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3

2009.12.01

현대인의 죄의식에 대한 탐구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 입력2009-11-30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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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현대인의 죄의식에 대한 탐구
    젊은 극단 ‘그린 피그’의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고재귀 극작, 윤한솔 연출)는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으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실험적인 형식에 담았다. 이 연극은 ‘죄’와 ‘죄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도했든 안 했든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인간들의 관계를 절묘하게 꼬아놓은 구조다. 인간이 서로에게 악의적인 ‘환경’이 되고, 가해자 없이 피해자만 난무한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단면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성북경찰서를 배경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꽈배기처럼 얽힌다. 하나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다. 사건 당시 CCTV 녹화 테이프가 지워져 있고, 여자의 안면부가 손상돼 신원을 알기 힘들다. 다른 하나는 로드 매니저인 남성의 이야기로, 그는 교통신호 위반으로 경찰에게 적발됐지만 조사 과정에서 자살한 여인으로부터 혼인빙자간음으로 고소당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자살 사건의 목격자인 여고생들 이야기다.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는데, 자기네끼리 비밀스러운 모의를 하다 현장을 목격했기에 극도의 불안감을 보인다.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연관되기도 하고, 연상 작용만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부분은 ‘관련성’에 대한 예측을 뒤엎는다. 그리고 현상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속사정’이 밝혀지는 그 지점에서 웃음이 유발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속사정’에도 일관된 주제인 ‘죄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연극의 매력은 ‘무뚝뚝함’이다. 극은 행동이 아닌 상황 중심으로 전개되며, 일상의 단편들을 관객 앞에 파편적으로 펼쳐놓는다. 일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제시하면서 극대화하는 극사실주의적 연출 방식에 가깝다. 무대 또한 창문을 통해 경찰서 내부를 엿보듯 배치됐다. 사건의 단서도 ‘엿보기’를 통해 제시된다. CCTV의 화면을 상징하는 두 대의 모니터는 경찰서 내부 곳곳을 비추고 여고생들의 비밀을 폭로한다. 지하철의 사건 현장을 연상시키듯 필름이 끊어진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뚝뚝한 김에 좀더 불친절해도 좋을 것 같다. 여고생들의 비밀을 모니터 화면을 통해 폭로하는 장면이나, 자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내레이션은 다소 설명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부분을 파편화해 극 중에 어우러지게 하면 작품의 콘셉트를 더 잘 살릴 듯하다. 김철중 역의 선종남, 정성미 역의 강효정 등 배우 대부분 자연스러우면서도 집중도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11월29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문의 070-7594-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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