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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팔방미인 ‘슈퍼컴’

1초에 1000조 회 연산 탁월한 능력 …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 류현정 IT 칼럼니스트 dreamshot007@gmail.com, twitter.com/dreamshot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팔방미인 ‘슈퍼컴’

팔방미인 ‘슈퍼컴’

인류가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방대한 양의 계산을 빠르게 해치우는 슈퍼컴퓨터 덕분에 변화무쌍한 날씨도 예측하고 지질 탐사도 할 수 있다. 한국의 KISTI 슈퍼컴 4호기(위)와 중국 슈퍼컴퓨터 ‘톈허’.

슈퍼컴퓨터(이하 슈퍼컴)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10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 ‘톈허(天河)’를 내놓았다는 발표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물론 약 보름 후인 11월17일 발표된 세계 슈퍼컴 성능 공식 순위(www.top500.org)에서 톈허는 세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아시아에선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전 세계 5위). 대단한 약진이다. 우리나라의 슈퍼컴은 6월 조사에선 500위권 진입에 실패했지만, 이번 11월 조사에선 14위에 랭크됐다. 최근 가동에 들어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 4호기 덕에 체면치레는 한 것이다.

성능 그 이상 국가 간 자존심 경쟁

슈퍼컴이 도대체 뭐기에 국가 간 자존심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은 슈퍼컴을 어마어마하게 성능이 좋은 컴퓨터 정도로만 이해한다. 맞는 말이지만 사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슈퍼컴을 둘러싼 정치, 경제, 기술적 맥락을 이해한다면 소설 하나를 쓸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먼저 슈퍼컴의 정의다. 매우 빠른 컴퓨터라는 말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빠른 컴퓨터가 나오기 때문이다. 통상 세계 500위권에 드는 컴퓨터를 슈퍼컴이라고 부른다. 보통 쓰는 개인컴퓨터(PC)의 연산속도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빠른 것은 물론이다. 연산속도 단위로는 테라플롭스(Tflops)를 사용한다. 1테라플롭은 초당 1조 회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번에 세계 5위에 오른 톈허는 563테라플롭스, KISTI의 슈퍼컴 4호기는 274테라플롭스를 기록했는데 각각 초당 563조 회, 274조 회의 연산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공식 인정받은 셈이다.



앞으로는 페타플롭스(Pflops)라는 단위가 더 많이 쓰일지도 모른다.

1페타플롭은 초당 1000조 회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의미. 11월 순위 발표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으로 등극한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XT 5 재규어’(크레이사 제품)의 성능은 1.75페타플롭스에 달한다.

막대한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컴을 구축하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KISTI의 슈퍼컴 4호기도 수백억원 이상을 호가한다. 미국을 따라잡겠다며 한때 일본 정부가 내놓은 차세대 슈퍼컴 개발 프로젝트의 예상 비용은 1조원을 넘어선다. 최근 중국의 슈퍼컴 순위가 서서히 상승하는 이유도 국가 경제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슈퍼컴 최강국은 여전히 미국이다. 전 세계 500대의 슈퍼컴 중 277대를 보유한 압도적인 1위.

슈퍼컴은 기술력을 상징하는 단순 전시용 제품이 아니다. 슈퍼컴은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의미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슈퍼컴은 기본적으로 인류가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방대한 양의 계산을 빠르게 해치운다. 게놈(genome) 분석을 통해 유전병을 연구하고 항체와 세균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생명공학 분야, 기상 예측과 수질개선 시뮬레이션을 실시하는 지구과학 분야, 자동차디자인과 영화 제작 및 고전작품 복원을 선보이는 예술 분야 등 슈퍼컴의 계산 능력이 숨 쉬지 않는 곳은 없다.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회사도 슈퍼컴의 알짜 고객이다. 슈퍼컴으로 각종 복잡한 파생상품의 관련 자료를 처리함으로써 한 발 앞서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한다. 석유탐사 경쟁을 벌이는 거대 정유사들은 슈퍼컴을 통한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 작업으로 오판 가능성을 최소화함으로써 채굴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돈과 시간을 줄이고 있다.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히는 ‘국가대표’ 제작에도 슈퍼컴이 기여했다. 시속 100km로 점프대를 활강하는 선수의 생생한 얼굴, 창공에서 바라보는 설경,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은 모두 스키점프 월드컵대회를 원본으로 한 슈퍼컴의 그래픽작업(CG)에 의해 구현된 것.

팔방미인 ‘슈퍼컴’
대규모 예산에서부터 수출 통제에 이르기까지 슈퍼컴만큼 ‘정치적’인 전자제품도 없다. 슈퍼컴의 엄청난 계산능력은 미사일, 핵 등 무기개발에서도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실제로 10여 년 전 미국 워싱턴 정가에선 중국에 슈퍼컴을 수출하는 것을 놓고 정치적 논란이 일었다. 미국이 슈퍼컴 수출 통제완화 조치를 실시한 1년 만에 중국이 슈퍼컴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핵무기 개발에 미국 슈퍼컴 기술이 사용됐을 것이라는 보수 진영의 공세가 당시 클린턴 대통령에게 집중됐다.

미국이 적성국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물자 중 하나가 컴퓨터다. 예를 들어 미국은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에 자국산 PC의 반입을 불허한다. 일반 PC도 통제받는데, 하물며 슈퍼컴 반입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일.

슈퍼컴 활용능력 뒤따라야 IT 강국

그렇다면 세계 슈퍼컴 500위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슈퍼컴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내실과 실속을 따지면 자칫 허울만 좋은 순위 경쟁일 수 있다. 지금까지 순위에 들었던 우리나라의 수많은 슈퍼컴은 IBM, 선마이크로시스템스, HP 등 외국산이 대부분이었다. 내부 부품은 물론 슈퍼컴 설계기술, 구동되는 소프트웨어까지 외국 기업의 힘을 빌렸다. 우리가 한 가장 큰일은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활용능력이다. 집에 최첨단 컴퓨터를 들여놓았다고 내가 당장 정상급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은 아니듯, 슈퍼컴 도입과 활용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슈퍼컴을 구축한 뒤 제대로 이용하는 것은 100배 더 중요한 일이다.

기상청이 잦은 기상 오보로 비난을 받았던 이유도 슈퍼컴 활용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즉, 최첨단 슈퍼컴을 구비해 하드파워는 갖췄지만 쏟아지는 정보를 해석하고 예측하는 소프트파워는 약했던 것이다. 슈퍼컴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슈퍼컴 전문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또한 한반도 특수 상황에 맞는 기상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한다. 활용능력을 담보하지 않는 슈퍼컴은 거대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는 “향후 5년이면 누구나 주머니에 슈퍼컴을 넣고 다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휴대전화나 MP3플레이어에 지금 우리가 슈퍼컴이라고 부르는 수준의 성능이 구현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세상일지 어떨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컴퓨터 성능개선 속도로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일은 물론, 우주 정복 역시 슈퍼컴 없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주간동아 2009.12.01 713호 (p76~77)

류현정 IT 칼럼니스트 dreamshot007@gmail.com, twitter.com/dreamshot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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