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2009.11.24

싱싱한 질감, 도멘 오트의 ‘방돌 로제’

  • 조정용 ㈜비노킴즈 고문·고려대 강사

    입력2009-11-18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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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싱한 질감, 도멘 오트의 ‘방돌 로제’
    필자의 첫 번째 단행본 ‘올댓와인’에는 로제 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해놨다.

    “옛날 프로방스에는 태양을 절여 와인을 만드는 어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태양을 헹구고 빨아서 분홍빛을 얻었다. 그 분홍빛을 잔 속에 담아 만든 것이 로제 와인이다. 그래서 로제 하면 프로방스다.”

    김영랑이 노래한 ‘오매, 단풍 들것네’의 시구처럼 온 나라가 빨갛게,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다. 이런 분위기엔 레드나 화이트보다 로제가 제격이다. 한술 더 떠서 프로방스의 로제까지 골라낼 수 있다면 애호가로서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프로방스가 어디인가.

    세잔이 태양광선을 연구해 인상주의를 펼쳐나간 곳이다. 태양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은 한 군데도 없는 명랑하고 밝은 곳이다. 이곳에서 여자는 살이 찌지 않으며, 로즈메리는 사람 키만큼 자란다고 알려져 있다. 전통음식으로 부야베스가 유명한데 우리 매운탕과 흡사하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으니 우리 음식으로 따지면 맑은 해물탕이다.

    농업 근대화가 이뤄지기 전 포도밭에는 다양한 품종이 자랐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야 풍토에 맞고 경제성에 부합하는 종을 고르지만, 과거에는 다양한 포도를 그대로 재배해 양조했다. 프로방스의 양조전통에는 이런 역사가 배어 있어 다양한 포도를 블렌딩한 와인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로제는 전체 생산량의 80%에 이를 정도로 대세다.



    보르도에서 포이약이나 마고가 손꼽히는 명승지이듯, 프로방스에는 방돌이란 마을이 좋다. 여기의 로제는 로제대로, 레드는 레드대로 프로방스를 대표한다. 사람들은 엷은 붉은빛을 띠는 도멘 오트(Domaines Ott)의 방돌 로제 2008을 주로 마신다. 색이 연하다고 타닌이 없을까.

    단 하룻밤 혹은 이틀 밤만 재워도 검은 포도 특유의 스파이시한 후각적 요소가 두드러지며, 톡 쏘는 듯한 블랙커런트 향취가 난다. 맛의 끝이 살아 있으며 깨끗하고 미세한 기운 속에 생동감 어린 신맛과 엷은 타닌이 균형 잡혀 있다. 와인의 싱싱한 맛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로제라고 깔보면 곤란하다. 입안을 장악하는 타닌은 없어도, 화이트 같은 가녀린 질감은 아니며 질감의 테두리가 만져질 정도의 형태는 지니고 있다. 2008년의 잘 익은 포도알, 그중의 심장만을 골라 재워둔 와인이라 ‘Coeur of grain’(포도알의 심장)이란 부제가 붙었다. 수입 대유와인, 가격 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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