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2010.03.09

가족은 또 그렇게 이어진다

이랑 씨어터의 ‘늙은 자전거’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0-03-04 17: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족은 또 그렇게 이어진다

    고달픈 인생에서 자전거는 삶의 순환을 가져온다.

    연극 ‘늙은 자전거’(이만희 작, 안경모 연출)에는 자전거 하나를 굴리며 장돌림으로 연명하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등장한다. 할아버지 강만은 의절한 아들이 객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듣도 보도 못한 손자 풍도를 만나게 된다. 강만은 풍도에게 매정할 정도로 퉁명스럽게 대하고, 풍도 역시 말썽만 부린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은 ‘절친’이 돼 서로 의지한다. 그러나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잠시. 학교 가기도 거부하고 자신만 따라다니는 손자를 두고 강만은 세상을 떠난다.

    ‘늙은 자전거’가 특별한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잔잔한 웃음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웃음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만들어진다. 할아버지는 병마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손자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쓰러지는 상황에서도 일부러 놀이를 한 것처럼 둘러댄다. 천진난만한 풍도에게는 이런 할아버지의 놀이가 재미있게만 느껴진다.

    여기서 잠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려볼 수 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간 아버지는 아들에게 ‘숨기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덕분에 아들에게 수용소의 현실은 즐거운 판타지로 전환되고, 상황이 살벌할수록 아이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아버지는 총살당하러 가는 순간까지 아이의 판타지를 깨지 않는다.

    강만과 풍도의 모습에서도 영화와 흡사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강만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을 예감한 날 풍도에게 선물을 준다. 보자기로 빨간 ‘슈퍼맨’ 망토를 만들어주고, 장난감 선글라스를 끼워준 뒤 모터를 새것으로 교체한 자전거를 몰게 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생전 처음 물건을 가득 실은 만물상 자전거의 주인이 돼 신나게 달린다. 이때 풍도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가슴 아프게 와닿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슬픔을 배가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지키는 것은 자전거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맞아들여야 하는 ‘자전거’는 ‘순환’의 의미를 띤다. 인생사가 아무리 애달파도 삶은 지속되고 생명은 생겨났다 꺼져간다. 이런 삶 속에서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소소한 기쁨으로 존재의 가치를 느낀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분신인 ‘늙은 자전거’를 타면서 여정을 달리고, 삶을 느낀다.



    ‘늙은 자전거’는 진솔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보편적인 감동을 전한다. 최연식은 할아버지의 내면 연기로 공감대를 이끌었고, 이지현은 남자아이 풍도 역을 매우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주수정(미자), 염동헌(복남)은 유머러스한 연기로 작품에 생기를 돋우었다. 이랑씨어터, 오픈런.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