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2010.04.13

일본 대학가도 ‘취직 낭인’ 넘친다

경기 침체로 ‘취직활동’ 1~2년 연장 … 일부는 실업 돌파구로 ‘혼인활동’에 적극적

  • 도쿄=이종각 jonggak@hotmail.com

    입력2010-04-08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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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한국과 달리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3월 말에 있고 신학기는 4월 초부터다. 기업이나 관청 등의 새 연도도 4월 1일부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매년 4월 1일엔 신입사원이나 신입공무원의 입사식이 일제히 열리고, 4월 초면 전철이나 거리는 새 양복을 입은 신입사원들로 붐빈다. 이때를 전후해 대학 4학년이 된 학생들 중 취직(취업은 다음 해 4월)을 희망하는 이는 기업체 등이 마련한 채용설명회에 참석하거나 엔트리 시트(entry sheet)라 부르는 입사원서를 제출하고, 서류심사를 통과할 경우 필기 및 면접시험을 치르는 등 본격적인 취직활동에 들어간다. 이 같은 ‘취직활동(就職活動)’을 줄여 ‘슈카쓰(就活)’라고 한다. 최근엔 경기악화로 졸업 학년이 된 학생들의 ‘슈카쓰’에 적신호가 켜졌다.

    1960년대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은 90년대부터 부동산 폭락 등 ‘버블경제’의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경기침체가 계속됐다. 이에 따른 경기악화로 대졸자의 취업이 가장 어려웠던 2000년 전후를 일본 언론은 ‘취직 빙하기(氷河期)’라고 했다. 이 무렵 취직이 안 된 명문대 졸업생이 부모나 주위 사람들 볼 면목이 없다며 학교 근처인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 역에서 들어오는 전철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었다.

    취직 빙하기의 재래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경제는 회복세를 보였으나, 2008년 가을에 불어닥친 세계 금융위기로 다시 침체의 늪에 빠졌다.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태 이후엔 한국에서도 일본 경제를 우려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특히 심각한 디플레이션으로 경기회복이 불투명해지자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고 사원 채용을 크게 축소해 고용 사정은 악화일로다.

    이 같은 취업난은 대학 졸업반 학생(또는 취직이 안 된 졸업생)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취직을 희망하는 2010년 3월 졸업 예정 대학생(4년제)의 취업 내정률은 80.0%로 지난해 갖은 기간에 견줘 6.3% 낮다(2월 1일 기준). 후생노동성이 조사를 시작한 1997년 이후 최악의 상태다. 4년제 대학뿐 아니라 고교 졸업 예정자의 내정률도 88.1%로 전년도에 비해 6.4%가 줄었다. 언론매체 등에서는 다시 ‘취직 빙하기’가 엄습했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2010년 들어서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채용시험 도중에 갑자기 채용을 중지하거나, 채용 중지를 검토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스미토모 생명보험,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인 얀센 파머, 야마하 발동기 등 10여 회사(2월 현재)에 이른다. 이들 회사는 자사의 사원모집에 응모해 시험을 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채용을 일단 중지하니 양해해주기 바란다’는 e메일을 보냈다. 채용을 중지하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실적 악화에 따른 체질 개선책의 일환’ 등이다.

    이에 앞서 2009년엔 학생들에게 내년 봄 채용한다는 내정을 통보했던 기업들 중 돌연 내정을 취소하는 기업(87개사, 331명)이 잇따라 나타나 당사자들은 물론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많은 업체가 한꺼번에 내정을 취소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중견 부동산판매회사는 내정 취소 통보를 받은 학생들에게 사과와 함께 1인당 몇십만 엔씩 위로금을 지불했지만, 중소기업들은 위로금도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4월 1일자로 입사시키자마자 다음 날부터 ‘자택대기’ 발령을 내는 일도 있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유행어가 상징하는 한국의 고용 사정은 일본보다 더욱 심각하다. 청년실업자(15~29세)가 역대 최고 수준인 10%에, 최초로 40만 명을 넘어섰다(통계청, 2010년 2월 고용 동향). 한국에도 ‘취직 빙하기’란 말이 수입돼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최악이라지만 일본의 대졸 취업률 80% 선은,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인 한국과 비교하면 그래도 양호하다. 어떤 의미에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 경제의 내실을 보여주는 수치라고도 할 수 있다.

    취직이 힘들어지자 일본 각 대학에 취업재수생을 의미하는 ‘취직 낭인(浪人)’이 늘고 있다. ‘취직 낭인’은 졸업생 신분으로 취직시험을 치르면 다음 해 봄에 졸업하는 재학생(新卒이라 부른다)보다 불리해지므로 일부러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따지 않은 채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이들이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취득하고도 1년 또는 그 이상 재학할 수 있도록 학교가 졸업유예를 인정해주는 예도 있다. 물론 소정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취직 상황이 풀릴 것을 기대하며 휴학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한국 남학생들은 주로 군 입대를 이유로 휴학하지만 병역의무가 없는 일본에서는 대부분 유학, 질병 등 개인적인 이유로 휴학한다. 그러나 휴학 중 등록금을 내지 않는 한국과 달리 일본 대학에서는 휴학생도 재학생의 50%에 이르는 등록금을 내야 한다. 학생 측이 일방적으로 불리해 보이지만, 학생 신분을 계속 유지하는 데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학교 측은 등록금을 받는다. 한국 대학에도 졸업을 유예하는 이른바 대학 5, 6학년생의 수가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어 전체의 30%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교육과학기술부 통계, 2009년 말 기준). 한국과 일본 모두 경기침체로 인한 취직 낭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곤카쓰’ 비즈니스 성업 중

    최근 일본에선 미혼남녀가 맞선파티에 참가하거나 결혼정보회사에 등록, 취직활동을 하듯 결혼을 위해 노력하는 ‘곤카쓰(婚活)’가 성행하고 있다. 곤카쓰란 ‘결혼활동(結婚活動)’의 약칭으로 ‘슈카쓰’에 연관해 만든 조어다. 2007년 말 사회학자와 저출산문제 전문가가 펴낸 ‘혼활사회(婚活社會)’라는 책 제목에서 비롯됐다. 이후 ‘곤카쓰’는 일본에서 붐을 일으켜 최근엔 인터넷사이트는 물론, 유력 신문인 ‘아사히(朝日)신문’ 전면 광고에 결혼정보회사의 ‘곤카쓰’ 광고가 실릴 정도로 관련 사업도 성업 중이다. 만혼화(晩婚化), 독신자 증가 등 일본과 비슷한 사회현상이 일어나는 한국에도 ‘혼활’이란 용어가 수입돼 ‘혼활맞선’ ‘혼활캠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불황으로 남학생보다 취업에서 불리한 여학생들이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서두르는 현상을 일컫는, ‘취직’과 ‘시집가다’에서 한 자씩 딴 ‘취집’이란 조어가 만들어졌다. 앞서 인용한 일본 취업 내정률 통계를 보면 남자와 여자 대학생의 취업률은 거의 비슷하다(2008년 말, 2009년 말 기준). 그러나 일본의 여대생들 가운데에도 뚫기 어려운 취업보다 좋은 상대를 골라 결혼하는 것이 낫다며 ‘곤카쓰’에 적극적인 이들이 있다. 한국의 ‘취집’과 같은 현상이다. 두 나라엔 여러 가지로 비슷한 사회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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