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1

2009.04.14

미술 고정관념 뒤집는 안내서 & 자극제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입력2009-04-10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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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고정관념 뒤집는 안내서 & 자극제
    미술에 문외한인 당신에게 누군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같은 그림은 미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분명 그가 당신을 조롱한다고 여길 것이다. 아무리 문외한이라 해도 ‘모나리자’ ‘천지창조’ 정도는 수십 번도 더 보았을 것이고, 그 작품의 위대성 역시 익히 들어서 알 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는 당신이 보았다는 ‘모나리자’가 진짜 ‘모나리자’가 아니라는 점. 당신의 기억에 있는 ‘모나리자’는 원본을 사실에 가깝게 찍은 사진 이미지일 뿐, 사실 당신은 원본을 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두 번째, 당신이 ‘모나리자의 절묘한 미소’에 감동하는 이유는 당신의 영감이 그림과 일치한 때문이라기보다 ‘모나리자’에 대한 설명과 해설을 수없이 들어서 생긴 일종의 학습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당신이 직접 루브르나 시스티나 성당에 가서 ‘모나리자’와 ‘천지창조’를 보고 왔다면 그때 느낀 영감은 어떤 것일까? 모르긴 해도 그것 역시 위대한(혹은 위대하다고 규정된) 미술작품에 대한 ‘경의’일 것이다.

    이 이야기가 약간 혼란스럽다면 이번에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이나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를 생각해보자. 보통 미술사나 예술사, 문화사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장면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이다. 알다시피 이 조각상은 원시시대 ‘다산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거칠고 뚱뚱한 여인상이다. 그 여인상에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투박한 돌덩어리에 불과한 그것에 ‘질박미’라는 미적 성질을 부여한 것은 후세 사람들이다. ‘다산을 기원’하는 모습이라는 해석도 후대의 것이다(물론 아무도 물어본 바 없다). 그럼 기자의 피라미드는 어떨까? 고대 이집트인에게 피라미드란 조형성을 드러내고자 제작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귀신이 되돌아오고 싶을 때까지 파라오의 육신을 보존하기 위한 거대한 돌무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것들에 본래 목적과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미술이라 여긴다. ‘고고학적 가치’와 ‘미적 가치’를 혼동한 것이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현실문화연구 펴냄)는 도발적이다. ‘모나리자’ ‘천지창조’뿐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 니케상, 유명한 반 다이크의 제단화 등을 독자들에게 내밀며 ‘이것이 어찌 미술이냐?’고 되묻는다. 저자는 미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따르면, 저자가 이렇게 엉뚱한 주장을 펴는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이란 근대의 발명품일 뿐이며, 미술은 작가의 영감에 의해 독창적이고 자발적으로 제작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또 제사나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누군가의 주문을 받고 제작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세의 조토나 르네상스의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도 그저 장인일 뿐 미술가는 아니며, 그들의 작품은 당시 미사의 배경 혹은 어느 귀족의 침실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 도구일 뿐, 우리에게 그것은 진짜 미술이 아니다.

    미술 고정관념 뒤집는 안내서 & 자극제

    <b>박경철</b> 의사

    그럼 저자의 시각에서 ‘진짜 미술’ 혹은 ‘진정한 미술가’란 무엇일까? 그는 뒤샹, 피카소, 몬드리안, 폴록, 워홀 같은 천재적 재능을 지닌 작가가 영감을 바탕으로 창조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작품이 ‘미술’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이런 파격적인 시선으로 인해 이 책은 미술 혹은 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던져준다. 그래서 이 책은 ‘양서’ 즉 ‘좋은 책’의 조건을 고루 지녔다. 게다가 무거운 주제에 비해 잘 읽히고 쉽게 이해되는 장점까지 있다. 미술 감상에 입문하려는 사람이나 입시생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내서가 되고, 전공자들에게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의문이 남는다. 바로 저자가 ‘진짜 미술가’로 인정하는 폴록이나 뒤샹 등을 두고, 이들의 작품이 ‘새로운 영감의 산물’일 뿐 ‘지능적 상업화의 산물’이 아니라고 판정한 것은 과연 누구의 권한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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