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3

2009.12.01

의사도 엔지니어도 “I ♥ 로스쿨”

로스쿨 이색 경력자들의 ‘가슴 뛰는 공부’

  • 유두진 주간동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입력2009-11-27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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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도 엔지니어도 “I ♥ 로스쿨”
    ▲이화여대 로스쿨 이선미 씨▲

    “병원에 ‘갇혀’ 지내는 의사, 답답할 것 같았죠.”


    “의사도 보람 있는 직업이지만 사회에서 제가 좀더 넓게 쓰일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로스쿨에 진학했어요.”

    이화여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이선미(25) 씨는 경기 고양시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개업의다. 현직 의사가 로스쿨에 진학한 것도 특이하지만 그는 의대 입학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7세 때 초등학교에 입학해 경기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만 17세에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한 것. 의대 6년을 마치고 2008년 2월 의사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20대 초반이었다. 최연소 의사국가고시 합격 타이틀을 거머쥔 것은 물론. 주변에선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 정규코스를 밟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의원을 차린 뒤 로스쿨 진학 준비를 했다.

    “본과 4학년 때 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의대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그 길이 그리 수월할 것 같진 않더군요. 교수가 되지 못하면 중소병원에 취직하거나 개인의원을 운영하면서 병원에 ‘갇혀’ 지내야 하는데 그게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해낼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로스쿨은 그 대안 중 하나였고요.”



    이씨는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본다. 함께 진료하는 의사가 있어 그가 학교 가는 날 공백을 메워주긴 하지만 솔직히 힘에 부친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 그리고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면 눈물을 흘리는 외로운 노인들을 보면 의사로서의 사명감도 떨칠 수 없다.

    이씨의 이렇듯 다양한 체험은 예비 법조인으로서 그의 앞길에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 같다. 그는 로스쿨 졸업 후 공직에 종사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사람들을 리드하며 함께 일을 추진하면서 결과를 내고자 하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변호사나 의사의 업무는 조금 개인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무원 쪽이 끌립니다. 우선은 졸업 후 판·검사를 생각하고 있고요. 여건이 된다면 의료법 분야 교수도 꿈꿔보고 싶습니다.”

    이씨는 대외활동에도 열성적이다. 교내 테니스 동아리 회장직을 맡았고 최근엔 로스쿨 학생회장에 입후보해 선거 준비에 한창이다. 학교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듯 보였다.

    “왜 서울대 로스쿨로 가지 않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하지만 저는 이화여대로 온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여성의 리더십, 여성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을 체감하게 됐거든요. 학생회장이 되면 학습도우미 제도와 박사과정을 도입하는 데 학생들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보려 합니다.”

    이씨는 로스쿨 진학을 위해 특별히 많은 공부를 하진 않았다고 한다. 학원에 다니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되며,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태도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는 게 그의 조언. “천재성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얘기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천재’를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내가 그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며 겸손해했다.

    의사도 엔지니어도 “I ♥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임영택 씨▲

    “봉사의 꿈 펴기 위해 안정된 직장 접어”


    안정된 회사 직원에서 로스쿨생으로 변신한 임영택(30) 씨는 인권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영남대 로스쿨 공익인권학회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고 한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하다 보니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 능력으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로스쿨에 진학했어요.”

    성균관대 법대를 나온 그는 학창시절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낙방하고 다소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이 멀어져가는 듯했다.

    “사법시험을 공부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험에 계속 도전해야 할지, 가족을 부양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가정을 꾸린 상태에서 사시에 도전하는 건 무리였어요. 결국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웅진그룹 법무팀에 입사해 1년 반가량 평범한 회사원이자 가장으로 살았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자리했다. 그러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자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됐다. 고민 끝에 로스쿨에 도전해보겠다는 뜻을 밝히자 가족들도 격려하며 힘을 보태줬다.

    회사를 다니며 로스쿨 진학 준비를 하려니 주말 말고는 공부할 시간이 없어 첫해에 바로 합격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5개월의 준비과정 중 3개월을 로스쿨 전형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토익에 쏟아부은 결과 700점대이던 점수가 900점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이후 나머지 2개월 동안 법학적성시험(LEET)을 준비했고 마침내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의 시험성적은 커트라인을 겨우 넘긴 수준이었다고 한다. 토익과 면접시험 점수가 높아 합격증을 거머쥘 수 있었다는 것.

    “법조인의 꿈에 다시 다가선 것도 기뻤지만 사회를 위해, 소외층의 인권보호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더욱 기뻤죠. 사실 우리 법조문화가 소외계층은 법률 서비스를 쉽게 받기 힘든 구조 아닙니까. 그런 현실을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임씨는 로스쿨 공익인권학회 대표 외에도 학생회 학습국장, 기독학생모임 대표 등을 맡아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두 군데 로스쿨에 동시 합격했는데, 장학금 혜택이 좀더 큰 영남대 로스쿨을 선택했다. 그는 로스쿨 학비가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밖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경우에도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로스쿨에선 특별전형을 통해 전액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도 있어요. 뜻이 있다면 공부할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어쩌면 가난한 사람이 법조인이 되기엔 사법시험보다 로스쿨이 유리할지 몰라요.”

    의사도 엔지니어도 “I ♥ 로스쿨”

    김상용 씨(왼쪽)는 로스쿨 진학에 가족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왔다.

    ▲경북대 로스쿨 김상용 씨▲

    “자동차 설계하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있었죠”


    경북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김상용(31) 씨는 현대자동차에서 자동차 설계를 하던 엔지니어 출신.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의 엔지니어가 됐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점수에 맞춰 전자공학과에 진학하긴 했지만 공부를 하면서도 기술계통에는 좀처럼 관심이 가질 않았어요. 사회현상에 더 관심이 많았죠. 회사에 들어가 자동차 설계를 하면서도 제 적성에 안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사춘기 시절처럼 방황을 계속했죠.”

    지난해 초 신문을 보다 로스쿨 전형에 대해 알게 됐다. 자신의 관심 분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김씨는 그 자리에서 법조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 로스쿨 수험생활에 접어들자 주변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차이를 모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들은 ‘왜 좋은 직장 그만두고 그 힘든 ‘고시’를 보려 하느냐’고 말렸죠. 하지만 로스쿨 제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열심히 해서 좋은 변호사 되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과 로스쿨 준비를 병행하던 김씨는 로스쿨 합격 후 지난 4년 7개월간 정들었던 직장을 떠났다. 직장 동료들은 격려와 함께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혼자의 경우 배우자의 이해와 배려가 입시 준비를 하는 데 ‘필수사항’이라는 게 김씨의 충고.

    “로스쿨로 진로를 바꾸고 지금껏 1년을 보내는 과정에서 아내의 지지와 격려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교사인 아내는 출산으로 최장 3년간 휴직이 가능했는데, 제가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예정보다 일찍 복직해야 했습니다. 생계 때문이죠. 결혼 전부터 아이는 자기 손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는데….”

    법학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보니 로스쿨에서 공부를 시작할 무렵엔 용어 뜻을 이해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법대 출신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두세 달이 지나자 법률 공부에 감을 잡기 시작했고, 여름방학 이후엔 무리 없이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젠 학업이 상당 부분 궤도에 올랐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더욱 능률이 오르는 것 같다”고 했다. 노동법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향후 노동 관련 변호사로 활동하는 게 꿈이다.

    의사도 엔지니어도 “I ♥ 로스쿨”
    ▲연세대 로스쿨 김성훈 씨▲

    “순수혈통’ 자존심으로 빡세게 공부하고 있어요”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곧바로 로스쿨로 진학한 ‘정석 코스’의 로스쿨 학생은 어떨까. 연세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김성훈(27) 씨는 연세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른바 ‘순수혈통’이다. 법무·경영 분야의 정책전문가로 일하고 싶다는 김씨는 로스쿨에서 만난 다양한 전공자들에게 고마운 마음부터 전했다.

    “로스쿨에 와서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순혈주의를 거부하고 다양한 전공을 받아들여 융합하려는 요즘 트렌드와도 딱 맞죠. 전공 분야가 다르다 보니 인터랙션(interaction)이 정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기존의 법조인 양성 코스가 법대를 나온 사람들이 사법시험을 패스하고 연수원에서 다시 모이는 일률적 방식인 데 비해 로스쿨은 다양한 학문, 여러 영역 사람과 소통할 수 있어 ‘오픈 마인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게 그의 로스쿨 예찬. 일부 법조인은 아직도 순혈주의에 기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게 현실이지만 법학 전공자들은 그들대로, 비(非)법학 전공자들은 또 그들대로 로스쿨에서 추구해야 할 과제가 다르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전자에겐 3년 동안 법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후자에겐 3년간 법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

    또한 김씨는 “사법시험만 준비하던 사람들은 오로지 시험 합격이 목표였지만, 로스쿨 출신들은 변호사 자격이 어느 정도 보장된 사람들이라 법학 공부를 하면서도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법대 출신 로스쿨 학생이라고 해서 로스쿨 수업이 만만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일주일에 읽어야 하는 전공서적 분량이 600여 쪽, 써내야 할 보고서가 15~20쪽에 이르다 보니 부담이 상당하다. 김씨는 수업시간 외에도 하루 6~7시간을 공부에 할애한다.

    “학부시절엔 학교수업이 큰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법대생들이 대부분 사시 준비에 매달리다 보니 학교강의가 보충수업쯤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죠. 하지만 로스쿨에선 수업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복습은 기본이고 학부 때보다 진도가 3~4배 빠르기 때문에 웬만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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