010-04-08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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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패션이 날개를 다는 법
    올해도 어김없이 2011년 추동(秋冬) 패션을 미리 선보이는 서울패션위크(서울시 주최)가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렸다. 필자는 올해 처음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했다. 해외에서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을 프로모션하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떤 디자이너들이 활동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2월 필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콘셉트 코리아’(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행사의 현지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콘셉트 코리아는 정석원·윤원정 부부, 정욱준, 박춘무, 정구호, 홍승완, 이도이 등 한국 디자이너 6명이 뉴욕 무대에 출사표를 던진 쇼케이스 행사다(주간동아 718호 ‘세계와 맞장 뜨는 KOREA FASHION’ 기사 참조). 이 행사는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한국 패션이라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 현지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정통 아트와 패션의 조화를 시도하는 등 기존의 패션 행사들과는 차별화를 두었다.

    서울패션위크서 무한한 가능성 확보

    가장 큰 차별화는 문화를 다루는 정부 부서가 행사를 주관하다 보니, 패션을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내세워 세계 시장에 도전해보자는 행사 취지가 분명했다는 점이다. 필자도 패션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소구될 수 있도록 ‘밸류 메이킹(value making)’을 통해 뉴욕 현지의 패션 피플에게 한국 패션의 문화적 수준을 강렬하게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이 행사는 당장의 비즈니스 성과를 기대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장기적 시각에서는 반드시 시행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콘셉트 코리아 행사와 관련해 반성할 부분도 많다. 특히 디자이너 선발이나 오프닝 파티, 사흘간의 쇼케이스 등에 대한 현지 평가가 좋았음에도 후속 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또한 뉴욕 패션계의 VIP에게 배포하는 ‘룩북(look book)’이 유명 스타일리스트 키건 싱과 제이슨 페러, 세계적 포토그래퍼 잭 피어슨 등이 참여했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행사라는 점, 그리고 한국에서 온 콘셉트 코리아라는 행사가 뉴욕에서 지명도와 명성을 쌓을 기회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뉴욕 패션 시장이 프랑스 파리에 비해 신인에게 관대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실제로는 뉴욕 패션계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터다. 특히 일회성 행사를 위해 뉴욕을 방문한 외지인에게 현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다시 서울패션위크로 돌아와보자. 여러 국내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보니, 한국 패션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서울패션위크는 디자이너 45명의 런웨이 쇼로 채워진 ‘서울컬렉션’과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보고 수주까지 할 수 있도록 한 ‘서울패션페어’, 서울시가 선정한 이들에게 5년간 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줘 신인 디자이너의 인큐베이터라고도 불리는 ‘제너레이션 넥스트’ 등 다채로운 행사로 꾸며졌다.

    특히 남성복 컬렉션이 상당히 파워풀해 인상적이었다. 제일모직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MVIO)’의 디자이너 한상혁과 신원통상 ‘파렌하이트 옴므(Fahrenheit Homme)’의 디자이너 정두영은 기업의 전폭적 지지가 있어서인지, 세계적인 컬렉션에 당장 참여해도 될 만큼 뛰어난 수준을 선보였다. 파리 컬렉션과 뉴욕 컬렉션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디자이너 정욱준의 ‘준지(Juun J.)’와 디자이너 최범석의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는 해외 컬렉션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련된 쇼 진행과 아이템을 선보였다. 영국 ‘보그’의 전 에디터이자 BBC 패션 전문위원인 브론윈 코스그레이브는 “내가 여자임에도 제너럴 아이디어와 준지는 입고 싶은 아이템으로 가득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남성복 컬렉션은 여성 디자이너 송혜명의 ‘도미닉스 웨이(Dominic’s Way)’였다. 하드코어적인 의상의 완성도도 대단했지만, 독특한 쇼 구성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한국 패션이 날개를 다는 법
    신인들로 구성된 제너레이션 넥스트는 SETEC가 아닌, 삼성동 ‘크링(Kring)’에 마련된 특별 무대에서 행사가 이루어져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퍼포먼스를 활용한 참신한 구성과 신인만이 가능한 과감한 시도 등이 특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필자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쇼장 입구마다 눈을 반짝이며 늘어선, 패션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었다. 디자이너 개개인의 컬렉션이 모두 파워 넘치고, 관객의 열기가 뜨거웠음에도 VIP들의 자리 배정이나 접대, 대우 등은 미흡해 아쉬움이 남았다.

    올가을 서울시는 대망의 글로벌 프로젝트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파리에서 열리는 트레이드 쇼 가운데 하나인 ‘트라노이’(www.tranoi.com)와 서울시가 손잡고 이 쇼에 참가할 한국 디자이너를 선발,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프랑스 패션 관계자들을 서울패션위크에 대거 초정하고 일부는 심사에 참여하게 하는 등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포장을

    이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국제 패션 행사가 최근 많아지고 있다. 정부가 패션에 관심을 갖고 투자, 지원하는 것은 패션계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 한국 패션을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시키고자 한다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명제’가 하나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글로벌화가 아닌 로컬화, 즉 꾸준한 현지화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지화 전략의 가장 좋은 예는 뉴욕 패션위크에서 아프리카 출신 디자이너들이 여는 그룹쇼 ‘어라이즈(ARISE)’다. 쇼 진행뿐 아니라 아프리카 패션으로 가득한 동명의 패션잡지도 발행해 컬렉션에 힘을 실어준다. 또한 뉴욕 현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PR회사를 고용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낯설기만 하던 아프리카의 하이패션 쇼가 이제는 뉴욕 패션위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로 부상했다. 이 쇼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콘텐츠는 아프리카 하이패션이지만, 뉴욕 현지에 강한 PR회사를 고용하고 현지에서 패션잡지를 발간하는 등 최적의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즉, ‘뉴욕에 가면 뉴욕법을 따르라’.

    우리도 실체 없는 ‘글로벌화’의 병폐에 말려들지 말고 뉴욕과 파리 사람들이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현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현지에서 명성 높은 스태프와 협업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기본적으로 한국 패션이라는 콘텐츠는 매력적이고 파워풀하다. 지금은 이를 어떻게 잘 포장해 보여주느냐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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