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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記·충·천

“집에 가서 죽겠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집에 가서 죽겠다”

1975년 늦여름,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그날도 ‘늘 그랬듯’ 열심히 학교 운동장을 휘젓고 다니다 해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왔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얼마 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당장 할아버지 댁으로 오라고 하셨다. 대소가 어르신들, 부모님, 형님, 사촌에 육촌까지 자리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 주변으로 빙 둘러 꿇어앉아 있었다. 할아버지께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시더니 이윽고 집안의 막내인 내게 “크게 될 그릇인데 많이 가르치지 못하고 가는구나”라고 하신 뒤 눈을 감으셨다. 내 손을 꼭 쥔 채로. 아직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때였다.

할아버지가 당시 의료 수준으로는 치료가 힘들었던 병(늑막염, 급성 폐렴 동반)을 앓고 계셨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상당한 자산가이고, 대학병원에서도 “힘들지만 여기서 돌아가시게 돕겠다”고 했으며, 또 아들들도 반대했지만 할아버지는 굳이 “집에 가서 죽겠다”며 고집하셨다고 한다. 그러고는 하나씩 하나씩 주변을 정리해나가셨다. 과수원, 문집들, 문중의 일들, 자식과 손자에게 하고 싶은 말, 자신의 삶을 정리한 일기까지 남기셨다. 나는 불혹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 할아버지가 왜 그토록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집에 가서 죽겠다”
5월21일 대법원에서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하는 최종 판결이 나왔다. 시대는 변하고 의료기술은 발전했지만 아직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로 인해 가족 전체의 삶이 붕괴되고 사회적 손실도 크다.

삶의 시작은 부모의 뜻에 따라 결정됐지만, 적어도 죽어가는 과정과 죽음의 순간만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법원은 오늘날의 인권이 거기에 도달했다는 데 동의했다. 프랑스에는 ‘생명의 마지막에 관한 법률’이라는, 그 이름도 아름다운 존엄사 관련 법률이 있다. 이제 우리도 87.5%의 국민 동의(서울대 병원 조사)에 따라 존엄사 법을 따로 준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주간동아 2009.06.02 688호 (p70~70)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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