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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이웃집 억척 모녀 코끝 찡한 감동

정기훈 감독의 ‘애자’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이웃집 억척 모녀 코끝 찡한 감동

이웃집 억척 모녀 코끝 찡한 감동

김영애와 최강희(오른쪽)가 각각 모녀 역할을 맡아 억척대결 속에 진한 감동 연기를 펼친다.

멜로 영화는 시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계층적 차이가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장애였을 때 다른 계층의 사랑 이야기는 애달픈 순애보로 찾아왔다. 1970년대, 산업화가 시대적 화두이던 시절 고향을 떠나 도시의 하층민으로 전락한 ‘영자’들은 우연히도 부잣집 외동아들을 만나 비련의 사랑을 했고, 1990년대의 여성은 사랑하는 남자가 조직폭력배라는 이유로 떠나보내야 하기도 했다(‘약속’).

시간이 흘러 2005년엔 사랑하는 여자가 치명적 질병, 게다가 성적 접촉을 매개로 전염이 가능한 질병에 걸렸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다(‘너는 내 운명’). 바야흐로 멜로 영화는 당대의 금기와 그 금기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을 변주한다.

2009년 가을, 새롭게 등장한 멜로 코드는 흥미롭게도 ‘모녀 멜로’다. 최강희, 김영애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 ‘애자’(감독 정기훈)가 대표적 작품이다. 영화 ‘애자’는 주인공 애자의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관객에게 호소한다. 고3 때 애자는 비가 오면 시가 쓰고 싶어 학교에 가지 않고, 학교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말썽꾸러기지만 글쓰기 대회에만 나갔다 하면 상을 휩쓸어 오는 ‘문학소녀’였다.

문학소녀답게 그녀는 장래에 작가가 되리라는 꿈을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꿈은 꿈으로 멈추기 쉽다는 것.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한 여성을 사회는 성인으로 취급해주지 않는다. 다만 철없이 허황한 꿈이나 꾸는 백수로 바라볼 뿐이다. 애자의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수의사라는 실용적 직업을 가진 엄마는 그저 딸이 마음 고쳐먹고 병원을 물려받았으면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애자만큼이나 애자의 엄마도 억척 여성이라는 것이다. 조류독감이 창궐하는 시절 당당히 가금류의 배설물을 직접 맛보기도 하고, 유기견의 안락사는 절대 안 된다며 이권을 넘어선 주장을 한다. 한마디로 못 말리는 모녀인 셈. 영화 ‘애자’는 이 부산 출신 모녀의 억척대결로 시작한다. 기행을 일삼는 애자나 그에 만만치 않게 강인한 엄마는 시종일관 관객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중요한 점은 이 웃음이 영화 마지막에 준비된 눈물을 배가하는 기폭제 노릇을 한다는 사실이다. 티격태격, 웃고 울던 사이 무슨 병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의 병이 재발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술할 수 없다면 길어야 6개월 이상 살기 힘들다는 말까지 듣는다. 애자는 엄마의 표현처럼 사막에 가서도 우물을 길어낼 캐릭터다. 그래서 그녀는 오히려 엄마에게 보호받기보다 어딘가 내버려둬도 되는 딸로 생각된다.

억척스럽고 모진 엄마지만 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해진 오빠에게는 한없이 약해져, 땅이고 수술비고 죄다 오빠 뒷바라지에 들어간다. 차별받는다는 생각에 부산 근처에는 오지도 않던 애자가 죽음의 문턱에서마저 오빠 뒤치다꺼리로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며 짜증과 함께 연민을 느낀다. 그것은 자신이 덜 받고 있다는 불만이라기보다 늘 자식만 생각하는, 희생적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깝다.

그래서 애자는 제발 이제는 자신을 돌보라며 울부짖는다. ‘모녀 멜로’라는 표현을 썼듯 영화는 애자와 엄마의 이별을 비중 있게 다룬다. 엄마는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애자’는 이 당연한 이야기를 갑작스러운 병의 재발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멜로 드라마적 구조로 바꿔놓는다.

멜로 드라마의 절정은 병 수발의 고통을 감당해야 할 자식을 생각하며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발견된다. 지리멸렬하게 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을 배려하며 죽음의 순간을 앞당기는 엄마는 거의 신적인 존재다. 엄마는 아이들이 힘들까 봐 스스로 마지막을 재촉한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사실은 ‘엄마가 필요해’라는 고백이듯, ‘애자’는 엄마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관객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영화를 보는 순간 우리는 모두 딸의 처지로 돌아가 나를 지켜주는 그 강인하고, 완전한 엄마와 만난다. 나에게 절대 짐은 주지 않고, 안락함만 되는 존재. 그러한 존재의 대명사, 엄마.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 그 엄마에 굶주려 있는 것은 아닐까? 모녀 멜로, ‘애자’가 시대적 증후로 보이는 까닭이기도 하다.



주간동아 2009.09.22 704호 (p88~88)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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