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2010.03.09

새 싱글 때마다 또 다른 소녀시대!

의상부터 음악적 방향성까지 콘셉트 전략의 승리 … 기획사도 아이돌 음악적 개성 키우기 시작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입력2010-03-04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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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싱글 때마다 또 다른 소녀시대!
    중국판 ‘짝퉁’ 소녀시대가 화제다. 새롭게 등장한 중국 9인조 걸그룹 ‘아이돌 걸스’는 인원 구성부터 의상 콘셉트, 전체 이미지까지 소녀시대와 흡사하다. 멤버들은 소녀시대처럼 본업인 가수 외에 배우, 모델, MC 등의 기량을 갖췄다고 한다. 역시 소녀시대처럼 다나, 크리스털, 소피아 같은 외국 이름도 함께 갖고 있다. 반갑지 않은 소식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소녀시대의 아이돌 그룹 콘셉트 전략이 중국에서도 먹혀들고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소녀시대는 탁월한 성공모델이다.

    물론 소녀시대도 ‘오리지널’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상당 부분 일본의 아이돌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지금 한국 누리꾼들이 ‘아이돌 걸스’에 분노하고 중국 누리꾼들이 이를 부끄러워하듯, 소녀시대도 초기에는 일본의 대표적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를 베꼈다고 한일 누리꾼 사이에서 조롱을 받았다.

    그래도 소녀시대만의 전략이 있고, 이것이 최소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권에선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그 전략이 대체 뭘까. 단순하다. 싱글앨범 중심으로 외형적 이미지를 비롯해 전반적인 방향성을 환기하는 것이다. 즉 새 싱글이 나올 때마다 의상, 헤어스타일, 전체 이미지를 바꾸고 그 콘셉트대로 활동한다. 물론 다음 싱글이 나오면 또 새로운 분위기의 소녀시대가 된다.

    화제 모으는 중국판 짝퉁 소녀시대

    지금은 꽤나 흔한 전략이지만, 이런 전략이 적용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일본 아이돌 그룹의 ‘왕’인 스마프(SMAP) 멤버 구사나기 쓰요시가 ‘초난강’이라는 예명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한 2002년만 해도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당시 한국 인터넷에서는 초난강이 TV에 등장할 때마다 똑같은 화장을 하고 똑같은 옷을 입는 게 화제였다. 매회 같은 영상을 보는 것 같아 지루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수라면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미덕이었다. 매주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나올 때마다 새로운 의상과 이미지를 선보였다. 이 같은 패션쇼는 한 곡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한국 대중은 문화소비에서도 빨리 식상하기 때문에 계속 이미지를 교체해줘야 했다.

    그러나 ‘매주 패션쇼’에 제동이 걸린 것은 1990년대 후반 H.O.T.로 대표되는 ‘아이돌 1차 열풍’이 시작될 때부터다. 철저히 일본식 아이돌 전략을 벤치마킹한 SM엔터테인먼트와 그를 따라 한 여타 기획사가 콘셉트 전략을 시도했다. 그러나 너도나도 이 전략을 적용한 것은 2005년 이후, 이른바 ‘아이돌 2차 열풍’이 일면서부터다.

    새 싱글 때마다 또 다른 소녀시대!

    신곡 ‘오!(Oh!)’를 선보이며 귀엽고 발랄한 콘셉트로 돌아온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 때는 ‘마린걸’ 콘셉트로 남성팬들의 ‘제복 판타지’를 자극했다.

    아이돌 그룹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음악’을 하는 이들이 아니다. 트렌드를 좇아 모두 한 방향으로 간다. 멤버 각자의 개성도 TV 버라이어티쇼에서 반기는 몇몇 패턴으로 일제히 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확실한 개성을 보여주는 외형적 콘셉트’를 미리 설정한 뒤, 이를 새 싱글이 나올 때마다 고수해 반복적으로 노출함으로써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대중은 음악이 아닌, 각 아이돌 그룹이 선택한 콘셉트로 해당 그룹을 인식한다. 다음 승부는 다음 싱글 때부터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많은 문제를 드러낸다. 일본 대중은 ‘안정감’을 즐기는 성향이었다. 즉 같은 의상과 이미지를 반복 노출하면서 익숙한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 빠른 트렌드를 즐기는 한국 대중과는 성향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아이돌 그룹이 새 싱글을 발매하면, 의상 콘셉트가 먼저 화제가 된다. 여기서 튀어 보이려면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노출이다. 여성 아이돌의 노출은 점점 심해진다. 적어도 바로 전 싱글보다는 ‘더 벗어야’ 한다. 남성 아이돌도 근래 들어 노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반발하는 그룹도 있다. 이들은 전반적 이미지는 유사하지만 의상, 헤어스타일 등 사소한 것은 매번 바꿔나간다. 대표적인 그룹이 2NE1이다. 2NE1는 심지어 방송 출연 때마다 같은 곡을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 새롭게 부르기까지 한다. ‘1싱글 1콘셉트’ 유행에 대한 반발이 대중으로 하여금 ‘아이돌이지만 아이돌 같지 않은’ 면모로 인식돼 더 큰 호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전 싱글보다 더 벗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돌 그룹들이 소모적인 ‘노출 경쟁’을 벌이지 않고도 확실히 개성을 부여할 방법이 있을까. 있다. 바로 기본에서 출발하면 된다. 아이돌도 기본적으로 가수다. 즉 음악에서 개성을 찾는 것이다.

    이런 시도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2NE1은 일렉트로 힙합 계열 음악을 구사한다. 이 틀에서 벗어난 일이 거의 없다. 원더걸스는 복고 콘셉트를 처음부터 밀고 나왔고,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박진영 특유의 흑인음악이라는 ‘거름종이’로 걸러낸 음악들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식 아이돌 그룹의 대표 격인 소녀시대마저 근래 들어 음악적 방향성을 뚜렷이 하고 있다. 처음엔 쉽고 단순한 ‘캔디팝’ 곡들로 채워 넣었지만, ‘지(Gee)’가 대히트한 뒤 자신감을 얻었다. 멜로딕 트랜스를 가미한 싱글 ‘소원을 말해봐’가 그 시발점이었다. 이번에 나온 새 앨범은 ‘지’와 ‘소원을 말해봐’의 중간단계처럼 보이는 복고풍 ‘오!(Oh!)’로 시동을 걸었지만, 그건 ‘안전책’에 불과했다. 앨범 전체를 들어보면 일관된 방향성이 느껴진다. ‘쇼! 쇼! 쇼!’ ‘무조건 해피엔딩’ ‘화성인 바이러스’ 등 전반적으로 1990년대 말 유로댄스 분위기다. 여기에 일렉트로니카적 해석을 덧붙였다. 유로 트랜스와 일본에서 나카타 야스타카 등이 고집하는 세칭 ‘오락실 테크노’ 요소가 풍부하다.

    이제 곡은 대충 만든 뒤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으로 포인트를 잡고, 버라이어티쇼에서 신나게 떠들어주면 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대형 기획사들은 서서히 아이돌 그룹의 음악적 개성에 관심을 둔다. 중소 기획사들도 곧 이를 벤치마킹하려 들 것이다. 그때부터는 또 다른 승부의 장이 열린다.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뛰어난 사운드를 만들어내느냐, 또는 음악 마니아에게서 어느 정도 호응과 인정을 얻어내느냐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일본에서 직수입돼 갖은 표절과 왜색 논란에 시달리던 한국의 아이돌 문화는, 어쩌면 이런 식으로 일본과 차별화를 이뤄 마침내 ‘현지화’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중국 등지에서 또다시 이를 벤치마킹해 ‘짝퉁’을 생산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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